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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상 ‘출퇴근 재해’로 인정하지 않는 ‘출근 경로의 일탈·중단’을 엄격하게 보는 판결을 내렸다. 개인적인 목적을 위해 ‘통상적인 경로’를 벗어난 경우라도 사회 통념상 인정되는 범주 안에 있다면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다.

공단 “약속장소 벗어난 사고” 불승인
‘출근 경로 일탈·중단’ 여부 쟁점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재판장 박정대 부장판사)는 지난달 28일 건설사 직원 A씨(사망 당시 69세)의 아내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사건은 A씨가 2020년 10월26일 출근하던 중 발생했다. 충주의 저수지 토목공사를 담당했던 A씨는 오전 6시 건설사 사무실 앞 도로에서 동료와 만나 공사현장으로 함께 가기로 했다. 그런데 동료가 약속장소에 도착한 지 10분 뒤 사무실 방향에서 신음이 들렸다. 사무실 대문을 열자 A씨가 앞마당에 쓰러져 있었다.

A씨는 “대문을 나서려다가 앞마당에 있는 맨홀 뚜껑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며 통증을 호소했다. 동료가 119에 신고해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경추와 척수 손상으로 인한 호흡부전과 폐렴 증상을 보이다 다음달 3일 심정지로 숨졌다.

A씨 아내는 “출근 중 업무상 재해를 당한 것”이라며 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으나 거절됐다. A씨가 약속장소를 벗어나 사무실 마당에서 사고를 당했으므로 출근 경로를 벗어났다는 이유다. 공단은 “마당에 들어간 목적이나 체류한 시간이 객관적으로 확인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러자 유족은 지난해 7월 소송을 냈다.

산재보험법은 ‘통상적인 경로로 출근하는 중에 발생한 사고’를 출퇴근 재해로 정하고 있다. 다만 출근 경로의 일탈·중단 중에 발생한 사고는 예외 사유로 뒀다. 이에 재판에서는 출퇴근 재해의 요건인 ‘통상적인 경로’의 범위가 쟁점으로 다퉈졌다. 개인적인 목적으로 사무실에 오래 머물렀다면 출근 중 사고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법원 “통상적인 경로 이동 중 사고”
“사무실 대기하다 약속장소 이동”

법원은 A씨가 도중에 경로를 이탈하거나 중단하지 않고 ‘통상적인 경로’로 출근하던 중 일어난 사고라고 봤다. 재판부는 “출근 경로의 일탈·중단은 통상적인 경로를 벗어난 모든 경우가 아니라, ‘업무 또는 출근 목적과 관계없는 개인적인 목적’을 위해 통상적인 경로를 벗어난 경우만이라고 제한해 해석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출퇴근 중에 발생한 사고까지 업무상 재해 영역에 포함시켜 노동자를 두텁게 보호하려는 것이 산재보험법의 취지라는 것이다.

A씨가 약속 전에 사무실에 대기한 시간이 짧았던 점이 작용했다. 재판부는 “동료와 야외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면 실내에서 기다리는 것도 충분히 선택할 수 있다”며 “10월 하순 새벽 시간대라 야외 기온이 상당히 낮았고, 근처 영업장들이 문을 열기 전이라 약속장소에 가장 가까운 사무실이 대기하기 위한 최적의 실내 공간이었다”고 설명했다.

A씨의 주거지가 약속장소 근처에 있고, 사무실이 장시간 휴식을 취하기 부적합한 구조였던 부분도 사무실 대기 시간이 짧았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A씨가 약속시간을 불과 5분 정도 앞두고 약속장소로 향하는 도중에 사고를 당했다”며 “적어도 동료와 합류하기 위해 사무실에서 대기할 목적이 있었다”고 판시했다.

유족을 대리한 김용준·김위정 변호사(법무법인 마중)는 “이번 판결은 ‘출근 경로의 일탈·중단’의 의미를 산재보험법의 취지에 비춰 합리적으로 제한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며 “출근 목적을 위해 사회 통념상 인정되는 범위 내에서 통상적인 경로를 벗어난 경우라면 개인적인 목적을 충족하려는 의도가 있었더라도 출근 경로의 일탈·중단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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