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 김혜진 기자
▲ 편집 김혜진 기자

5년 전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앞다퉈 내세웠던 대선후보들은, 현재 ‘여성가족부 폐지’ 같은 공약으로 갈라치기하거나 페미니즘을 입에 올리기 꺼려 한다. 정치인의 말과 태도는 실재하는 차별과 불평등을 ‘없는 것’으로 만들고 여성들의 목소리는 지워졌다.

대선을 하루 앞둔 3월8일, 114주년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매일노동뉴스>는 지워진 여성들의 목소리, 그중에서도 월경 경험을 주제로 목소리를 들었다. ‘월경하지 않는 몸’이 표준인 사회에서 월경 경험은 일터에서 차별 근거로 작동했다.

전통적으로 남성의 일터로 여겨지는 건설현장에서 여성 화장실이 미비해 대형 생리대를 하고 일하는 목수, 방호복을 입고 4시간씩 뛰어다니느라 생리대를 교체할 시간도 없는 코로나 병동 간호사, 건당 수수료를 받는 체계에서 휴식은 곧 수입 감소이기에 이를 감수해야 하는 배달라이더. ‘월경하는 노동자’는 존재하지만 가시화되지 않거나, 존재를 드러내면 표준에 미달하는 노동자로 취급되며 노동현장에서 소외돼 왔다. 지극히 사적이고 내밀한 문제로 치부되는 월경 경험. 이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여성의 보편적 경험이며, 건강권·노동권의 문제다.

참고 : 월경은 성숙한 여성의 자궁에서 주기적으로 출혈하는 생리현상을 의미한다. 생리는 이러한 의미와 함께 몸의 생리현상 모두를 의미한다. 월경과 생리 모두 사회 안에서 제 이름으로 불리지 않고 ‘그날’ ‘마법’ 같은 말들로 변주돼 왔다. 숨기고 감춰야 하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고 경험을 공론화해야 한다는 점에서 기사에서는 월경과 생리를 혼용해 사용한다. 

평점·수입 압박에
피 묻은 작업복 입고 일하는 여성들

경북 경주에서 LG전자 렌털제품을 방문점검하는 매니저 서우향(42)씨는 생리를 할 때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생리 양이 많아 1시간마다 패드를 교체해야 하는데 화장실을 원할 때 쓰기 어렵기 때문이다. 고객 집 화장실을 쓰면 ‘만족도평가’에서 불만 후기가 올라오거나 컴플레인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 번은 한 집에서 3~4개 렌털제품을 점검하다 생리대를 갈지 못해 피가 샌 적이 있다.

서씨는 “소변 같으면 참았다가 공중화장실을 가면 되는데 생리 양이 한꺼번에 나올 때는 어쩔 수가 없다”며 “불가피하게 고객 집 화장실을 써도 생리대는 버릴 수가 없어서 휴지에 싸서 들고나온다”고 말했다.

서씨는 생리 양이 많은 날에는 최대한 점검일정을 잡지 않으려 하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월초에 매니저가 ‘자율적으로’ 점검일정을 잡아도 고객의 편의에 따라 변동되기 일쑤고, 특수고용 노동자에게 생리휴가나 연차는 개념조차 없다.

건당 수수료를 받는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에게 휴식은 수익과 직결된 문제이기도 하다. 배민라이더스로 일하는 이민아(27·가명)씨는 생리통이 심한 편이다. 배·허리가 아픈 것은 물론이고 한여름에도 오한이 들기도 한다.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아플 때는 하루 수입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오전 11시부터 밤 11시까지 일하는 이씨가 포기한 대가는 월 수입 380만원 중 20만원 정도다. 보통 진통제를 먹고 참고 일한다. 생리 양이 많은 날엔 화장실을 제때 사용하기 어려워 생리혈이 바지에 묻을 때도 많다. 검정색 바지여서 티가 덜 나는 만큼 그러려니 하고 콜을 잡는다.

화장실 찾아 30분, 생리대 안 팔아
여성을 위한 공간은 없다

‘남성의 일’로 여겨지는 제조업·건설업에 종사하는 여성노동자들은 화장실을 찾는 것부터가 과제다. 대우조선 사내하청업체에서 용접공으로 일하는 심윤주(56·가명)씨는 도크장에서 일할 땐 야외에 화장실이 없어서 애를 먹는다. 거품식 화장실이 있기는 한데 급할 땐 남자, 여자가 같이 들어가서 사용하기도 하고 관리가 잘 이뤄지지 않아 쓰기 꺼려진다. 심씨는 “손도 씻고 해야 하는데 물이 안 나오니까, 물 나오는 화장실을 찾아서 왔다 갔다 하면 20~30분은 족히 걸린다”고 말했다.

사내에 생리대를 살 수 있는 곳도 마땅치 않다. 심씨가 일하는 업체에는 직원 120~130명이 있는데 여성 용접공은 심씨가 유일하다. 현장 가까이에 있는 매점에는 각종 먹을거리만 있을 뿐 생리대는 팔지 않는다. 생리대를 사려면 아예 현장 밖 마트나 편의점으로 가야 한다.

형틀목수로 4년간 일한 윤수연(가명)씨도 화장실이 멀고 더러워서 이용하기가 힘들다고 전했다. 생리를 할 때도 오전·오후 휴게시간에 하루 두 번만 이용한다. 주로 오버나이트 같은 대형 생리대를 쓸 수밖에 없다. 200여명의 종사자 가운데 여성노동자는 10명이 채 안 된다. 건설노조 토목건축분과위원회와 철근·콘크리트 전문건설업체가 체결한 단협에 따라 유급으로 보건휴가를 쓸 수 있지만 안 들어도 될 말들을 들어야 한다. 윤씨는 “여기서 여자임을 드러내면 ‘같이 일 못 한다’는 말이 단번에 나온다”며 “‘그 나이에 무슨 생리를 하냐. 증거를 대라’는 말을 들어가며 일 없는 날, 한가한 날에 겨우 쓴다”고 말했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그 나이에 생리하냐” 조롱부터
‘사생활 문란’ 왜곡된 시선까지

여성들이 많이 종사하는 직종에선 생리휴식권이 잘 지켜지고 있을까. 만성적인 인력부족에 시달리는 간호사들은 본인이 쉬면 동료의 일이 늘어나는 탓에 생리할 때 쉬고 싶어도 쉬기 어려운 구조다. 국립중앙의료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한 이선아(35)씨는 생리기간에 생리휴가를 쓰기 어려웠다. 단체협약에 보건휴가가 유급으로 보장돼 있지만 수간호사가 근무표를 작성할 때 오프(휴일)와 생리휴가를 붙여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대부분 간호사들은 아파도 진통제를 먹고 참고 일한다.

본관 7층 코로나19 병동, 일명 ‘신7병동’에서 일할 땐 방호복으로 인해 땀이 전혀 흡수되지 않아 생리할 때마다 배로 힘들었다. 짧게는 2시간에서 길게는 4시간까지 머리부터 발목까지 온몸을 가리는 전신보호복 레벨D를 착용하고 일할 때면 땀으로 온몸이 젖어도 패드를 갈기도 힘들다. 생리혈이 ‘왈칵’ 쏟아질 땐 보호복 밖으로 샌 적도 있지만 정신없이 바쁜 탓에 가릴 새도 없이 일해야 했다. 이씨는 “생리대를 제때 교체를 하지 못해 생식기 부근에 물집이 생기는 동료들도 있다”며 “레벨D에서 4종 보호복으로 바뀌었을 때도 땀 흡수가 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여서 생리할 때 어려움은 똑같았다”고 말했다.

대한항공 승무원 편선화(40)씨도 무급인 생리휴가를 전보다 ‘쉽게’ 사용할 순 있어도 스케줄 근무를 하는 탓에 생리기간에 맞춰 쓰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통상 매월 21일, 이듬달 근무표가 나오는데 이때까지 다음달에 쓸 생리휴가나 연차 등을 미리 신청해야 반영된다. 쉬고 싶을 때 쉬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스튜어디스 유니폼은 월경하면서 일하기에 더 취약한 환경을 만든다. 조이는 스타킹과 딱 붙는 유니폼, 하얀색 치마는 혹 생리대가 티 날까, 생리혈이 묻을까 하는 걱정들로 일에 집중하기 어렵게 만든다. 스튜어디스는 기내화장실을 써야 한다는 공간적 제약과 밀려드는 업무로 화장실 이용이 어려워 방광염이나 생식기질환에 많이 노출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기 어렵다. 편씨는 “하혈을 하거나 이상출혈을 보이는 경우도 많은데 젊은 후배들은 산부인과에 가는 것을 꺼린다”며 “‘승무원이 사생활이 안 좋다’는 식으로 안 좋게 보는 시선들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월경하는 몸이 취약한 게 아니라
취약하게 만드는 시스템이 문제”

일터에서 월경하는 몸은 노동시간·공간·소득 같은 다층적 구조 안에서 소외된다. 여성 화장실과 휴게공간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은 여성이 분명히 존재하는데도 ‘없어도 되는 존재’로 여기게 만들고 월경 과정에서의 불편함과 통증도 없는 것이 돼 버린다. 인력부족으로 인해 충분히 보장받지 못하는 휴게시간, 건당 수수료를 받는 불안정한 고용 위치에서는 화장실 이용을 자발적으로 눈치 보게 하고, 다른 동료에게 일을 떠넘긴다는 죄책감을 가지게 하며 결국 월경에 따르는 고충을 스스로 감내하고 헤쳐 나가야 할 문제로 바라보게 한다.

문제는 일터에서 월경 경험에 따른 차별은 여성들이 보편적으로 경험하는 문제인데도 사적인 문제로 다뤄져 왔다는 점이다. 월경혈이 새는 경험이 끔찍하리만큼 수치스러운 일로 기억되고, 노동환경의 구조적 원인으로 발생한 사건이어도 몸을 간수하지 못한 개인의 책임으로 치환된다. “유난 떤다” “예민하다” 같은 사회적 편견은 생리휴식권이 정당한 권리가 아니라 부차적 요구로 비치게 하고 여성들로 하여금 월경 경험을 공론화하지 못하고 침묵하도록 만든다.

이나래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는 “여성들 사이에서도 월경을 중요한 문제로 다루지 않고, 사생활로 여기는 측면이 강한데 이는 월경하는 몸이 취약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라며 “여성의 경험을 드러내는 것이 자신의 취약함을 드러내는 것처럼 비쳐 무성적 존재로 있으려고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나래 활동가는 “일터가 건강한 남성노동자 모델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여성들도 스스로 규제하려 하는 것”이라며 “월경하는 몸이 취약한 게 아니라 취약하게 만드는 시스템이 문제”라고 말했다.

보편적이지만 단일하지 않은 월경 경험

월경 경험은 보편적이면서 동시에 단일하지 않다. 생리통이 없는 사람이 있는 반면 못 일어날 정도로 통증이 심한 사람이 있고, 통증이 아닌 무기력함·우울감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양이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 주기가 일정한 사람과 불규칙한 사람이 있다. 이 같은 개인차는 일터에서의 노동환경과 밀접하게 연결돼 또 다른 월경 경험으로 이어진다.

관객·수강생 앞에서 몸을 드러내고 표현하는 연극배우나 요가강사의 경우 월경 사실을 감추는 게 일이다. 프리랜서 연극배우 이청(28)씨는 의상 때문에 패드형 대신 스틱형 생리대를 쓴다. 공연기간에는 되도록 피임약을 복용해 월경 주기를 늦춘다. 몇 년 전 한 공연에서 하얀색 원피스와 속바지를 입어야 한다는 연출의 강요 아닌 강요로 월경 도중 피가 조금이라도 샐까 봐 스트레스가 심했던 탓이다. 요가강사 최은지(36·가명)씨도 월경 여부와 무관하게 레깅스 같은 몸을 압박하는 옷을 입어야 할 때가 많아 주로 초경량 생리대나 스틱형 생리대를 사용한다. 최씨는 “보이는 모습에 대한 강박이 커서 표시가 나지 않게 부단히 애를 쓴다”고 말했다.

병원에서 일하는 물리치료사도 자세를 자주 바꾸고 환자와 빈번히 접촉하는 만큼 월경혈이 샐까 봐 노심초사한다. 박다은(34·가명)씨는 치료매트에 생리혈이 묻은 경험이 트라우마처럼 남아 지금도 월경을 할 땐 흰색 가운을 꼭 걸친다. 엉덩이를 가리기 위해서다. 박씨는 “계속 몸을 움직여야 하다 보니 생리대 위치가 틀어질 때가 있다”며 “여성동료들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엉덩이에 생리가 묻었는지 여부를 눈치로 확인한다”고 말했다.

주기가 일정치 않은 여성은 갑자기 생리가 ‘터지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차량부품 제조업체에서 일하는 박민지(26·가명)씨는 원래 근무지가 아닌 다른 공장에 업무지원을 갔다가 예상치 못한 상태에서 생리를 시작했다. 조장에게 보고한 뒤 당일 조퇴했는데 다음날 “생리가 새면 옷을 갈아입고 일하면 된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월경 중인 노동자뿐만 아니라 완경 중인 노동자도 그 경험이 다르면서 같다.

▲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임신·출산 아닌 재생산 건강의 문제로 접근해야”

월경으로 인한 차별은 보편적이지만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결코 하나의 모습은 아니다. 단순히 생리휴가를 주느냐 마느냐, 혹은 무급이냐 유급이냐 같은 문제로 환원하면 이 같은 복합적이고 다양한 일터에서의 월경 경험을 포괄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때문에 월경권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환경에서 건강권 문제로 다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노동현장에서 ‘모범노동자’ 기준 자체가 남성노동자로 설정돼 있기 때문에 여성이 월경하는 것은 특수 상황으로 취급된다”며 “화장실을 자유롭게 갈 수 있는 시간과 선택을 존중받아야 하고 생리통이 심할 때는 집에서 쉴 수 있는 권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모성 보호’차원으로 접근할 게 아니라 성·재생산 건강의 영역으로 다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아이를 낳기 위한 몸을 보호하기 위한 배려가 아닌, 성·재생산 건강에 대한 안전을 보장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나영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 대표는 “지금껏 임신·출산으로만 다뤄지거나, 단절적으로 월경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등 개별적으로 논의가 됐는데 월경은 몸 전반에 다양한 영향을 받기도 하고,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는 점에서 전 생애를 아우르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그는 “월경권이라고 하면 하루 휴가를 주는 것으로만 이해되고 있는데, 외국에서는 교대근무를 하거나 유해물질을 다룰 때 월경주기가 얼마나 어떻게 달라지는지 분석하고 추적한다”며 “성과 재생산 건강을 위한 전반적인 삶의 질과 연결해서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어고은·김미영·강예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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