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현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

4월28일은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이다. 추모의 연원은 1993년 5월10일 심슨 가족 인형을 만들던 태국 케이더(Kader Industrial) 공장 화재로 거슬러 올라간다. 회사는 노동자들이 인형을 훔쳐 간다며 대피로가 될만한 문들을 잠근 채 일을 시켰고 화재가 나자 188명의 노동자가 대피하지 못하고 사망했다. 1996년 4월28일 유엔본부에서 열린 ‘지속가능한 발전위원회’에 참석했던 노동조합 대표자들이 이 비극적인 사건을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촛불을 들었다. 이전부터 미국노총은 1971년 4월28일 안전보건청(OSHA)과 국립안전보건연구소(NIOSH) 설립일에 맞춰 1987년부터 4월28일을 ‘산재 노동자 추모의 날’로 기념해 왔고, 캐나다에서는 1914년 4월28일 ‘노동자 산재보상법’ 통과를 기념해서 1991부터 4월28일을 ‘노동자 애도의 날’로 정하고 있었다. 이러한 연유로 1996년 이후로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4월28일을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1988년 7월2일 문송면이 수은중독으로 사망한 이후 1990년부터 7월을 ‘산재추방의 달’로 정해 다양한 행사를 진행해 오다가 2002년부터 4월28일을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로 함께하고 있다.

추모의 기본은 기억하고 환기하는 것이다. 향을 사르고 꽃을 올리고 리본을 달고 통곡하고 절규와 같은 비문을 새기고 매년 때가 되면 비석 앞에서 다시 선다. 추모의 방식들은 제각각일 수 있지만 모두 사람들 속에서 잊히지 않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반면 추모하고 기억하는 것이 불편한 자들이 있다. 다소곳이 의자에 앉은 소녀상이 세워지는 세계 곳곳마다 찾아다니며 훼방을 놓는 일본 제국주의 후예들이 있다. 태안화력발전소 정문에 안전모를 쓰고 작업복 차림을 한 산재 노동자 조형물 하나 세우는 일조차 2년 넘게 이 핑계 저 핑계로 미룬 이들이 있다. 현대중공업은 38년 만에 일하다가 숨진 473명의 노동자 이름을 새겨 넣은 추모비 하나 회사 안에 세운 것을 두고 시설관리권·질서유지권 운운하며 철거를 강요하고 있다. 추모로 소환되는 자신들의 불명예스러운 이름과 책임에 대해 외면과 망각을 조장해야 하는 것이다. 비극에 책임이 있는 자들의 적반하장이다.

추모를 통한 기억과 환기의 작용은 책임이 있는 자들에게 성찰을 가져오고 사회적으로는 비극의 재발을 막도록 체질 개선을 불러오는 것까지 닿아야만 한다. 4·28의 연원이 된 케이더 공장 화재에 대해 태국 법원은 담배꽁초를 버려 화재를 일으켰다고 지목된 노동자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지만 대표·전무이사 등 14명의 임원에게는 무죄를 선고했다. 188명이 사망하고 469명이 다친 재해에 대해 회사에 물은 책임은 52만바트, 현재 환율로 2천만원이 안 되는 벌금이 전부였다. 한국에서도 유사한 비극이 있었다. 1960년 3월2일 신발을 만드는 부산 국제고무공업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톨루엔이 주성분이었던 고무풀(본드) 유증기와 인화성 물질로 가득 차 있던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했지만 여기도 노동자들의 신발을 훔쳐 간다는 이유로 출입문은 잠겨 있었고 관리자는 탈출하는 노동자들을 막아서서 불을 끄라고 강요했다. 결국 68명의 노동자가 사망했고 29명이 부상을 당했다. 장난으로 성냥불을 그어 화재를 일으켰다고 지목된 26세의 신입 여성노동자와 말단 관리자만 처벌됐고 관리 책임이 있는 이들과 기업에는 책임을 묻지 않았다.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만으로는 노동자들의 죽음을 막기 어려웠다. 그래서 석탄화력발전소에서 김용균이 사망하자 유가족과 동료 노동자·시민들은 적극적인 추모의 방식을 보여줬다. 2018년 온 겨울을 길거리에서 보내며 싸웠다. 국회에서 20년 가까이 차곡차곡 쌓여 묵혀 있던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을 이끌어 냈다. 일터에서 죽어 간 노동자의 이름을 달고 바꾼 법을 통해서 더 이상 그런 비극이 재발되지 않기를 희망했던 것이다. 그러나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부개정되고도 여전히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죽고 쓰러지고, 추모의 분향을 멈출 새가 없었다. 기억하고 환기하고 잊히기 전에 법을 바꿨지만 책임 있는 자들은 외면해도 될 만했던 것이다. 향불을 올리는 것으로도 기존의 법을 바꾸는 것으로도 닿지 않으니 새로운 법을 세워야 했다. 10만명의 국민동의청원 서명을 받고 길거리에 나서고 천막을 치고 유가족은 다시 곡기를 끊었다. 그렇게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만들어진 것이다. 역시 유가족·노동자·시민들의 가장 적극적인 추모의 방식이었다. 기억하고 환기하는 것을 넘어서서 책임 있는 자들에게 제대로 책임을 묻는 것을 요구하고 관철시켰다.

이제야 반응을 한다. 기업과 사장님들이 불안해서 사업을 할 수가 없다고 한다. 예전부터 그랬어야 했다. 노동자들이 쓰러지고 떨어지고 다치는 것에 기업과 경영책임자들이 걱정하고 조바심 내야 했다. 불안과 조바심을 가지고 현장을 다시 둘러보고 지금껏 외면했던 노동자들의 불안을 들어야 할 일이다. 어떻게 하면 처벌을 피할까 로펌에 돈을 안기고, 어떻게 하면 법을 무디게 할까 정치인에게 로비하고 구실 삼을 면죄의 조항들을 내놓으라고 노동부를 압박할 일이 아니다. 무엇을 하면 될지 물어봐야 할 대상을 제대로 찾아야 한다. 이미 벌어진 사안을 놓고 어떤 판결을 받게 될지가 아니라, 어떤 예방조치가 필요했는지를 궁금해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 취지를 지키고 엄중 적용하도록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는 것이 바로 지금 필요한 추모의 방식이다. 노동자들의 위험과 죽음에 무책임했던 기업들이 부고장 같은 판결문을 받고, 중대재해로 처벌된 기업의 추모비를 세우게 되는 것을 희망하는 것이 아니다. 법이 후퇴하지 않을 것임을 결연히 보여 기업과 행정당국이 진짜로 해야 할 일을 찾아 나서도록 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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