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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조치로 인해 위기를 겪은 무역회사 영업부장이 구조조정과 영업압박 스트레스로 숨진 사건과 관련해 법원이 근로복지공단 판정을 뒤집고 업무상 재해로 판결했다. 2019년 8월께 일본이 한국 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항의하며 ‘화이트리스트 국가’에서 우리나라를 제외했는데, 이 과정에서 해당 회사는 부품·원자재 조달에 어려움을 겪었다.

적자에 구조조정 불안감, 사망 직전 ‘눈물’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재판장 이정환 부장판사)는 사망한 A씨(사망 당시 47세)의 배우자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고 15일 밝혔다. 유족이 소송을 제기한 지 1년5개월 만이다.

2000년부터 일본에서 부품을 수입해 판매하는 무역회사 B사에 입사한 A씨는 2019년 7월 거래처에 샘플을 전달하기 위해 운전해 가던 중 갑자기 의식을 잃었다. 즉시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급성 심장질환 진단을 받고 한 시간 만에 세상을 떠났다.

당시 B사는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방침에 따라 개별허가를 받아 원자재를 수입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미 회사는 2014년부터 적자 상황에 놓여 대표이사가 재정 악화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A씨도 영업실적이 갈수록 저조해져 구조조정 불안감에 시달렸다. 사망 직전에는 저녁식사를 하며 울기도 했다.

유족은 “한일관계가 급격히 악화해 구조조정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고, 실적 압박을 받는 등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며 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지만 거절됐다. 공단은 개인적인 소인과 기저질환의 악화로 인해 사망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러자 A씨 아내는 2020년 8월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 “극도의 경영위기에 실직 위험”

법원은 업무상 사유로 인한 사망에 해당한다며 공단의 판정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망인은 오랜 기간 불규칙한 근무시간 및 영업상 필요한 잦은 술자리 등으로 인해 피로가 누적됐다”며 “5년째 모든 직원의 임금이 동결되고 대표이사가 사임하는 등 극도로 어려워진 경영 사정 때문에 영업실적에 대한 부담을 넘어 실직의 위험까지 느끼게 되면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장기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특히 한일관계 악화로 인한 경영위기가 업무상 스트레스에 영향을 미쳐 급성 심장질환 발병에 이르렀다고 봤다. A씨가 기저질환인 고혈압 및 고지혈증을 앓고 있었지만, 평소 약물치료 등을 받아 안정적인 관리가 되고 있었다는 진료기록 감정의 소견도 산재 인정의 근거로 작용했다. 재판부는 결국 “누적된 피로와 극심한 스트레스는 망인이 일상적인 업무인 운전을 하던 중 급성 심장질환이 발병하도록 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줬다”고 판단했다.

유족을 대리한 김용준·김위정 변호사(법무법인 마중)는 “법원은 고용노동부 고시상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과 기저질환 사유만으로 업무상 질병이 아니라고 판단할 수 없다는 원칙을 정립해 왔다”며 “이 사건은 그동안의 원칙을 충실히 반영하는 동시에 한일관계 악화로 인한 회사의 존폐 위기 상황에서 망인이 업무상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점이 인정돼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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