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선미 대한주택관리사협회 회장(한국보건안전단체총연합회)

우리나라 인구 70% 이상이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에서 생활하고 있다. 공동주택을 관리하는 주택관리사는 2021년 현재 6만2천명이 배출됐으며, 주택관리 현장 전문가로 2만3천여명이 종사하고 있다. 전국 1만7천500개의 공동주택을 책임지고 있는 주택관리사의 업무범위와 책임은 안전 문제와 연결돼 있어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경비업법에 경비원 업무는 안전·방범 업무로 규정돼 있으나, 공동주택관리법을 적용받는 공동주택 경비원은 입주자의 생활편의를 위한 보조업무를 많이 한다. 입주민들과 직접적인 접촉을 하는 공동주택관리자들에게 일부 주민들은 인격적인 모욕을 하거나 부당하게 대우하는 경우가 있다. 2014년 서울 강남구 한 아파트에서 입주민의 횡포와 모욕으로 경비원이 분신해 목숨을 끊은 사건이 알려지면서 공동주택관리자들의 안전 문제에 관심이 높아졌다. 2018년에는 서울 서대문구 아파트에서 입주민이 70대 경비원을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 있었고, 2020년에는 인천의 한 아파트에서 50대 여성 관리소장이 입주자 대표가 휘두른 흉기에 의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2020년 서울 강북구 아파트에서는 주차문제로 주민에게 폭행당한 경비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해 경비원의 업무범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에 정부에서는 지난해 10월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을 개정해 경비원 업무범위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재활용 분리수거 보조, 택배 보관, 제설작업, 낙엽 쓸기, 제초작업 등을 비롯해 아파트 게시판 공고물 탈·부착, 주차관리, 도난예방 등 기존에 수행하던 업무들이 명시됐다. 주민들과 갈등을 빚었던 개인차량 주차대행, 개별세대 택배물 배달, 고지서나 안내문 개별 배부, 개별세대 대형 폐기물 수거 및 운반 등의 업무는 경비원 업무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을 명확히 했다.

최근 고등법원에서 휴게시간 관련 판결도 나왔다. 경기도 성남 한 아파트에서 퇴직한 시설직 근로자가 휴게시간 작업과 개별세대의 민원을 처리했다는 이유로 단속적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으니 휴일근로 및 야간근로수당 등 미지급 임금(약 8천900만원)을 지급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아파트 경비원(감시적)과 시설직(단속적)은 24시간 맞교대 근무를 하는 감시적·단속적 근로자로서 휴일근로·시간외근로·연장근로에 대한 근로기준법상 기준이 적용 제외돼 있기 때문에 이들이 청구한 소송은 모두 기각됐다.

이런 소송이 생긴 이유는 공동주택관리자들의 업무범위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법으로는 공동주택관리자들은 공용부분만 관리하도록 돼 있지만, 입주민들은 전기등 교체나 세면대 및 배수구 막힘 처리 등 개별세대의 다양한 요구를 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서비스를 수행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서 법과 주민들 요구 사이에서 갈등과 어려움이 발생한다. 본연의 업무인 공용부분 시설을 보수하면서 개별세대 요구 민원을 거부할 수 없는 현실에서 관리책임자가 법의 경계를 넘나들며 일을 처리하는 것이다. 그만큼 제도적 허점이 크다는 증거이기도 하며 법과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내용을 입주민들이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오해와 갈등이 생기게 되고, 주민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폭행을 당하기도 한다.

지난달 22일 산업통상자원부가 전기안전관리자의 직무에 대한 고시 개정안을 공포했는데, 세대 전유부분의 분전함 전기설비 관리를 전기안전관리자가 실시하도록 했다. 공동주택관리법에서 공용부분만 관리하도록 정한 것과 배치되는 내용으로 세대 전용부분을 관리사무소가 담당하는 것은 문제가 많은 내용이다. 공동주택은 전기안전관리법·소방기본법·승강기 안전관리법(승강기법)·경비업법·산업안전보건법·폐기물관리법 등 약 30여가지 법령이 얽혀 있는데 현실과 맞지 않는 여러 법령 등이 공동주택관리 업무를 어렵게 하고 있다.

관리감독자 지위에 있는 관리사무소장(주택관리사)은 항상 방재, 승강기 안전, 어린이 놀이 안전 업무와 전기실·저수조 등 여러 시설물 안전관리를 수행한다. 동시에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근로자 재해예방에도 철저한 교육과 안전장비 구비 등 각종 법령에서 정한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공동주택관리자의 업무 한계가 모호한 가운데 주민들의 안전을 챙기는 일을 하는 주택관리사 등의 안전 문제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 실타래처럼 얽히고 각종 법령으로 혼재된 공동주택관리 제도에서 여러 관계자 간 이해와 설득, 조정자 역할을 수행하는 공동주택관리자들의 안전이 지켜질 수 있도록 현실에 적합한 제도가 정착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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