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봉수 전문건설업KOSHA협의회 회장(한국보건안전단체총연합회)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지난달 27일에 시행했다. 시행 첫날 사고사망자가 많은 건설업종이 1호 불명예를 벗어나기 위해 작업을 멈추고 이른 설명절을 시작했다. 안전보건을 생각하는 기업 경영자의 생각이 예전과 다르다는 희망적인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아닌 다른 기업에서 사고가 나길 바라는 씁쓸한 모습에 과연 중대재해처벌법이 사고사망자를 얼마나 줄일 수 있을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대비한 지 1년여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어떤 것들이 변화됐는가. 노사 양측 모두 법이 시행되기 전부터 법안 개정을 요구하며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 에너지를 소비했다. 여력이 있는 대기업은 대형 로펌과 수억원의 자문 컨설팅을 받으며 대비하는 동안 여력이 없는 중소 규모 사업주와 전문건설업은 이러한 준비 과정에서 소외됐다. 이런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고용노동부의 중대재해처벌법 해설서마저도 법 시행을 불과 2개월여 앞둔 지난해 11월17일에야 발간됐다.

중대재해처벌법의 핵심은 사업주의 안전보건경영체계 구축이다. 안전보건경영체계는 구축과 실행, 근로자 참여까지 여러 정착 과정이 수년에 걸쳐야 비로소 그 효과를 낼 수 있다. 법 시행만으로 사망사고가 감소할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잘못됐다. 얼마 전 한국보건안전단체총연합회에서 시행한 중대재해처벌법 인식도 조사에서 국민 10명 중 9명은 우리나라 산업재해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답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산재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응답은 77.6%로 높게 나왔다. 10명 중 7명은 정부가 산재예방 대책을 잘못하고 있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분명한 것은 우리 국민이 사업주에게 1년 이상 징역형을 내릴 수 있다는 강한 벌칙 조항이 있어 산재가 감소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결과를 기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현 시점에서 법의 잘잘못을 논하기보다는 사망사고를 줄일 올바른 정책을 몇 가지 이야기하고자 한다. 첫 번째 건설업에서는 산재예방의 걸림돌인 적정공기, 적정공사비를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조치가 필요하다. 정부는 이를 해결하려는 확고한 의지 없이 방치 또는 방관하고 있어 아쉽다.

두 번째 산재예방에는 반드시 구성원의 참여가 필요하다. 이러한 참여에는 책임에 대한 무게중심도 매우 중요하다. 어느 한쪽에만 책임이 더해지면 문제가 생기기 마련인데 현실은 사업주만 과도한 책임을 지고 있다고 본다. 일용직 근로자가 대다수를 차지하는 건설산업에서는 공적인 영역의 제도적 확대가 필요하다. 이를테면 일용직에게 안전페이(Safety-pay)를 지급해 건강검진 비용과 위험직종에 맞는 정기 안전교육비, 개인보호구 구입비 등에 사용하게 해야 한다. 교육이 법적 의무를 충족하기 위한 행위에서 행동 변화를 일으키는 방향으로 실효성 있게 바뀌고, 정기적인 건강검진을 통해 질병 재해를 사전에 예방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더불어 사업주에게 주어진 책임을 덜어 주고 부족한 부분에 역량을 집중할 수 있게 한다. 특히 산재예방 노력에 미흡한 중소 규모 사업장에서 예방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세 번째 산업안전보건관리비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하도급사의 산업안전보건예산을 확보해 주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근로자를 직접 채용하고 관리하는 하도급사는 모든 법에서 우선 적용돼 책임이 있지만, 산재예방에 필요한 예산은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한다. 이런 현실을 정부는 더 이상 외면해선 안 된다. 중대재해처벌법 또한 원·하도급사를 구분하고 있지 않아 예산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정부의 책임 중 하나다.

네 번째 안전보건경영체계 구축을 법에서 정하고 있음에도 산재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건설업종 중 전문건설업은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안전보건경영컨설팅에서 전문건설업이 제외돼 있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 안전보건경영시스템(KOSHA-MS) 인증에 관한 사항이다. 안전보건공단이 건설업 안전보건경영시스템 인증을 확대해야 하는 시기인데도 공공기관에서 인증해 준 사업장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시 문제 소지가 있을 것을 예상해 신규 인증을 한시적으로 중단하는 잘못된 행정을 하고 있다. 안전보건경영시스템 인증은 산재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아니라 예방할 수 있는 역량을 기업에 알려 주며 일정 부분 사후관리체계를 둬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등 국내에서 산재예방에 꼭 필요한 아주 중요한 사업이다.

끝으로 안전보건의 실효성 있는 제도적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하나의 부처에만 책임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 제도 하나를 고치려면 여러 부처의 협력과 법을 함께 개정해야 한다. 최상위 정부 조직이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화살이 사망사고 감소라는 과녁의 중심을 맞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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