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애림 노동권 연구활동가

지난 1일, “아마존노동조합(Amazon Labor Union)”이라고 쓰인 형형색색의 티셔츠를 입은 다양한 피부색의 노동자들이 교섭대표노조 승인 소식에 얼싸안고 환호하는 소식이 전해졌다. 미국에서만 두 번째로 많은 노동자를 고용한 거대 기업, 세계 2위의 부자로 온 세계가 코로나로 고통받는 가운데에도 우주여행을 다녀온 제프 베이조스가 지배하는 아마존에서, 미국 최초로 아마존 노동자의 교섭대표노조가 승인된 순간이었다.

우리에겐 낯설지만 미국에서 노조설립 자체는 특별한 제한을 받지 않는다. 다만 노조가 어느 사업장 노동자를 위해 단체교섭을 하려면, 해당 사업장 전체 노동자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조합원이 아니라 전체 노동자 과반수의 지지를 얻어야 하기 때문에, 노조와 그걸 막으려는 사용자 사이에 치열한 싸움이 벌어진다. 미국 사용자들은 반노조 활동을 기획할 수 있는 로펌에 천문학적 비용을 지불하고, 노조에 반대표를 던지도록 다양한 압박을 가한다.

아마존은 이런 미국 사용자들의 아이콘처럼 여겨졌다. 십수 년간 미국 내 아마존 노동자들을 조직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완강한 무노조 전략에 부딪쳐 번번이 실패했다. 지난해 4월 앨라배마주 베서머의 아마존 노동자들을 상대로 한 도·소매·백화점노조(RWDSU)의 승인투표는 버니 샌더스 상원 의원 비롯한 각계의 지지 속에서도 노조가 패배했다. 물론 아마존 사용자가 투표 과정에 부당하게 개입한 것으로 밝혀져 연방노동관계위원회(NLRB)가 재투표를 허용하긴 했지만, 아마존의 반노조 정책이 얼마나 완강한지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아마존은 지난해 한 해만 430만달러를 반노조 컨설턴트들에게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물류창고에 상주하면서 노동자들을 상대로 ‘강제 면담’을 진두지휘한다. 그들은 노조가 왜 소용없는지, 노조가 교섭권을 얻게 되면 노동자들이 어떤 손해를 입을지 등 온갖 가짜 정보들을 전달한다. 최근 공개된 영상에서 베이조스까지 나서서 “노조 조직가들은 우리 회사 외부인들이다” “노조는 노동자들의 이익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조합비)에만 관심이 있다” “노조가 교섭권을 얻으면 아마존 노동자들과 회사가 직접 소통할 수 없게 된다”는 식의 악성 여론전을 벌이는 모습이 나왔다. 심지어 아마존 사내 메신저앱은 특정 단어들을 차단하도록 설계됐는데, 여기에는 “화장실” “노조” “해고” “임금인상” “공정” 등이 포함된다.

그런데 불과 몇 달 전까지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아마존의 뉴욕주 물류창고에서, 기존 노조의 도움도 받지 못한 독립·신생노조인 아마존노동조합이 8천여 노동자의 교섭대표노조로 승인된 것이다. 최근 인터뷰 기사들을 통해 승리의 비결을 엿볼 수 있다. 2년 전 뉴욕주가 코로나 감염의 중심지가 됐을 때, 뉴욕 스태튼섬 물류창고의 반장이었던 크리스천 스몰은, 창고 내 부실한 방역조치에 문제제기했다가 해고당했다. 아마존 창고 노동자들은 하루 12시간 이상의 교대근무에 휴식시간은 15분씩 2회에 불과한 살인적 노동강도를 견뎌야 했다. 물품 스캔작업을 5분만 하지 않아도 “업무 외 시간”으로 경고가 뜨는 시스템에서 안전은 불가능했다.

해고된 스몰과 그의 동료들은 매일 물류창고 안팎에서 동료 노동자들과 만났다. 노동자들이 출퇴근하는 버스 정류장에서, 몇 분의 휴식을 갖는 공간에서도 노동자들을 찾았다. 노동자들과 함께 근무하고 함께 쉬면서, 노조가 왜 필요하고 사용자의 반노조 선전이 왜 거짓말인지 끊임없이 대화를 나눴다. 이번에도 아마존은 그들이 회사 외부인이라고 선전했다. 하지만 창고에서 같이 일하고, 출신지역의 언어를 같이 쓰며, 자기 고향의 음식을 가져와서 같이 나눠 먹는 노동자들을 ‘외부인’이라고 느끼는 사람은 없었다.

미국에서 최근 번져 가는 아마존·스타벅스 노동자 조직화 사례는 “불안정 노동자 조직화는 불가능하다” “신규 조직화는 투입하는 시간과 비용에 비해 성과가 없다”는 통념에 신선한 자극을 주고 있다. ‘모든 노동자의 노동조합’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지만 관성적인 정책 발표나 집회 외에 실제 조합원이 주변 노동자 조직화에 나서지 않는 우리 노조운동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아마존노조 사람들은 우리와 똑같이 생겼어요”라고 한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미조직 노동자들에게 노조는 ‘구호’가 아니라 ‘동료의 인사’로서 다가가야 한다는 점을.

노동권 연구활동가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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