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이면 세월호 참사 8주기다. 참사 뒤 대통령이 한 번 바뀌었고, 곧 다른 대통령이 취임한다. 그럼에도 우리의 질문은 여전하다. 참사의 진실은 무엇이고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우리 사회는 안전한가.

백도명 녹색병원 직업환경의학 센터장
백도명 녹색병원 직업환경의학 센터장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바로 그 시간, 광화문과 청계천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거리의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박근혜 정권에 항의하기 위해 아침부터 거리에 나와 있었다. 화면에 비춰진 장면과 수백 명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자막이 마치 현실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던 순간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세월호 참사는 다른 수많은 참사들과 달리, 우리 사회에서 진상규명을 다른 무엇보다 먼저 요구한 참사였다. 그 결과 비록 참사 원인 규명에 적용되기에는 아직도 멀지만, 참사 수습에 있어 실질적 의미의 부작위로 인한 살인이 인정된 첫 번째 사례가 됐다. 즉 사회가 제기하는 ‘도대체 왜?’라는 화두에 대한 마지못한 답변이었겠지만, 대법원은 처음으로 “반드시 결과 발생에 대한 목적이나 계획적 범행 의도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쉽게 방지할 수 있었는데도 결과 발생을 용인하고 방관한 채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다는 인식을 하면 족하다”는 근거 하에 “부작위로 인한 살인”을 인정했다.

세월호 발생 이후 ‘도대체 왜?’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우리는 재해에 대한 우리 모두의 부작위를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 결과 2014년 4월을 기점으로 1년 동안 다른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이 없는 상태에서 산재 사망사고의 발생이 급감했다는, 그리고 그 이후 다시 증가했다는 조사결과가 최근에 나왔다. 결국 세월호라는 부작위를 접하면서 그 반대 개념으로서의 작위, 즉 수행해야 할 의무를 실제 수행하는 것의 중요성을 사회 모두가 느끼게 된 첫 번째 사건이 됐다.

우리는 흔히 미술품을 감상하거나 유적을 탐방하면서 “알아야 보이고, 봐야 느낀다”라는 말을 한다. 그런데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재해를 초래하는 위험 또한 마찬가지다. 위험은 ‘의심해야 지목할 수 있고, 지목해야 그에 대한 행동을 할 수 있다’. 이는 우리의 뇌가 사물을 인식하는 데 있어, 있는 그대로 그냥 보거나 듣는 대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체화된 개념을 바탕으로 보거나 듣는 것의 내용을 예측함으로써, 그 결과 사람을 비롯한 모든 생물들이 상황을 인식하고 행동하게 된다는 뇌과학적 사실에서도 그러하다.

즉 아름다움이나 위험은 있는 그대로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체화된 개념에 근거해 예측돼야 하는 현상들이다. 여기서 재해 발생과 그 수습에서 부작위가 성립하려면, 작위에 대한 사회적 기대와 그에 따른 체화된 개념이 있어야 한다. 위험에 대한 작위는 위험을 인식하고 그에 취해야 하는 적절한 조치에 대한 사회적 기대를 통해 수행된다. 우리는 세월호를 통한 부작위를 접하면서 그 대칭점에서 작위를 고민한 결과, 지난해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을 어렵사리 갖게 됐다. 위험에 대해 수행해야 하는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는 작위의 책임을 지움으로써 사업주에게 위험 의심과 관리를 사회적으로 체화시키지 않는 한, 반복되는 산재를 줄일 수 없다는 합의의 결과였다.

이러한 배경이 있는 중대재해처벌법을 단지 ‘기업인들의 경영의지를 위축시키는 법’이라고 혹평하는 대통령 당선자의 언급에서 우리는 사업주의 위험 의심 체화가 단지 경영의지 위축으로 이해되는 인식의 편협함을 엿볼 수 있다. 정부의 부작위가 벌어지는 원인에 대한 학계의 연구는 ‘예견되는 실패를 최소화해야 할 정부의 예기적 책무성을 다하지 못하는 이유가 단순히 역량부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견되는 바를 선제적으로 조치하기 어렵게 만드는 조직의 행태와 제약에 있다’는 점을 누누이 지적하고 있다. 정부와 마찬가지로 기업에서도 부작위의 책임은 역량부족에서가 아니라 조직의 행태와 제약, 즉 조직을 책임지는 사업주의 태도에서부터 찾아야 한다.

부작위(不作爲)란 일정한 처분을 해야 할 법률상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의 건강권·행복권 등은 이들을 저해하는 위험과 유해를 지적하고 관리해야 할 의무를 동반한다. 이제 세월호 참사를 다시 기억하며, 그리고 새 정부를 맞이해, 다시 한번 우리는 우리 모두의 부작위를 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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