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전국택배노조와 CJ대한통운의 노사갈등이 파국을 향하고 있다. 정면충돌만은 막아야 한다. 잘잘못을 떠나 둘 다 설득해야 한다. 산업 차원의 사회적 합의라는 귀한 새싹을 틔우기 위해서다. 택배노조와 CJ대한통운은 한 걸음씩 물러나 심호흡을 하고 차분히 주변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설득과 조정에 나서야 한다. 택배노조와 CJ대한통운이 지금처럼 강경한 태도를 고수하는 데는 정부가 애매하게 양측 모두에게 보증을 서 준 탓도 있다. 정부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지금 이곳이 한국 고용노사관계 패러다임 전환의 긍정적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택배노조는 21일까지 CJ대한통운이 대화에 나서지 않으면 연대파업과 단식농성 등으로 단체행동을 강화하겠다고 선언했다. CJ대한통운은 타협 불가와 법적 대응 방침에서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서로를 향한 분노가 복잡하게 얽혀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엄두가 안 나는 ‘장기파업’의 모양새를 갖춰 가고 있다. 이는 노사 모두에게 손해다. 단기적으로는 노동조합에 치명적이다. 투쟁 과정에서의 물리적 충돌로 인해 민·형사상 소송이 진행되면, 조직에 인적·물적 자원 공급이 차단되고 도덕성에 흠집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빠른 시일 내 회복이 쉽지 않을 것이다. 기업도 감당해야 할 리스크가 점점 더 커진다. 설사 법률적 조치 등으로 노조를 약화시킬 수 있더라도 그 과정에서 기업 경영진을 향한 적개심이 누적되고 사회화되기 때문이다. 노동현장에서는 불신과 일탈이 늘어나고 사회적으로는 기업이 좋은 의도로 하는 행동도 마뜩잖게 여기는 시선이 생길 것이다. 사소한 것이더라도 기업의 반사회적 행동이나 실수가 발견되면, 그러한 시선이 비수로 돌변해 상처에 꽂힐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가 잘못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택배산업과 한국 사회 전체의 퇴보다. 지난해 우리는 택배기사 과로사 문제 해결을 위해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고 치열하게 논의하는 과정을 목도했다. 그 결과로 탄생한 합의는 일종의 사회적 자본이자 공공재라고 할 수 있다. 택배 합의에는 산업 차원의 노사 신뢰와 배려가 담겼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매우 보기 드문 사회적 자본으로 산업 발전의 새로운 초석이 되리라는 기대를 받았다. 치킨게임 경쟁을 하는 기업들이 오랫동안 하지 못했던 택배비용 인상을 가능하게 했던 것도 이 합의였다. 또한 이번 합의 과정은 노사관계 전문가 상당수가 칭송하는 ‘사회적 교섭’을 비공식적인 형태로나마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한국 고용노사관계의 ‘기업별 교섭’ 구조는 노동기본권 향유를 양극화하고 경제적 불평등을 오히려 심화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는 교섭형태의 전범을 구체화했다는 점에서, 택배 사회적 합의 과정과 결과는 고용노사관계 당사자들이 함께 검토해야 할 공공재로서 상징성을 갖고 있다. 그런데 택배노조와 CJ대한통운이 정면충돌한다면 모두를 위한 숲이 될 수 있는 이 새싹이 꽃을 피우기도 전에 시들 것이다.

택배노조와 CJ대한통운이 이러한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강경한 태도를 고수하는 것은 자신들이 명분을 쥐고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모순된 믿음을 부추긴 것은 정부다. 택배노조는 지난해 6월 CJ대한통운을 단체교섭 사용자로 인정한 중앙노동위원회 판정을 행동의 근거로 삼고 있다. CJ대한통운은 기업이 택배 사회적 합의를 양호하게 잘 이행하고 있다는 국토교통부 평가 등을 근거로 노조의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양측 모두 불완전하지만 공신력 있는 정부기구가 보증하는 정당성 기반 위에 있는 것이다. 결국 다시 한번 소통의 장을 만들고 나아가 이를 지속시켜야 할 책임이 정부에 돌아가고 있다. 비판을 무릅쓰고서라도 과감하게 개입해 적극적으로 조정해야 할 것이다. 그럴 때만이 파국을 막고 고용노사관계 패러다임 전환과 관련된 논의와 실천을 희미하게나마 이어 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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