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국제노동기구(ILO) 87호, 98호, 29호 협약이 발효된다. 한국 정부는 국회의 동의를 거친 협약 비준안을 지난해 4월20일 ILO에 기탁했다. 기탁일부터 1년 후부터 협약의 효력이 발휘됨에 따라 앞으로 87호(결사의 자유와 단결권 보장), 98호(단결권과 단체교섭권), 29호(강제노동 금지) 협약은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갖게 됐다.

노조법 개정했지만 기본협약과 충돌
무엇이 우선할까

헌법에 의해 체결·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지닌다. 그래서 국제조약을 비준할 때는 국내법과 상충하지 않도록 이행 입법 과정을 거치게 된다. ILO 협약 비준을 추진한 문재인 정부는 2018년부터 노사정 대화를 통해 3개 노동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 개정을 추진했다.

하지만 노사정의 첨예한 대립 끝에 지난해 1월 국회를 가까스로 통과한 3개 법안은 ILO 기본협약에 충실하기보다는 ‘봉합’ 수준에 가까워 지금까지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조항은 비종사 조합원의 노조 임원 자격 제한이다. 실업자와 해고자의 노조 가입을 막았던 기존 노조법을 ILO 협약에 맞게 뜯어고치는 과정에서 기업별노조 임원과 대의원의 자격 제한 조항이 신설됐다. 사업 또는 사업장에 종사하는 종업원이 아닌 조합원(비종사 조합원)은 기업별 노조의 임원이나 대의원으로 선출될 수 없도록 자격을 박탈한 것이다. 비종사 조합원은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한도 결정과 교섭대표노조 선정을 위한 조합원수 산정시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87호 협약은 명시적으로 노조 대표자와 임원 선출은 완전히 자유롭게(in full freedom) 해야 하고 당국의 개입이나 권리 제한을 엄격하게 제한한다. 노조법과 협약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지점이다. ILO 결사의 자유위원회는 한국 노조법의 임원 자격을 조합원으로 한정하는 조항(옛 노조법 23조1항)의 폐지를 요구해 왔다. 노조 조합원의 임원 자격 제한은 ILO 협약 비준 직전에 발생했던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노동조항 위반 분쟁에서도 가장 중요한 쟁점 중 하나였다. ILO 협약과 충돌하는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국제분쟁이 또 발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기본협약과 노조법이 충돌하는 경우 노동계는 “신법 우선원칙과 특별법 우선원칙에 따라 ILO 기본협약이 국내법에 우선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정부는 “ILO 기본협약이 발효되면 국제법규로서의 성격을 갖게 되는데 헌법에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지므로 기본협약이 국내법의 상위법으로 기능한다고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ILO 기본협약과 노조법의 충돌로 법적 다툼이 발생한다면 최종 판단은 누가 하게 될까.

한국 정부 3년마다 이행보고서 제출
이중 삼중 이행 감시 메커니즘 작동

ILO 기본협약을 비준·가입하면서 부여되는 국제법적 준수 의무는 이를 위반할 경우 법적 책임이 뒤따른다는 의미다. 우선 협약을 비준하게 되면 비준국 정부는 최소 3년마다 국내법과 관행이 협약의 모든 개별 조항에 어떻게 부합하는지 상세한 보고서를 제출해야 할 의무가 생긴다. 한국 정부는 2023년부터 3년마다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노사단체는 정부가 제출한 보고서나 협약 이행상황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할 수 있다. 이에 따라 1년 후부터 ILO 기본협약 이행을 둘러싼 노사정의 힘겨루기가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ILO 이행감독 절차는 정기절차와 특별절차로 구분되는데 정기절차는 회원국들이 정기적으로 ILO에 제출하는 국가보고서에 대한 정기적 심사 절차다. 우선 정부의 이행보고서가 ILO 사무국에 송부되면 협약·권고 적용 전문가위원회(CEACR)에서 벌률 심의를 받는다. 20명의 노동법 전문가들이 해당 정부에 검토의견을 수록하는데 심각한 위반 사례가 있을 경우 기준적용위원회에 회부할 수 있다.

기준적용위원회는 ILO 총회 기간 설치되는 상설위원회로, 노사정 3자 대표로 구성한다. 전문가위원회 보고서에 수록된 각국 협약 불이행 사례 중 25개 내외를 선정해 심의한다. 기준적용위원회 심사 대상에 오르면 ‘노동후진국’으로 찍혀 국제적인 망신을 받는다.

특별절차는 ILO 회원국에 대한 진정제기(representations)나 제소(complaints)할 때 진행되는 절차다. 한국이 비준국이 되면서 가장 큰 변화는 ILO헌장 24조에 따라 노사단체가 비준 협약 위반에 대해 진정을 제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제소는 비준 협약을 위반한 회원국에 대해 ILO이사회나 ILO총회 성원이 ILO헌장 26조에 의거해 할 수 있다. 제소될 경우 사실조사위원회(Committee of Inquiry)를 거쳐 ILO 이사회가 당사국 정부에 권고하게 된다. 당사국 정부가 권고를 수용하지 않으면, 총회 결의를 통해서 해당국 정부를 상대로 직접적인 제재를 가하거나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도 가능하다.

비준 여부와 상관없이 결사의 자유위원회 진정 절차도 가능하다. 이미 한국은 1991년 ILO 가입 이후 올해 4월까지 16차례나 결사의 자유 침해 사건으로 진정됐다. 이 가운데 15건은 종결됐고 1건은 점검 중이다. 결사의 자유위원회가 내린 결정이나 권고의 대상국가가 87호·98호 협약을 비준한 당사국인 경우라면 위원회는 해당 사건을 전문가위원회 송부해 이행상황을 감독하도록 할 수 있다. 또 위원회의 거듭된 권고에도 협약 위반행위가 지속되면 사안이 조사위원회 절차로 회부될 수도 있다. 협약 비준 이전에도 위원회가 결사의 자유 침해 사안을 판단했지만, 비준 이후에는 위원회 권고의 무게가 더 중대해진다는 의미다. 그동안 위원회가 진정이 제기된 특정 쟁점만 심의했다면 앞으로는 한국 노동관행이 국제기준에 부합하는지까지 폭이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국내법원, 법적 기준으로 ILO 기본협약 적용할까
지금보다 노동기본권 해석 확대 불가피

다른 국제 인권조약과 마찬가지로 ILO 기본협약도 기본적 권리의 최소기준을 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소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표현들이 많다. 이 때문에 ILO 기본협약과 노조법이 충돌한다면 결국 공은 법원으로 가게 된다.

남궁준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협약과 국내법 판단부터 충돌한다면 무엇이 우선하는가에 대한 판단, 또 ILO 이행감독기구의 해석을 법원이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다양한 법리적 쟁점이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며 “궁극적으로는 이를 판단하는 기관은 법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ILO 이행감독기구의 해석과 국내법에 대한 법원의 해석에서 가장 차이가 나는 대표적인 쟁점은 파업권이다. ILO 이행감독기구는 파업권 행사와 관련해 “노조가 정부의 경제·사회정책을 비판하기 위한 목적을 가진 경우”까지 포괄적으로 규정한다. 결사의 자유위원회 결정례에 따르면 파업권이 단협 체결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노동분쟁으로만 제한돼서는 안 된다. 또 위원회는 원청을 대상으로 한 사내하청 노동자 파업을 이유로 해고한 것에 대해 심각한 고용상 차별로 보고 98호 협약 위반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반면 한국 법원은 노조법에서 보장한 ‘정당한 쟁의행위’ 범위를 협소하게 해석해 정치적 목적의 파업을 불법으로 보고 업무방해죄 등을 적용해 왔다. 이와 관련해 재계는 “ILO 기본협약 87호, 98호, 29호 내용이 추상적이기 때문에 현행 노조법을 대체하기 어렵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노동기본권에 대한 해석이 ILO 협약과 조문을 적용해 지금보다 폭넓어지게 될 것으로 전망한다. 박귀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ILO 기본협약이 국내법적 효력을 지닌다는 의미는 분쟁이 생겼을 때 법적 판단 기준이 된다는 의미”라며 “결국 앞으로 법원이 헌법과 ILO 기본협약에서 보장한 노동기본권 취지에 맞는 부합하는 방향으로 노조법을 해석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ILO 이사회 장면. 자료사진
▲ ILO 이사회 장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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