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은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이다. 일하다 죽음을 맞은 노동자만 추모하는 날이 아니다. 살아 있고 출근하는 노동자들을 위해 싸우는 날이기도 하다. 노동현장에서 스러져 간 노동자들을 진정으로 추모하는 길은 무엇일까.
 

한인임 일과건강 사무처장
한인임 일과건강 사무처장

4월28일은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이다. 1993년 태국의 한 공장에서 화재가 났는데 당시 고가였던 인형 완제품을 훔쳐 갈까 봐 회사가 문을 걸어 잠근 탓에 노동자 188명의 충격적인 사망이 있었다. 3년 뒤 4월28일 국제연합(UN) ‘지속가능한 발전위원회’ 회의에 참석했던 각국 노동조합 대표자들이 추모의 촛불을 들면서 기념일이 시작됐다. 사건이 발생했던 시기로 보면 올해는 벌써 29년째이다. 그런데 당시 상황이 웬일인지 다른 나라 일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

역시, 통계청(KOSIS)에서 제공하는 국제 통계(ILO 통계) 자료에 따르면 1993년 한국은 태국과 거의 유사한 수준의 ‘근로자 10만명당 치명적 산업재해수’를 보이고 있다. 태국은 29.2건, 한국은 29.0건이었다. 30년 전이니까 그런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같은 통계에서 제공하고 있는 값은 30년 뒤에도 큰 차이가 없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019년 기준 태국 5.5건, 한국 4.6건이다. 문제는 1993년 당시 1인당 국민총소득이 한국은 약 9천달러였고 태국은 2천달러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2019년에 와서는 한국이 3만2천달러고 태국은 7천500달러다. 한국은 태국보다 무려 5배나 높은 경제성과를 보이고 있음에도 과거에나, 현재에나 태국과 유사한 수준의 중대산업재해 수준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반면 태국은 현재 1993년 한국의 경제수준보다 못하지만 한국 수준으로 중대산업재해를 줄여 왔다. 산업재해 관리에서는 태국이 훨씬 선진국인 셈이다. 통탄할 노릇이다.

우리는 2022년 현재 또다시 심슨 인형을 만들다 화염에 휩싸인 노동자 한 명 한 명을 기억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만큼 많이 스러져 간 한국의 노동자 한 사람 한 사람을 기억하고자 한다. 추모는 기억하는 자의 몫이다.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자 하는 것인가. 언제라도 어떤 상황에서라도 노동자들은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혹은 이윤의 동기가 돼 사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억하지 않으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작게라도 각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단체에서는 묵념을 하고 선전물이나 홍보영상을 배포하고 인증샷을 올린다.

한편 2022년의 4·28은 또 다른 추모를 요구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국정과제로 목표했던 산재 사고사망률 임기 중 절반 감축이 크게 실패했다. 그럼에도 노동시간을 큰 폭으로 줄였고 산업안전보건법도 전부개정되는 성과가 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을 마련했다는 점이다. 새로운 시작이 있었다. 따라서 이제 4·28은 새로운 시대를 여는, 기억하지만 넘어서려는 추모의 장이 돼야 한다.

그런데 5월 시작되는 새 정부가 이런 새로운 시작을 가능하게 할지 우려된다. 장시간 노동을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대통령 당선자의 서늘한 식견에 더해 중대재해기업 처벌 1호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벌써 법 개정 얘기가 나오는 상황이다. 이런 분위기라면 중대재해예방을 목표로 움직이던 기업들이 다시 손을 놓게 될 수도 있다. 더디지만 조금씩 개선돼 왔던 이전 정부보다 새 정부는 노동자의 안전수준을 높여 더 나은 정부가 돼야 하지 않겠는가. 새 정부에서는 새로운 추모의 물결을 만들어야 한다. 산업안전보건청을 만들어 더 촘촘하고 방대한 감독과 예방조치가 이뤄져 사망한 노동자들에게 더 이상 억울한 죽음이 없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오히려 ‘과로사예방법’을 만들어 노예노동으로 사망하는 노동자가 없어질 것이라고 망자들을 위로해야 한다. 규모가 작은 사업장 노동자라고 해서, 특수형태근로종사자라고 해서 안전보건 규제에서 차별이 이뤄져서는 안 된다. 그래야 스러져 간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와 특수고용 노동자의 원혼을 달랠 수 있다. 이는 새 정부가 국민의 사랑을 받기 위한 기본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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