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진희 서울청년진보당 부대표

고등학교 때, 외국인 노동자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동아리 활동을 했다.

2000년대 초반, 근교농업과 물류창고가 경기도에 늘어나면서 일자리를 찾아 하남으로 오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아졌다. 난생처음 여러 나라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를 만났다. 연령대, 나라도 다양했다. 나에게는 모국어라 가르치는 게 쉬울 거라 생각했는데, 내가 살면서 자연스레 알게 된 것과 가르치는 것은 천지 차이임을 번번히 확인했던 과정이었다. 외국인에게 언어를 가르치는 것은 각자의 문화와 언어의 차이를 깊숙이 알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고, 학습자 개인의 특성 파악과 교감이 있어야 가능한 일임을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

최근 내가 활동하고 있는 서대문구 지역의 연세대 한국어학당에서 일하는 강사노동자들이 투쟁을 시작했다. 연세대 한국어학당은 1959년 우리나라 어학교육기관 중 최초로 설립돼 지금까지 업계 1위라고 뽑히고 있는 전문기관이다. 그러나 실제 업계 1위를 만들어 온 강사들의 처우는 업계 최하위였다는 것이 노동조합(대학노조 연세대학교한국어학당지부)이 설립되면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강사들은 연봉 천만원이 겨우 넘는 돈으로 자신의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

수업 시수별로 시급을 책정해 월급을 결정하고 있어, 수업 준비를 포함한 모든 업무시간은 공짜노동이 됐다. 신입강사의 시급은 2만6천800원. 한 달 100만원 안팎의 월급을 받아야 했고 30년 가까이 근무한 강사는 200만원이 안 되는 월급을 받았다. 어학당 강사들은 12단계의 호봉표를 적용받는데 최고 시급 3만6천200원에 도달하면 일체 임금인상은 없었다.

코로나19로 수업시수마저 줄어 강사들은 도저히 수업만으로 먹고 살 수가 없어 카페나 쿠팡 등에서 다른 알바를 병행해야만 했다. 그렇다고 공짜노동으로 취급되는 학생들 관리업무, 시험문제 출제, 채점관리, 수업준비를 위한 회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무기계약직’인 어학당 강사들은 월급이 반 이상 깎여 나가도 코로나 지원금도 받을 수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내노라하는 명문사학재단인 연세대에서 부설기관으로 설립한 교육기관에서 벌어진 일들은 “배 째라”의 연속이었다. 노동자들은 법이 있어도 보호받을 수 없었고 정책이 있어도 사각지대로 내몰렸다. 그나마 노동조합을 설립하니 10년 동안 월급을 동결한 학교가 찔끔 임금인상을 하자 했고 연차휴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시급이 올라도 강의 시수가 줄어들면 임금은 하락한다. 학교는 임금은 찔끔 올려주고 강의 시수 배정을 무기로 노동자들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그래서 연세대학교한국어학당지부는 “투쟁 없이 학교는 아무것도 돌려주지 않는다” “투쟁 없이 학교는 바뀌지 않는다는 걸 배웠다”고 말한다.

지부는 2019년 ‘업계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노동조합’이다.

모국어를 가르치고 있다는 자부심에 열악한 임금 수준은 참고 일해 온 강사노동자들이 용기를 내 뭉쳤다. 돈보다 내 일에 대한 자긍심이 노동조합을 건설한 동기가 됐다.

연세대 한국어학당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영악화를 이유로 학생들의 등록금을 올려 등록금 수입을 11%나 더 받아 챙겼다. 그리고 고통분담을 주장하며 강사들에게는 임금동결을 말했다. 그런 와중에 어학당 적립금 120억원은 교육의 질을 위한 투자에 쓰지 않고 학교 재단의 재산을 불리기 위한 건물짓기로 사용됐다.

학생들은 등록금을 걷기 위한 수입원에 불가할 뿐, 학생들의 학습권에 대해 관심이 없는 학교본부는 3시간가량의 수업을 위해 6~7시간을 학교에 머무는 강사들의 노동을 불필요한 것으로 치부하고 공짜노동을 강요해 왔다.

자긍심을 갖고 일해 온 자신의 노동에 대한 사회적 가치를 학교가 평가절하하고 있다는 것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고 노동자들은 말한다. 소중한 학생들과 후배 강사들을 위해서라도 이제는 “자신의 일에 대한 자긍심을 값싸게 취급하는 만연한 이 현실을 뿌리채 뽑아야 한다”는 것이 노동조합을 만든 연세대 한국어학당 강사노동자들의 결심이다.

학교본부는 노사 교섭 과정에서 ‘업계에서 최초로 교섭이 진행되는 것’이기에 강사들의 처우가 개선되면 다른 학교로부터 욕을 먹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 싸움은 반드시 이겨야만 한다.

학생을, 강사를 돈놀이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업계를 바꾸고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라도 꼭 이겨야 한다.

한국어와 문화를 배우고 싶어 한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수많은 어학당의 학생들. 그런 학생들에게 ‘한국’을 알리고 있다는 자긍심을 지키기 위해서 노동자들의 존엄이 이겨야 한다.

서울청년진보당 부대표 (say_jin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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