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진희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

국제연합(UN) 창설 50주년이자 세계여성의 날 20주년이 되는 1995년 9월 중국 베이징에서 4차 세계여성대회가 열렸다. 베이징여성대회에는 전 세계 189개국 정부 대표와 UN 관련 기구, 민간단체 대표 등 약 5만명의 여성들이 참가했다. 특히 베이징행동강령-12개 주요 관심 분야와 전략목표-에서 여성 지위향상을 위한 제도적 장치(Institutional Mechanisms for the Advancement of Women)를 통해 국가기구와 기타 정부기구를 설립하거나 강화할 것을 촉구·선언했다. 그리고 이어 UN이 베이징 선언을 채택함에 따라 세계 각국에 장관급 여성정책 관할 부처인 ‘여성부’가 설립됐으며, 우리나라 역시 1995년 여성발전기본법(현 양성평등기본법)이 제정됐다. 또한 여성 지위향상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이 세계적 흐름으로 자리를 잡은 가운데 15대 대선후보들은 일제히 여성 권리를 위한 부처 신설을 공약으로 내세웠고, 이에 1998년 2월 대통령직속 여성특별위원회가 신설됐다. 그리고 3년이 지난 2001년 고용노동부의 여성 주거, 보건복지부의 가정폭력 및 성폭력 피해자 보호, 성매매 방지 등 업무를 이관받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부가 설립됐다. 여성부는 2005년 여성가족부로 개편돼 현재까지 우리나라 여성·가족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하고 있다.

최근 들어 여성가족부 폐지 논쟁이 격렬하다. 여성가족부가 정치편향적이고 자신들의 존립을 위해 사회를 남녀대립으로 왜곡하며 성별 갈등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여성가족부 폐지 국민청원까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사실 여성가족부 폐지는 이미 2008년 이명박 정부 시절 등장했으나 여성단체 등 여론의 반대로 인해 무산된 경험이 있다. 그러나 2022년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여성가족부 폐지를 핵심공약 중 하나로 내걸면서 다시 논쟁이 격렬해지고 있으며, 특히 현재 MZ세대 남성들을 중심으로 여성가족부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하고 있어 이명박 정부와 달리 여성가족부 폐지가 더욱 가시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2시간 이상 소요된 다른 부처 업무보고와 달리 30분 만에 여성가족부 업무보고를 종료했다는 점에서 현재의 인수위원회가 여성가족부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드러난다. 현재의 인수위원회가 기존의 공약을 그대로 밀어붙이게 되면 여성가족부에서 담당하고 있는 가족 정책은 복지부, 청소년 정책은 교육부, 여성노동 정책은 노동부 등으로 이관될 가능성이 크다. 아마도 여성가족부의 고유업무였던 성평등 업무는 해당 부처통합 성평등 관련 위원회를 신설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여성가족부가 여성만을 위한 성차별적이고 남녀갈등을 유발하는 부서라는 점, 둘째 다른 부서와 업무가 중복된다는 점이다. 과연 여성가족부는 여성만을 위한 차별적 부처이며 이관을 통해 지금의 문제가 해결될까? 여성가족부는 600조원 넘는 정부 예산 중 0.24%에 불과한 1조5천억원의 예산을 쓰는 부처이다. 그나마 1조5천억원의 예산 중 80%에 달하는 예산은 미혼모, 한부모, 학교 밖 청소년 등 취약계층을 위한 가족정책과 청소년정책에 사용된다. 폐지론자들이 주장하는 여성정책에 사용되는 예산은 7.2% 수준이다. 더군다나 7.2%의 예산안에는 경력단절여성 등 사회적으로 보호가 필요한 집단도 포함된다. 이에 온라인에서 떠돌고 있는 정보처럼 여성가족부가 여성만을 위한 차별적 정책을 한다는 주장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일부 폐지론자들은 여성가족부의 중복적 업무를 다른 부처로 이관하면 된다고 주장하지만, 업무이관이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축소로 이어질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과거 청소년 정책이나 가족다양성 문제는 거대부처에서 곁다리 업무로 취급받던 것이었다. 그러나 청소년과 가족다양성이 여성가족부로 이관되면서부터 관련 법·제도가 정비되고 예산이 편성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법안제출권·예산편성권을 가진 독립된 주무부처 폐지와 업무이관은 소수의 취약계층을 다시 곁다리 집단으로 재분류하겠다는 이야기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대통령직속 여성위원회 설치도 마찬가지다. 법안제출권과 국무회의 참여권, 예산편성권 등 어떠한 권한도 없는 위원회는 실질적으로 여성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 너무나 뻔하다.

적절한 예산과 인력을 보장받는 성평등 정책 전담기구의 필요성은 이미 1995년 우리나라를 포함한 189개국의 만장일치로 통과됐던 베이징 행동강령에 명시돼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지난해 유엔여성지위위원회가 베이징 행동강령의 효과적인 이행을 위해 각국의 성평등 전담기구를 강화할 것을 권고했음에도, 협소한 시각과 안티페미니즘과 백래시 정서를 부추겨 정치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시대를 역행하고 있다. 오히려 부처 간 업무 불균형으로 인한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서 복지부 등에 산재한 아동·청소년 정책과 노동부에 일부 포함된 여성노동 등 대상중심 사업들을 여성가족부로 모아서 부처를 개편하는 것이 바른 방향일 것이다. 즉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할 것이 아니라 정책 대상 중심의 기능개편을 통해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기존의 사업들을 재정비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 아닐까?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 (jhjang8373@inoch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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