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110대 국정과제를 발표하면서 노동계가 술렁이고 있다.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를 강조하면서도 산업안전과 관련해 재계 입장을 상당부분 수용할 조짐이다. 예상한 대로 성과·직무 중심의 임금체계, 유연근로시간제 확대를 포함했다. 윤석열 시대 노동정책은 과거로 회귀하고 있나.

▲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경영학)
▲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경영학)

대통령직 인수위가 발표한 노동 관련 국정과제는 △취약 분야의 산업재해 예방 △법과 원칙에 따른 노사관계 △근로시간 선택권 확대 및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확산 △고용서비스 고도화 △직업능력개발 및 직업훈련을 포함한 7개의 영역이다. 평가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취약한 노동자에 대한 보호 정책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우리 사회가 극복해야 할 가장 큰 과제 중 하나는 노동시장의 과도한 임금격차를 축소하고 고용 안정성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원·하청 및 기업 규모에 따른 임금격차를 줄여야 하며 미래의 일자리는 되도록 정규직 일자리로 만들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 기준을 정비해 안정적인 인상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민간부문에서의 과도한 비정규직을 막기 위해 상시·지속적인 업무의 정규직 고용원칙이 정립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국정과제에 이러한 정책은 없었다. 선거 과정에서 국민의힘은 비정규직과 관련해 다양한 입장을 제출한 바 있고 국민의 생명안전업무의 정규직 채용 원칙도 약속했으나 대부분의 약속은 포함되지 않았다.

둘째, 선거 과정에서 국민과 약속한 정책이 후퇴했다. 대통령 선거 당시 윤석열 후보는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약속했다. 다른 후보들도 공약한 것이 플랫폼 노동자 기본권 법제화다. 그 배경은 플랫폼 노동자들이 플랫폼 기업을 위해 노동력을 제공하지만, 법적으로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약속이 국정과제에서는 슬그머니 사라졌다. ‘모든 노무 제공자가 일하는 과정에서 보편적으로 보장받아야 할 사항을 제도적으로 정비하는 것’으로 얼버무려 버렸다. 이것만이 아니다. 윤석열 당시 후보는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된 전 국민 고용보험 로드맵을 승계해 전 국민 고용보험을 약속했으나 막상 국정과제에서는 사회적 논의를 통해 확대하는 방향으로 후퇴했다.

셋째, 근로시간 선택권 확대와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정책임에도 국정과제에 포함했다. 우선 선택적 근로시간 정산기간 확대, 연장근로시간 총량 관리, 전문직의 근로시간 규제 완화 등은 노동자와 기업 모두가 만족하는 경우는 소수에 그칠 것이다. 다수는 기업의 악용과 개별 노동자의 피해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근로시간 유연화의 가장 큰 문제점은 공짜 노동만이 아니라 과로사로 이어질 수 있는 사안이라 다양한 검토가 필요하다. 또한,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는 이미 박근혜 정부에서 실패한 정책의 부활이다. 이에 대해선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트라우마를 갖고 있을 정도로 반감이 커서 정부가 계속 추진할 경우 노정 대결로 치닫게 될 것이다.

넷째, 노사관계 철학의 부재다. 인수위는 국정과제를 발표하면서 “윤석열 정부의 지향점은 ‘공정과 상식’에 맞게 대한민국의 대변화를 견인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막상 노사관계 정책에는 공정과 상식에 맞는 정책 대신 단체협약상 불공정 채용이 없는지 살필 것이며 노사 모두 불법을 저지르면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하겠다는, 당연하지만 협박처럼 들리는 입장을 내는 데 그쳤다. 대신 사용자에 대해선 “규제를 풀어 자유롭게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한다”고 천명해 노사관계의 공정성을 의심하게 한다.

혹시나 기대했던 윤석열 정부의 노동 관련 국정과제는 어느 수필가의 유명한 글귀처럼 “차라리 아니 만났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란 느낌을 준다. 적어도 대통령 선거기간에 약속한 공약들은 포함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역시 난 순진한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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