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자 취임을 앞두고 재계가 노동시장 규제 완화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달 한국경총이 노동시간 유연화와 기간제 노동자 사용기간 연장 등을 요구한 데 이어 스타트업 업계에서도 ‘노동 유연화’를 주장하고 나섰다.

박지순 고려대 교수
“노동시간, 임금지급, 고용형태 유연화해야”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은 21일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작성한 이슈페이퍼를 발간하고 “획일적 규제에서 벗어나 신생 스타트업에 대해 유연한 규정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포럼은 마켓컬리·쏘카·당근마켓·배달의민족 등의 서비스를 운영하는 스타트업 1천841개와 네이버·카카오를 포함한 거대 IT기업이 모인 사업주 단체다.

박 교수는 이슈페이퍼에서 스타트업 업계의 고용촉진을 위한 노동시간과 임금제도, 기간제 노동에 관한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윤석열 당선자가 공약한 사무직 초과근무수당 지급제외 제도(화이트칼라 이그젬션)와 같은 근로시간 적용제외를 제시했다. 새로운 스타트업의 경우 설립 이후 최초 2년간은 근로기준법 59조에서 정하는 근로시간 특례 대상 규정에 포함해 한시적으로 근로시간 규제에 예외를 두자는 주장도 덧붙였다.

박 교수는 임금체불 사업주의 명단을 공개하는 현 제도가 사업주의 재도전 기회를 봉쇄하는 걸림돌이라고 규정했다. “초기 스타트업은 자금 마련이 어려운 만큼 성과가 발생하기 전까지 임금지급 능력이 불규칙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임금체불을 막기 위해 임금채권보장기금에서 대지급금을 받을 수 있는 요건을 초기 스타트업으로 확장하는 방안을 주장했다. 임금지급 기준도 시간이 아닌 성과(평가)를 통해 지급하도록 임금제도 규제도 풀자고 제안했다.

박 교수는 기간제 사용기간 확대도 주문했다.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에 따르면 기간제 노동자 사용기간은 최대 2년을 원칙으로 하는데, 이를 4년으로 연장하자는 주장이다. 신생기업에 최대 4년까지 기간제 노동자 사용을 허용한 독일 사례를 국내에 적용하자는 얘기다.

이는 지난달 경총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전달한 ‘기업 정책 제안서’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제안서에는 쉬운 해고와 파견과 도급 규제 완화, 기간제 노동자 사용기한 연장, 최저임금제 개편 등의 내용이 담겼다.

“규제완화 아닌 스타트업 생존 구조 갖춰야”

노동계·IT업계 관계자들은 이 같은 재계 주장이 “비현실적”이라고 반박했다. 연간 임금소득이 일정 기준 이상이거나 스톡옵션을 받는 사무직·전문직에게 초과근무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을 도입하려면 소득 기준이 쟁점이 될 수밖에 없다. 서승욱 화섬식품노조 카카오지회장은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의 경우 스톡옵션을 받는 노동자는 적용하고, 우리사주를 받는 노동자는 적용하지 않느냐”면서 “기업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은 투자금에 의해서도 끊임없이 변할 뿐더러 스톡옵션을 노동자들에게 조금씩 나눠주는 경우 대부분 노동자들이 예외가 되는 상황도 예상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서 지회장은 “현재 IT·스타트업 업계는 근무 형태를 원격근무로 전환하고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이 트렌드”라며 “대부분 스타트업들은 (업무)평가제도를 갖추지 않아 임금을 성과에 따라 지급하자는 주장도 비현실적”이라고 평가했다.

제계 주장과 달리 스타트업 업계에 필요한 것은 규제 완화가 아니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차상준 노조 스마일게이트지회장은 “스타트업 종사자들이 걱정하는 것은 스타트업이 생존할 수 있는 환경, 스타트업을 시작할 수 있는 환경 자체가 조성돼 있지 않은 문제”라며 “주요 IT기업이나 대기업들이 독점하고 있는 시장 점유율을 내려놓고 스타트업이 자체적으로 시장을 형성하거나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독점을 규제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은 자본주의 국가 중 미국만이 도입한 제도로 임금을 많이 받는다는 이유만으로 초과근무수당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것은 타당하지 않은 주장”이라며 “노동시장 규제를 완화해 스타트업을 육성한다기보다 정부가 이미 하고 있는 세제혜택이나 지원책을 확대하는 것이 옳다”고 밝혔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장시간 노동은 과로사나 노동자 건강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노동시간 규제를 완화하자는 논의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며 “이미 선택적 시간근로제 등을 도입해 시행하고 있기 때문에 경영계의 반복된 규제완화 주장은 정합성이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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