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홍섭 한국건설안전학회 회장(한국보건안전단체총연합회)

문재인 정부에서 ‘국민생명 지키기’를 3대 국정목표 중 하나로 정하고 2022년까지 산업현장의 사고사망자를 반으로 줄이기에 각고의 노력을 경주해 온 것은 매우 고무적이었다. 그런데 건설안전특별법안은 두 번째 발의됐음에도 대한건설단체총연합회의 반대로 무산됐다. 첫 번째는 관련 부처가 반대해서, 이번에는 보호해 주고자 했던 건설업계의 반대로 제정이 무산된 것이다. 이 법안은 건설근로자 38명이 사망해 국격까지 실추시킨 2020년 4월29일 이천 물류센터 신축공사장 화재사고 뒤 “노동자의 죽음이 일상화된 건설현장의 악순환 고리를 끊겠다”는 각오로 발의됐다. 우리는 아직도 사고에서 교훈을 제대로 얻지 못하고 있으며, 대형참사는 여전히 쉽게 잊히고 있다.

이번 정부 출범 이전인 2016년 대비 2020년까지 4년 동안 건설업 사고사망자수는 양적으로는 499명에서 458명으로 8.2%가 감소했으나, 질적지표인 사고사망만인율은 1.58에서 2.0으로 무려 26.5%나 증가했다. 국가적으로 건설사고 방지에 총력을 다했음에도 건설업에서 사고사망자수 감소는 미미해 기존 안전관련 법령에는 여전히 핵심이 빠졌음을 알 수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태생이 제조공장용으로서 건설사고를 효과적으로 방지하지 못했으며, 빈번한 개정을 넘어 전부개정에도 여전히 핵심을 규율하지 못하고 있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도 시행이 임박했지만 이 법은 사고사망자 대부분이 발생하는 중소규모 건설공사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나아가 9명의 무고한 시민이 사망한 지난해 6월 광주 학동 재개발현장 붕괴사고와 같은 참사도 이 법의 사각지대에 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중대재해처벌법 해설자료에서도 여전히 건설공사의 도급을 일반산업의 도급과 동일시해 여전히 최고 의사결정권자·위험생산자이자 최종 이익귀속 주체인 발주자의 책임을 희석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건설안전특별법안에는 기존 제도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세 가지 기능이 있다. 첫째, 기존 건설기술 진흥법에 덧붙여진 안전 관련 조항을 사고예방 원칙에 따라 별개의 법으로 독립시킴으로써 생산을 촉진하는 액셀러레이터로부터 브레이크 역할인 안전 기능을 회복했다. 둘째, 산업안전보건법과 기존 건설 관련 법령에 미비한 발주자를 비롯한 건설사업 참여자의 책임을 명확히 했다. 셋째, 안전참모를 통해 발주자가 자신의 안전책무를 인지하게 하는 장치를 마련해 발주자 주도의 안전관리가 가능하도록 했다. 이로써 다수 이해 당사자를 규율하기 어려운 중대재해처벌법과 제조공장 기반 산업안전보건법 사이의 사각지대를 메움으로써 실질적인 건설사고방지를 가능하게 한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건설기업이 부담해야 할 중대재해처벌법에 의한 벌칙 쏠림 현상도 완화해 줄 것이다.

국가 차원에서 사회적 불안 요인인 건설사고 방지의 핵심을 놓친 것은 또 하나의 뼈아픈 실책이 될 것이다. 기존 제도의 한계와 건설안전특별법에 내장된 혁신적인 기능을 더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벌칙 측면에서도 건설안전특별법안의 벌칙은 기존 건설기술 진흥법의 수준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며 경영책임자를 겨냥하고 있지도 않다. 물론 제안된 법안에는 아직 사고방지 원칙에 따라 개선해 나가야 할 사안들이 있지만 이는 제정으로 인한 유익함에 비하면 사소한 것들이다.

누구나 행복하기 위해 일한다. 건설의 목적도 시설물 이용자의 복지 이전에 오늘을 사는 건설인과 이들 가족의 행복에 있다. 인명 보호는 관련 제도의 유무 이전에 다른 무엇과 타협할 수 없는 모두의 기본 책무다. 경영상 편의 추구를 위해 인명의 희생을 담보로 하는 건설산업을 바로 세우고자 하는 건설안전특별법 제정을 지체하는 소탐대실을 경계해야 한다. 경영상 불편을 핑계로 안전의 근본을 바로 세우지 못한다면 건설업은 ‘살인산업’의 오명을 벗어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지속가능하지도 못할 것이다. 건설사고를 효과적으로 방지하려면 기존 건설안전제도와 정책의 한계를 직시하고 건설안전특별법을 통해 건설안전관리체제부터 혁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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