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탁 노회찬재단 사무총장

노회찬재단에서 4월부터 ‘월간 노회찬’이라는 이름으로 강연회를 시작했다. 매월 특정한 주제의 저자를 불러 강연을 듣고 참석자들과 함께 저자와 대담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행사다. 주제는 특정 영역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영역에 걸쳐 선정할 계획이다. 그 첫 시간으로 자신의 기획기사를 모아 <진보를 찾습니다>는 책으로 엮어 낸 박찬수 한겨레신문 기자를 불러 강연과 대담을 진행했다.

이 책은 지난해 말에 출간됐으나 대선의 소용돌이 속에 관심 있게 본 분들이 많지는 않을 듯하다. 아직 소용돌이의 먼지가 가라앉지 않았다. 정치 현상을 보고 있노라면 정작 다리가 간지러운데 마치 등을 긁고 있는 모습을 보는 듯하다. 그러나 성찰적으로 진보정치의 길을 찾는 이들에게 이 책은 중요한 참고와 시사점을 주리라 생각한다. 저자는 답을 제시하는 방식이 아니라 기자의 시선으로 생각해 봐야 할 지점을 짚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

이 글은 진행된 대담을 소개하려는 건 아니다.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강연을 들으면서 나 자신에게 깊이 생각해 봐야 할 지점으로 짚어 놓은 것 중 몇 가지를 공유하고자 하는 의도다. 2000년 이후 한국 사회에서 진보를 본격적으로 정치 영역에 등장하게 만든 사건은 민주노동당의 국회 진출이다. 특히 노회찬 의원은 진보정치가 무엇을 말하는지 구체적이고 형상화된 모습으로 국민에게 보여줬다. 그 이전까지 정치에서 진보는 금기의 영역이었고, 진보주의적 정치 지향을 가진 정치인들도 진보라는 말을 쓰기 꺼렸다. 김대중 대통령은 당시 가장 진보적인 현실 정치인이었지만 단 한 번도 진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진보의 스펙트럼을 넓힌 건 노무현 대통령이다. 집권 시절 그가 말하는 진보는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퇴임 후 던진 <진보의 미래>를 찾자는 문제의식은 특히 그의 죽음 이후 많은 이들에게 정치적 지표 역할을 했다. 그 영향은 기존의 민주당과 진보정당 전체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비록 실패한 기획이 됐지만 통합진보당의 탄생도 그 영향이었고, 그 실패 이후 언론에서 민주당을 진보의 범주에 큰 부담 없이 포함시키게 된 것도 그 영향이었다. 참여와 연대를 내용으로 하는 실용적 진보와 현실에 뿌리를 내리기 위한 세속화된 진보의 만남이었던 그 기획을 과거의 아픈 기억으로만 남기지 말고, 과연 예고된 실패였는지 아니면 실행의 오류였는지를 깊이 있게 따져보는 작업은 오히려 지금 절실히 필요하다.

두 번째 질문은 정치개혁이다. 저자는 현 정부의 뉴딜을 직접적으로 비판하기보다는 루스벨트가 주장한 뉴딜의 중요한 핵심을 짚으면서 생각할 지점을 던져 준다. 많은 이들이 뉴딜, 즉 새로운 약속(new deal)을 후버댐 건설 같은 토목공사로 유효수요를 창출한 정책 정도로만 알고 있지만, 실제 중요한 건 뉴딜은 이후 패러다임을 바꾸는 거대한 사회개혁이었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노동자·흑인·여성·이민자 등 잊힌 사람들(forgotten people)의 기본권을 보장한 일이다. 이 개혁을 성공시키기 위해 루스벨트는 국민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모습을 보였다. 과연 우리 정치에 이렇게 잊힌 사람들을 불러내기 위한 거대한 개혁을 시도하는 집단이 있는가,

세 번째는 정체성의 정치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정치에서 누구에게 말을 하는가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대상을 분명히 하더라도 그 말은 보편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지금 정치에서 보편적인 언어로 이야기하는 정치 집단이 있는지 의문이다. 오히려 특정한 집단에 고립돼 분열의 정치, 차이를 확대하는 정치를 반복하고 있는 건 아닌가. 정체성의 정치는 오히려 다양성의 정치를 억압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연대의 복원이다. 사업장으로 고립된 노동운동뿐만 아니라 세대 간 연대의 단절도 심각한 문제다. 젊은 세대에게 진보와 보수는 낡은 구분법이 되고 있다. 공정과 정의를 바라보는 시각도 다르다. 구조적 계급 지위로 좌와 우를 나누는 정치는 현실에서 전혀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오히려 위와 아래의 격차를 중심으로 정치적 지형을 형성해야 하지 않을까. 이념보다는 삶이 사람들에게 더욱 시급하다.

몇 가지만 짚었지만 이만만 해도 상당히 많은 토론이 필요한 지점이다. <진보를 찾습니다>는 제목을 쓴 건 진보가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일 터이다. 그러기에 또 진보가 한국 사회에 제대로 자리 잡았으면 하는 바람으로도 읽힌다. 아무 데도 없다(Nowhere)고 포기하지 말자. 지금 여기에서(Now here) 찾아야 한다. 절실함이 세상을 만들 테니까.

노회찬재단 사무총장 (htkim8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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