▲ 고용노동부

고용노동부가 노사 당사자 합의로 1주 12시간 한도로 연장근로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한 근로기준법을 ‘월’ 단위로 개정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노동시간 선택의 자율성을 높인다는 취지인데 1주 88시간이 넘는 초장시간 노동이 우려된다. 노동시간뿐만 아니라 임금피크제 개편·직무성과급제 도입처럼 임금 관련 제도도 손본다는 계획이다. 노사의 견해가 첨예하게 부딪히지만 사회적 대화와 협상으로 합의점을 찾기보다는 전문가들을 모아 ‘권고안’을 내는 방식을 택했다. 노동계는 반발하고 있다.

주 120시간 노동, 손 안 대고 코 풀기?
월 단위 연장근로, 노동시간 제동장치 일거 해제 ‘효과’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23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노동시장 개혁 추진 방향’을 발표했다. 이 장관은 “주 최대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급격하게 줄이면서 기본적인 제도의 방식은 그대로 유지해 수요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며 “기업별·업종별 경영여건이 복잡·다양해지는 만큼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행법에는 탄력근로제·선택근로제 등 다양한 유연근로제가 있지만 활용도가 10%에 못 미친다. 노사 대표가 서면합의하거나 노동자 건강권 보호제도를 병행해 실시하는 등 장시간 노동을 방지하기 위한 제한장치가 많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오히려 노동부 장관의 허가만 받으면 되는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에 기대고 있다. 특별연장근로 인가건수는 2019년 908건에서 2020년 4천204건, 2021년 6천477건으로 3년 새 7배나 증가했다.

노동부가 연장근로시간 한도를 월 단위로 확대하려는 배경이다. 법정 근로시간은 1주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지만 1주 12시간의 연장근로를 할 수 있다. 노사 당사자 간 합의만 있으면 된다. 연장근로 관리를 월 단위로 확대하면 1주에 88시간 넘는 초장시간 근로가 가능해진다.

노동시간 총량 규제방식은 재계의 요구사항이면서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과도 맞닿아 있다. 윤 대통령은 공약으로 ‘노동시간 총량 규제를 연간 단위로 확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경총은 지난 4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제출한 정책제안서에서 “현행 주 52시간제는 공장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서비스업·4차 산업시대와 맞지 않은 획일적 규제방식”이라며 “연장근로시간 총량 규제를 주 단위에서 월 또는 연 단위로 변경하자”고 요구했다.

이 장관은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 확대와 스타트업·전문직 근로시간 애로사항 해소 등의 추진계획도 밝혔다. 윤 대통령의 공약사항으로, 후보시절 공언한 “주 120시간 노동”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임금체계 과도한 연공성 줄여야”

임금체계는 연공 중심에서 직무·성과 중심으로 바꾸겠다고 했다. 이 장관은 “연공성 임금체계는 고성장 시기 장기근속 유도에는 적합하지만 저성장 시대 이직이 잦은 노동시장에서는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며 “성과와 연계되지 않은 보상시스템은 공정성을 둘러싼 기업 구성원 간 갈등과 기업의 생산성 저하, 개인의 근로의욕 저하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임금체계 개편은 노사의 협상 영역이지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수단이 많지 않다. 노동부는 한국형 직무별 임금정보시스템을 구축해 정보를 제공하고 컨설팅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또 최근 대법원에서 ‘무효’라고 판결한 임금피크제와 관련해 고령자 계속고용을 위한 제도개선 과제를 검토한다. 고용연장 시행 시점과 재고용 대상 선정과 근로조건 조정, 임금체계 개편 절차 등이 검토 대상이다.

한편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은 개정보다 안착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이정식 장관은 기자들의 질의에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얼마 안 돼 입법을 통한 제도개선은 쉽지 않아 보인다”며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건설업에서 사망사고가 30% 이상 감축되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고 법적 판단도 나오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법 취지에 맞게 제도가 안착되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정부의 우선 과제”라고 답변했다.

전문가 모아 ‘미래 노동시장 연구회’ 구성
10월 권고안 발표 … 노동계 반발

문제는 이처럼 노사 간 첨예한 노동시간·임금 문제를 전문가로 구성한 ‘미래 노동시장 연구회’에서 논의한다는 점이다. 7월 연구회를 구성해 10월까지 4개월 운영하고 권고안 형태로 입법과제와 정책과제를 마련한다. 사회적 대화를 통한 해법 찾기가 아니라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법 개정을 추진하는 방향으로 이정식표 ‘노동시장 개혁’이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노동계는 반발했다. 민주노총은 “노동담당 부처 장관으로서 소신과 전문성은 찾아볼 수 없는 맹탕 재탕 발표”라며 “이미 정부 경제정책방향과 국정과제에서 주요 정책으로 ‘결론’이 나와 있는 만큼 연구회 운영은 명분 쌓기용에 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노총은 “몰아서 길게 일 시키고, 임금은 더 줄 수 없다는 정부의 노동시장 개혁 추진 방향은 사용자단체 요구에 따른 편파적인 법·제도 개악 방안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재계는 환영했다. 한국경총은 “노동부의 개편 방향에 공감한다”며 “경제위기 극복과 일자리 창출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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