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명교 플랫폼C 활동가

6·1 지방선거에서 정의당은 참혹한 성적표를 얻었다. 시·도지사나 시·군·구청장 당선자는 단 1명도 없었고, 지방의회 당선자는 직전 지방선거 37명에서 9명으로 추락했다. 원외 정당 진보당이 울산 동구청장을 비롯해 21명의 당선자를 낸 것과는 대조적이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정의당이 마주한 참혹한 결과의 첫 번째 원인이 ‘양당제’와 ‘불합리한 선거 제도’에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진보정당들의 성적표를 놓고 다양한 견해들이 백가쟁명처럼 쏟아지고 있다. 만시지탄이고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지만, 외양간이 왜 무너졌는지 살피기라도 해야 잃어버린 소를 다시 부를 수 있을 테니, 영 쓸모없는 일은 아닐 것이다.

언론들은 “진보적 정체성이 퇴색했다” “당내 성폭력 사건 대응이 부실했다” “갑질 논란이 재조명되며 실망감을 안겼다” 등의 평가를 공유한다. 특히 프레시안은 “‘검수완박’ 입법 국면에서 정의당이 보인 타협의 태도가 제3당으로서 ‘다당제의 필요성’을 강조해 온 행보에 반했다”고 진단한다. 몇 년 전 조국 사태와 유사한 구도가 재현되면서 대안 정당으로서의 존재감 자체를 상실했다는 것이다. 레디앙 역시 검찰개혁 같은 이슈에서 정의당 지도부가 “‘민주당 유사품’으로 보여지기를 자처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양당과 질적으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지도 않”는 정의당이 다당제 정치개혁을 호소한 것은 공허했다고 비판한다.

정의당 내 반응은 대체로 참담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특히 지도부를 비판하는 자들은 조국 사태 국면에서 정의당이 “민주당 구당 프로그램에 몰정세적으로 동원됐으며, ‘검수완박’으로 검찰개혁 의도가 심하게 의심받을 때에도 불분명한 태도를 보였다”고 상기한다. 이즈음 좌고우면하지 말고, 새로운 지지층 형성전략을 둘러싼 구상과 토론으로 가설을 세우고 대선의 각 국면에서 다양한 정치기획을 해야 했다는 것이다.

장제우(작가)는 정의당의 위기를 ‘정책의 위기’로 진단한다. 그는 ‘주 4일제’ 등 정책의 개연성이 부실하고, 현실 적용보다는 파격성에만 초점을 맞췄다고 평가한다. 또, 실제 주 4일제가 시행될 경우 시간당 임금이나 여가에서 불평등이 확대할 것이라는 지적이 일리 있는 비판이라고 거든다. 그는 “정의당의 위기는 한국 정치의 문제해결 능력이 한계에 봉착했음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라면서, 궁극적으로 한국 사회를 탈바꿈시키려면 “죽어 버린 역동성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죽어 버린 역동성에 어떻게 생명력을 불어넣을 것인가? 민중의소리나 민플러스 같은 친 진보당 매체들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진보당 후보들이 대중의 요구를 조직해 발로 뛰어온 결과라는 점을 주목한다. 가령 서울 노원구의원 당선자 최나영은 ‘주민대회’를 성공적으로 주최했고, 광역의원에 당선된 몇몇 후보들 역시 각 지역에서 주민들과 밀착해 다양한 활동을 했기에 당선에 이를 수 있었다. 수년에 걸친 이런 ‘아래로부터의 운동’은 “역동성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이와 달리 우석훈(경제학자)은 경향신문 칼럼에서 ‘정의’라는 단어는 소구력도 없고 지나치게 탈정치적인 개념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진보’라는 모호한 개념보다는 ‘사민주의’ 같은 보다 정치적인 좌표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데 정의당은 이미 사민주의 정당 아니었나? 해당 칼럼에서 우석훈은 서구 선진국 사민주의 정치세력의 처참한 실패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특히 전쟁과 기후위기에 대해 아무런 대안도 내놓지 못하고 자본에 휩쓸려 갈 뿐인 현실에 대해서도 모른 척한다. 가령 그가 언급한 프랑스 사회당은 이번 대선에서 참패했고, 독일 노동당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장제우와 우석훈의 주장은 상이한 좌표를 가리킨다. 우석훈은 정치지향을 분명히 하는 간판으로 바꾸자고 하고, 장제우는 불평등에 맞선 전장에서 역동성이라는 무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두 주장 모두 일말의 진실을 담고 있으나, 정의당의 위기를 온전하게 설명한다고 보긴 어렵다.

정의당의 위기는 실로 중층적이다. 민주노동당 분당 이후 사회운동과 멀어지며 제도권 정당으로서의 면모를 갖추려 노력했지만, 오히려 그런 편향 때문에 본질에서 멀어졌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언제나 소수정당이기 쉬운 좌파는 계급적 사회운동이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지 않으면, 자신의 대안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것으로 부상시키기 어렵다. 정의당은 사회운동 침체보다는 당내 몇몇 스타 정치인들의 말잔치에 주목하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이런 팬덤 정치는 당원이나 지지자를 구경꾼으로 만들고, 정당을 팬클럽으로 전락시킨다. 그런 점에서 뭇사람들의 “노회찬 사후 정의당이 망가졌다”는 주장은 아무 근거가 없다.

정의당이 “죽어 버린 역동성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세력이 되려면, 자신이 한국 현대사의 한축을 차지했던 민중운동의 일부이지, ‘민주진보’라는 두루뭉술하고 모호한 스펙트럼의 왼쪽 방에 근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복기해야 한다. 둘은 엄연히 다르다. 역동적인 정치그룹은 언제나 아래로부터의 목소리에 근거하며, 사회운동의 성장을 바탕으로 성장해 왔다.

조직 내 민주주의를 재생하고 내부의 역동성을 되살리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여영국 정의당 대표와 지도부는 김종철 전 대표의 성비위로 급작스럽게 지도부가 되긴 했지만, 재작년 도출된 당 혁신안을 거의 이행하지 않았다. 위기에 대한 평가를 진행하려면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할 동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정의당 내부에서 정치적 역동성을 되살릴 에너지를 회복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방법이 아예 없지는 않다. 바로 상호 간 서슴없는 개입이다. 가령 한동안 진보정당들이나 민중운동 단위들과 공동 평가와 실천을 도모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기계적인 통합 따위를 도모하는 게 아니라, 조직적으로는 따로 떨어져 있더라도 반자본주의-생태사회주의와 같은 정치적 비전을 공유할 수 있는 여러 사회운동이나 대중조직, 지역정당과 같은 좌파 정치의 다양한 경향들과 함께 민중정치 연대체를 구성하는 것이다. 10년의 과정에서 서로 좋은 것은 배우고 나쁜 것에 대해선 논쟁하며 상호 개입해 나간다면, 좌파 정당이 성장해야 하는 정치적·대중적 설득력을 다시 세울 수 있다. 당장은 답이 없다. 길을 꺾을 용기가 필요하다.

플랫폼C 활동가 (myungkyo.h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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