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공연맹

올해 하반기 공기업 36곳과 준정부기관 96곳에 노동이사가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누가 노동이사가 되고, 노동이사는 어떤 일을 해야 할까. 정말 재계의 우려처럼 갈등의 노사관계를 이사회로 이식하는 결과로 이어질까.

재계 반응과 달리 노동계는 차분하게 노동이사의 운영철학과 운영방식을 고민하고 있다. 한국노총공공부문노조협의회(한공노협)는 2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한국노총회관에서 노동이사제 입법 이후를 준비하는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전문가들은 “과도한 기대를 접고 노동자의 경영참여를 위한 준비와 교육을 철저히 하라”고 당부했다.

노동이사제를 실제 운용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첫 질문은 과연 노동이사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정부 주도의 지배구조와 상임이사, 그리고 비상임이사 가운데 노동이사 1명이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노동이사, 노동관점 경영 판단 훈련돼야

이날 발제를 맡은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본부장은 전략적 경영참여를 노동이사의 역할로 꼽았다. 그는 노동이사제 도입을 시작으로 공공기관 노사관계 개편을 시작하고, 이 가운데 노동이사는 노동자의 전략적 의사결정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공공기관 노사관계 개편은 이미 한공노협이 제안한 내용이다.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기획재정부에서 떼어내 국무총리 산하로 이관하고 이 아래 보수위원회를 둬 공공부문의 노동조건을 직접 협상하도록 하는 구조다.

이렇게 되면 공공부문 노사관계는 새롭게 재편된다. 특히 노조는 직접 공공기관과 임금교섭 등을 하지 않고 정부와 교섭을 하는 구조가 된다. 노정교섭이다. 이 본부장은 “노조는 초기업단위 단체협약 같은 규범을 만들고, 노사협의회의 역할을 확대해 노동자의 일상적 경영참여 통로로 삼는다”며 “이런 구조 아래 노동이사는 기관 단위의 의사결정에 노동자가 참여하는 전략적 수단으로서 견제와 감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구조를 구축하려면 현재 첫발을 뗀 노동이사의 역량이 매우 중요하다. 이 본부장은 “단순히 재무제표를 볼 수 있느냐 같은 기능적 논의가 아니라 자원외교 참여나 4대강 사업 피해 같은 실제 사례에 마주했을 때 어떻게 (노동의 관점에서) 판단할 것인지에 대한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표성도 중요하다. 노동이사가 자신을 추천한 과반수노조의 이익을 대변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물론 과반수노조가 자신을 대표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노동이사와 거리를 두면 노동이사가 고립될 우려가 크다. 이 본부장은 “노동이사에 대한 전체 노동자의 이해를 끌어올려야 한다”며 “특히 노동이사 출마 고려자를 중심으로 집중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동계의 준비와 함께 제도 완성에도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정부는 지난 25일 국무회의를 열고 공공부문 노동이사제 도입을 뼈대로 하는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공기관운영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시행까지 6개월 유예를 뒀다. 이 기간 동안 기획재정부가 시행령과 각종 지침을 만든다.

시행령·지침·규칙 정교해야 제대로 운영

법적인 쟁점은 산적해 있다. 박귀천 이화여대 교수(법학)는 “법률에는 간단한 조항만 언급하고 있어 시행령이나 규칙, 지침을 정교하게 만들어야 운영이 제대로 된다”고 설명했다.

하위법령의 가장 큰 쟁점은 노동이사는 누구냐는 것이다. 우선 법률에 따른 해석은 3년 이상 재직한 기관의 근로자로, 근로자대표의 추천이나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은 사람이다. 박 교수는 “근로자는 비정규직과 정규직 같은 고용형태와 관련이 없지만 3년 재직요건을 규정한 걸로 볼 때 정규직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공공기관은 정규직을 일반정규직과 무기계약직으로 분류하기 때문에 둘 모두 노동이사가 될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무기계약직에 대한 노동이사 제한을 두면 위법이라는 것이다.

선출방식도 사업장별 자율로 둘 것인지, 직접·무기명·비밀 투표 방식 같은 제도를 명시해야 할지가 쟁점이다. 박 교수는 “시행령은 무리고, 규칙이나 지침 같은 수준에서 방안을 마련해 둘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중요한 것은 노동이사의 권리와 의무를 정확히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안건부의권 △임원추천위원회 위원 참여 △경영사항에 대한 감사의뢰권 혹은 감사청구권 △정보열람권 및 자료제공요구권 등이다. 실제 서울시의 경우 노동이사의 안건부의권이나 정보열람권이 없어 업무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 바 있다.

조합원 자격에 대한 논란도 있다. 이사를 경영자로 보고 조합원 자격을 정지하거나 탈퇴하도록 하는 규정이 생길 여지도 있다. 박 교수는 “전체 이사 가운데 소수에 불과한 노동이사가 노조와 단절된다면 사용자쪽 이해대변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거나 회색인이 돼 노동이사제를 유명무실하게 만들 것”이라며 “외국은 노동이사가 조합원 자격을 유지하는 게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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