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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을 적용받는 재해자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의 진폐판정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폐기능 임의검사 결과만 제출했더라도 미지급 장해급여를 청구할 수 있다고 대법원이 판결했다.

기존 대법원 판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판결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대법원은 2016년 장해등급 결정을 받기 전에 재해자가 사망했어도 유족이 장해급여를 청구할 수 있다고 판단한 바 있다.

1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지난달 26일 진폐증으로 숨진 A씨의 아내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장해등급결정처분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사망 직전 검사 결과로 등급 상향
‘법률 개정 후 진폐판정 절차’ 쟁점

이번 소송은 A씨 유족이 이미 결정된 장해등급과 다른 등급에 해당한다며 유족연금을 청구하며 시작됐다. 광부로 일했던 A씨는 2002년 장해등급 11급 결정이 내려진 뒤 2011년 5월 진폐 정밀진단 결과 진폐증을 진단받았다. 이후 진폐재해위로금을 받다가 2013년 2월 세상을 떠났다. 그러자 유족은 A씨 사망 한 달 전 실시한 폐기능검사 결과를 공단에 제출하며 장해등급 상향을 주장했다.

공단은 2019년 10월부터 장해등급을 5급으로 올리고 추가로 유족연금을 지급했다. 그런데 이듬해 6월 착오가 있었다며 11급에 해당하는 유족연금만 지급하면서 추가로 지급한 유족연금과 재해위로금 징수를 결정했다. 법률에 정한 진폐판정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다. A씨 아내는 공단 판정에 불복해 2020년 7월 소송을 냈다.

쟁점은 2010년 11월 시행된 개정 산재보험법을 적용받는 재해자 유족의 미지급 보험급여 청구에 대해 진폐판정 절차 없이 ‘임의검사’만으로도 장해등급 판정이 가능한지였다.

개정 법률(91조의5)은 근로자가 진폐로 요양급여 또는 진폐보상연금을 받으려면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서류를 첨부해 공단에 청구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그러면서 요양급여의 부지급 결정을 받았을 때는 정밀진단 종료일부터 1년이 지나거나 요양이 종결됐을 때 다시 청구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과거 시행규칙에 규정하고 있던 조항이 법률에 신설됐다.

법원 “신뢰할 검사 결과로 청구 가능”
법조계 “종전 대법원 판결에서 확장”

법원은 진폐심사회의 심사를 거친 진폐판정 절차가 없더라도 유족연금 청구가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산재보험법에 유족연금 청구와 관련한 진폐판정 절차 규정이 없다는 점이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유족이 신뢰할 수 있는 폐기능검사 결과를 가지고서 장해등급 변경에 따른 미지급 위로금과 유족연금을 청구하는 경우까지 산재보험법상의 진폐판정 절차가 그대로 적용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A씨가 정밀진단을 받은 의료기관에서 검사를 받았으므로 공단의 의뢰 없이 자체적으로 받은 검사 결과로도 미지급 연금을 청구할 수 있다는 취지다.

항소심과 대법원 역시 검사 결과를 토대로 장해등급 해당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봤다. 대법원은 “수급권자가 사망한 후 유족이 이미 결정된 장해등급과 다른 등급에 해당함을 전제로 유족연금을 청구하는 경우 진폐판정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이를 거부할 수는 없다”며 “진폐판정 절차를 거치지 않은 사유와 경위 등을 참작해 제출된 자료를 기초로 장해등급의 해당 여부를 심사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법조계는 개정 법률을 적용받은 첫 사례로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대법원은 2016년 진폐판정 절차는 법령상 위임 근거 없는 공단의 내부 절차라고 판단해 유족의 청구를 인용했다. 이후 공단은 개정 산재보험법 시행일(2010년 11월21일) 이전에 진폐로 요양한 경우까지 소급해 임의검사 결과를 근거로 장해등급을 판정했다.

유족을 대리한 안혜진 변호사(법무법인 더보상)는 “2016년 대법원 판결로 개정 이전 법률을 적용받은 진폐 노동자가 진폐판정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검사 결과만으로도 장해등급 판정을 받을 수 있게 됐다”며 “이번 사건은 개정 법률을 적용받는 유족도 절차를 거치지 않았더라도 검사 결과를 근거로 장해등급 판정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첫 대법원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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