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4명의 노동자가 지난 25일 출근한 뒤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이들은 서울에서, 경남 거제에서, 부산에서, 충북 청주에서 각각 발생한 4건의 중대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었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지난 1월27일 시행한 이후 가장 많은 사고가 하루 동안 몰아쳤다. 지난 24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고용노동부 업무보고에서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현장 우려’와 ‘지침·해석·매뉴얼·하위법령 개정’을 논의한 바로 다음날 벌어진 일이다. 새 정부의 중대재해처벌법 ‘흔들기’가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것 아닌지 우려 목소리가 커진다.

맞아 죽고, 떨어져 죽고, 끼여 죽고

25일 오후 1시40분께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H안벽에서 크레인(TTC 19번) 엘리베이터를 보수 중이던 하청노동자 A(55세)씨가 위에서 떨어진 3킬로그램 무게의 소켓과 와이어에 머리를 맞아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A씨는 크레인 하부에서 작업 중이었고, 60미터 위에서는 같은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가 와이어 교체작업을 하고 있었다. 크레인에서 상하 동시작업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다. 노동부는 “사고 인지 즉시 작업중지 명령을 하고 사고원인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를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같은날 오후 4시34분께 충북 청주 오창읍 행성화학에서는 정규직인 B(40)씨가 배합실에서 배합기 내부를 점검하다가 설비에 끼여 사망했다. 행성화학은 50명 이상 사업장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이다. 노동부는 작업중지 명령과 함께 조사에 착수했다.

또 이날 건설현장에서도 2건의 사고가 발생해 2명이 숨졌다. 서울 서초동 복합시설 신축공사장에서 오후 12시30분께 지하 3층에서 도장작업을 하던 노동자 C(57)씨가 지하 4층으로 추락해 목숨을 잃었다. 부산 거제동 업무시설 신축공사현장에서는 D(36)씨가 오전 10시20분께 주차타워 지하 1층에서 단열제 마감작업을 하던 중 리프트카가 상승하면서 내려오는 카운터웨이트(인양하중에 맞춰 무게균형을 유지하는 추)에 끼여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이날 오후 1시께 사망했다. 이들 건설현장 모두 공사금액 50억원 이상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사업장이다.

“지금이 중대재해처벌법 무력화 논의할 때인가”

사고가 있기 하루 전날 인수위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 하위법령 개정이 언급됐다. 노동부 업무보고 과정에서 인수위측이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현장 우려”를 전달하자, 노동부는 “우려가 있는 만큼 지침과 해석·매뉴얼, 필요할 경우 하위법령까지 개정해 불확실성 해소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 중대재해처벌법을 완화하겠다는 시그널인 셈이다. 광주 현대산업건설 아파트 붕괴사고로 탄력을 받았던 건설안전특별법 제정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노동부는 건설안전특별법 제정 대신 관련 내용을 산업안전보건법에 포함할 수 있다는 취지로 업무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위가 말한 ‘현장 우려’는 사실상 기업 목소리다. 한국경총은 중대재해 4건이 발생한 25일 “경영책임자 의무 내용의 불명확성을 해소하고 경영자에 대한 하한형(1년 이상)의 징역형을 삭제하는 방향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담긴 ‘신 정부에 바라는 기업정책 제안서’를 인수위에 전달했다. 중대재해 사업장에서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을 낮추라는 의미다.

21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는 경제 6단체장과 만나 “기업이 더 자유롭게 판단하고 투자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제도적 방해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경제 6단체장의 요구사항에는 중대재해처벌법 개정도 포함돼 있다.

노동계는 “최근 시민 대상 설문조사 결과 78%가 중대재해처벌법이 산재사망 감소에 긍정적이라고 평가하고, 기업들이 주장한 것처럼 사업주 처벌이 과다하다는 응답은 18.7%에 불과했다”며 “이 같은 시민들의 기대에 반하는 중대재해처벌법 무력화 시도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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