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민애 변호사(법무법인 율립)

2019년 10월30일 부산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노동자가 추락해 사망했다. 25년 이상 건설현장에서 묵묵히 일해 왔고, 2017년 경동건설로부터 안전하고 성실하게 일해 온 것을 인정받아 상까지 받았던 고 정순규님은 바로 그 경동건설이 원청업체로서 관리·감독하는 현장에서 숨졌다. 사고 이후 세 번째 봄을 지난 지금, 원·하청 관계자들의 항소심 재판 선고를 앞두고 있다.

사고 당일 점심식사를 마치고 오후 1시께 비계에 올라 벽면 작업을 하려던 피해자는 비계에 올라간 지 3분 만에 추락했다. 당일 누구도 사고 상황을 목격하지 못했다. 사고 현장을 촬영한 사진에는 추락방지 안전망 같은 안전설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현장 안전관리책임자는 실족사라고 주장하면서 그 책임을 회피하려고만 했다. 원청인 경동건설은 하청업체에 현장 안전관리 책임을 떠넘기려고 하고 있고, 지금까지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 한마디 없었다. 법정에서 피해자와 가족이 아닌 판사에게 사과를 한 것이 전부다.

사고 경위에 대한 법정 공방은 치열했다. 개인에게 형사책임을 묻는 절차에서 사실관계를 엄격하게 판단해야 하는 것은 당연할 터. 그러나 사고 경위가 어떠하든, 벽으로부터 45센치미터 떨어져 비계가 설치돼 있었음에도 추락방지 안전망이 없었고, 비계의 안전판이 충분히 설치돼 있지 않았다는 것은 명백하게 확인됐다. 옹벽과 비계 사이 틈으로나 비계 바깥쪽으로 떨어질 경우에 대비한 안전장치가 없었다는 사실, 그리고 안전장치가 설치돼 있었더라면 사망이라는 끔찍한 결과는 막았을 것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사고 직후 안전망을 설치하고 비계발판을 늘려 설치한 것은, 그동안 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았고, 위험한 상태를 방치했음을 자인한 것일 뿐이다.

1심 재판 과정에서 가족들의 노력으로 관리·감독자 지정서에 하청업체 현장관리자가 임의로 피해자의 이름을 기재하고 서명했다는 사실을 밝힐 수 있었다. 현장의 관리·감독자는 안전관리에 대한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는 자이고, 안전사고가 발생할 경우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지위에 있다. 현장관리자는 자신이 피해자의 서명을 똑같이 흉내를 내 작성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렇게 하는 것이 관행”이라고 항변했다. 피해자의 서명을 임의로 흉내를 내 작성했다는 것이 사고 관련 책임을 피해자에게 전가하려고 했던 것이 아닐지 강하게 의심된다. 뿐만 아니라 현장의 안전관리를 책임지는 자의 서명을 타인이 임의로 하는 것이 ‘관행’이 되는 상황은 현장의 안전불감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밖에 없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의하면 최근 5년간 건설현장에서 사망한 노동자 중 추락 사망자는 1천360명으로 매년 270명이 건설현장에서 추락사하고 있다. 추락의 위험이 있는 곳에 안전장치를 설치하고 이러한 위험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해야 하는 것은 사업주의 당연한 의무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생명과 안전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있도록 보호조치를 취할 사업주의 의무를 두고, 피해를 입은 노동자의 실수를 운운하는 것은 그야말로 비겁한 변명일 뿐이다.

1심 법원도 안전장치가 설치돼 있지 않았고 이로 인해 사망이라는 결과가 발생한 책임을 인정했다. 원청업체 관계자들에게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을, 하청업체 관계자들에게 금고 4월에 집행유예 1년을, 그리고 각 회사에게 벌금 1천만원을 선고했다. 최근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건조치의무를 위반해 노동자가 사망에 이른 경우 양형기준을 상향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어떠한 처벌을 받게 된다고 해도 피해자의 사망을 되돌릴 수도, 가족과 사랑하는 이들의 슬픔과 고통을 되돌릴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엄중한 처벌로, 그리고 재발방지를 위한 진실된 노력으로 아주 조금이나마 그 고통이 치유돼야 하지 않을까.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