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작은 창대했지만 끝은 미약했다. 문재인 정부의 노동시간단축 정책을 평가한 말이다. 연간 노동시간을 1천800시간대로 낮추겠다던 문재인 정부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선택근로제 산정기간 확대 등 갖가지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을 폈다. 사진은 2019년 2월18일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경제사회노동위원회 회의실에서 탄력근로제 논의 중단을 촉구하는 피켓시위를 하는 모습.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문재인 정부는 사회 양극화 추세가 심화하는 과정에서 출범했다. 국민총소득(GNI) 중 기업소득 비중은 2000년 이후 매우 빠른 속도로 증가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노동자 임금과 자영업자 소득보다 기업소득이 상대적으로 많이 증가했다는 의미다.

노동시장 양극화도 나날이 심각해졌다.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에 따르면 대기업 대비 중소기업 임금 비율은 2000년 71.3%에서 2017년 65.1%로,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임금은 2002년 67.1%에서 2017년 55.0%로 줄었다.

사회 양극화 해법으로 제시한 ‘소득주도 성장’
최저임금 1만원은 좌초, 공정임금제 도입은 미이행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가계 지출은 줄이고 소득을 늘리고, 늘어난 가계소득이 소비를 북돋아 경제성장을 이끌고, 경제성장에 따라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는 선순환 경제구조를 만들겠다고 구상했다. 가계소득을 높이기 위해 임금노동자에 적용하려던 정책은 최저임금 인상, 일자리안정자금 지원, 저소득층 지원 등이다. 핵심은 최저임금이었다.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을 공약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2018년 최저임금을 7천530원으로 16.4% 인상했다. 이듬해는 8천350원으로 10.9%를 인상하며 두 자릿수 인상을 이어 갔다. 여기까지였다. 2020년 최저임금은 8천590원으로 2.87% 올렸고, 2021년 인상률은 1.5%로 8천720원에 그쳤다. 2020년에 적용할 최저임금이 결정된 직후인 2019년 7월 문재인 대통령은 “약속을 지키지 못해 안타깝고 송구하다”고 말했다. 2022년 최저임금은 9천160원으로 5.1% 인상됐다. 이로써 문재인 정부 임기 중 최저임금 연평균 인상률은 7.2%로 박근혜 정부 4년 평균(7.4%)보다 낮아졌다.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감소시키는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조치는 문재인 정부의 오랜 실책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2018년 국회를 통과한 최저임금법 개정안에 따라 월할 정기상여금과 복리후생비는 단계적으로 최저임금에 산입돼 2024년이면 전액이 최저임금에 들어간다. 최저임금이 올라도 실제 임금인상 효과를 낮추는 기능을 한다.

임금정책 성과도 좋지 않다. 국정과제로 제시했던 임금정책 대부분이 이행되지 않았거나 지체되고 있다.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 대졸-고졸 간 임금 격차를 80% 수준으로 완화하는 것을 목표로 공정임금제 도입을 공약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2020년 총선공약에 포함했다. 민간기업에 인센티브를 줘 공정임금을 유도하고, 다양한 고용지원 정책을 동원한다는 취지다. 경기도는 올해부터 공공기관 비정규직과 기간제 노동자에게 고용불안을 보상하는 차원에서 기본급 총액의 5~10%를 보상하고 있다. 공공부문 공정임금 정책으로 보면 된다. 하지만 파급력을 가진 중앙정부 차원의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퇴직자에 국한한 체당금 제도를 재직자에게 적용하고 지급범위를 확대한다는 공약은 일부 이행했다. 올해 3월 임금채권보장법·근로기준법이 개정되면서 일반체당금 상한액이 1천800만원에서 2천100만원으로 높아졌고, 소액체당금 지원 대상에 퇴직자·저소득 재직자가 포함됐다. 하지만 상습 체불사업주에 반의사불벌죄 적용, 임금채권 소멸시효 3년에서 5년으로 연장, 체불금액 3배 이내의 징벌적 배상제도 신설 등 약속은 이행하지 않았다.

대·중소기업 임금 격차 해소를 목표로 중소기업 노동자 경영성과급에 대한 세금·사회보험료 감면과 기업 성장 후 발생하는 이익 일부를 노동자와 공유하기로 사전에 약속하는 미래성과공유제 공약은 이행했다. 소규모 사업과 저임금 노동자에 대한 사회보험료 지원은 두루누리 사업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주 52시간 상한제 칼 빼들긴 했는데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 줄줄이 시행

2017년 연간 노동시간은 2천18시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2위였다. 당시는 휴일근로를 연장근로로 보지 않았기에 기업은 1주 최대 68시간까지 일을 시킬 수 있었다. 노사가 서면으로 합의하면 무제한 연장노동을 할 수 있는 노동시간 특례업종은 26개로 495만명이 해당했다.

일과 삶의 균형 문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확산하면서 노동시간단축은 피할 수 없는 숙제가 됐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 중 매년 80시간 이상 노동시간을 단축해 1천800시간대로 낮춘다는 국정목표를 세웠다. 그 첫 시작은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 도입이다. 2018년 3월 국회는 5명 이상 사업장에 대해 단계적으로 주 52시간제를 도입하는 근기법 개정안을 가결했다. 노동시간 특례업종은 5개로 줄였다. 재계를 달래기 위해 30명 미만 중소사업장은 노사합의로 8시간의 특별연장근로를 일정 기간 허용했다. 공공부문과 대기업은 2018년 7월부터, 50~299명은 2020년 1월부터, 5~49명은 2021년 7월부터 주 52시간제를 적용하기로 했다. 2004년 주 5일제 시행 이후 최대 폭의 노동시간 감소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근기법 개정 이후 정부 정책은 후퇴에 후퇴를 거듭하며 노동시간 유연화를 확대했다. 2018년 11월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에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정부 의지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로 이어져 이듬해 2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최대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리기로 합의했다. 탄력근로제를 적용하는 사업주는 특정 주에 최대 64시간(40시간+연장근로 12시간+추가 연장근로 12시간) 일을 시킬 수 있는데, 이론상 6개월 연속 매주 64시간까지 일하게 할 수 있다. 과로문제가 제기되자 3개월 초과 탄력근로제를 도입하면 근로일간 11시간 이상의 연속 휴식시간을 부여하도록 했다.

이제 재계의 시간이 본격화했다.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노동자 보상 판결 뒤 일본이 수출 보복을 단행하자 재계는 노동시간 유연화 조치를 주문했고, 정부는 2019년 8월 연구·개발 업무에 대해 특별연장근로를 인가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고용노동부는 근기법에 따라 2020년 1월부터 50~299명 미만 기업에 주 52시간제가 적용되자 1년의 계도기간을 부여했다. 근로감독을 하지 않은 방식으로 장시간 노동을 묵인한 셈이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를 위한 근기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않자 다시 정부가 나섰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선택근로제 정산기간 확대하고
특별연장근로제는 특별하지 않은 ‘일상적 정책’으로 전락

근로기준법에는 특별한 사정으로 법정 연장근로시간(주 12시간)을 초과해 일할 때 노동자 동의와 노동부 장관 인가 절차를 거치도록 규정돼 있다. 특별연장근로제도라 부른다. 애초에는 재해·재난에 준하는 사고 수습을 위한 경우에만 특별연장근로를 인가했지만 2020년 1월 사유를 확대했다. 노동부는 근기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인명보호 △돌발상황 수습 △업무량 폭증 △연구개발 등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도 특별연장근로가 가능하게 했다.

매우 특별한 경우의 한시적 조치라던 이 정책은 이제 일상적 정책이 됐다. 노동부는 올해에도 이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탄력근로제와 마찬가지로 근로일 종료 후 다음 근로일 개시 전까지 연속 11시간 이상의 휴식시간 부여하는 등의 건강보호조치를 추가했다. 뇌심혈관계질환 발병 전 4주 동안 1주 평균 노동시간이 64시간을 초과하면 산재로 인정하는 점을 고려한 조치다. 특별연장근로제가 산재를 유발할 정도의 장시간 노동을 불러온다는 점을 노동부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2019년 신청 건수가 900건에 불과했는데 사유를 확대한 지난해는 4천건으로 늘었다. 올해는 이보다 더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노동시간단축에 역행하는 정책은 올해에도 이어졌다. 노동부는 올해 근로감독 종합계획에서 장시간 노동 예방을 위한 감독은 300명 이상 사업장을 중심으로 한다고 밝혔다. 계도기간 종료로 올해부터 주 52시간제 적용이 정상화한 50~299명 사업장의 장시간 노동 문제를 기업 자율개선에 맡겼다. 2020년 12월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동법에는 ILO 기본협약 비준과 관련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공무원노조법)·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교원노조법) 개정안과 함께 근기법 개정안이 들어갔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선택근로제 정산기간을 확대하는 것이 근기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이다.

선택근로제는 일정 기간 단위로 정해진 총 노동시간 범위에서 하루 노동시간을 노동자가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제도다. 정산기간 동안 평균 연장근로시간이 1주 12시간을 넘지만 않으면 무제한 노동을 할 수 있다. 노동시간 유연화 제도의 끝판왕이라고 불린다. 근기법 개정에 따라 당시 1개월로 허용하던 정산기간은 3개월로 늘어났다. 신상품·신기술 연구개발 업무에 한해 적용할 수 있다지만 사실 그 범위는 매우 넓다. 노동부는 “제품, 생산·제조공정 등의 개발 또는 기술적 개선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게임 등 무형의 제품 연구개발도 포함된다”고 해석하고 있다. 노동계는 경사노위 논의 과정에도 나오지 않았던 선택근로제가 ILO 기본협약 비준 논의 과정에 갑자기 들어가자 당황했다. 입법 과정에 전자부문 대기업 로비가 있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저녁과 주말이 있는 삶을 위해 칼퇴근법을 도입하겠다던 약속도 사실상 물건너갔다. 출퇴근시간 기록을 의무화해 야간노동을 해소하겠다고 했지만 진척이 없다. 포괄임금제 규제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공짜노동을 막고, 궁극적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한다는 계획은 이행할 조짐이 안 보인다. 노동부는 2017년 10월까지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기로 하고 지도지침 초안을 만들었지만 발표하지 않았다. 이후 4년째 전문가 의견수렴과 실태조사, 관계기관과 협의해 대책을 내놓겠다는 답변만 반복하고 있다. 임신·육아 사유로만 가능했던 노동시간단축 청구권 제도를 가족돌봄·본인건강·은퇴준비·학업을 위해서도 선택할 수 있게 한 점은 진전이다. 2020년 공공기관과 300명 이상 기업에서부터 시작해 2022년까지 전체 사업장으로 확대한다.

코로나19 경제위기 영향으로 노동시간 소폭 줄어
정규직·비정규직 임금격차 완화는 실패

국민소득에서 노동자의 임금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을 말하는 노동소득분배율은 문재인 정부를 거치며 지속 개선했다. 2017년 62.0%에서 지난해 67.5%로 증가했다. 다만 지난해 노동소득분배율이 높은 까닭은 임금이 올라서라기보다는 코로나19로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기업소득이 줄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정부가 고용유지지원금을 풀면서 임금이 급격히 하락하지 않은 점도 영향을 미쳤다.

문재인 정부의 임금·노동시간 정책 성적표는 어떨까. 2017년 연간 2천18시간이던 노동시간은 2020년 1천908시간으로 줄었다. 2019년(1천967시간)에서 지난해 급격하게 줄어든 까닭은 노동시간단축 정책보다는 코로나19 충격이 더 큰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노동부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에 따른 월평균 임금은 지난해 기준 316만1천원이다. 정규직은 369만3천원, 비정규직(특고 포함)은 182만8천원이었다.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임금은 49.5%다. 2017년 정규직 월평균 임금은 336만3천원, 비정규직은 168만원이었다. 비정규직 임금이 정규직의 49.9% 수준이었다. 임금격차가 더 악화했다.
 

탄력근로제 덥석 받은 경사노위 … 양극화 해소 논의는 ‘성과 없음’

문재인 정부는 새로운 사회적 대화기구를 표방하며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출범했다. 대화주체의 참여 폭을 넓히고 의제를 다양화해 명실상부한 사회적 대화기구로 위상을 공고히 하려던 애초 계획은 정부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의제를 던지면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경사노위에 불참해야 한다는 민주노총 내부 목소리가 커지는 계기가 됐고, 여성·비정규직·청년 등 계층별위원은 해촉했다. 일련의 사건은 경사노위 독립성에 의문이 나온 결정적 계기가 됐고 정부 거수기 역할을 반복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플랫폼산업·공공기관·금융산업 등 업종별 위원회가 활발히 설치되고 가동됐지만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는 못했다. 격차해소와 양질의 일자리 창출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설치한 의제별 위원회의 양극화 해소와 고용플러스위원회의 ‘성과 없음’은 뼈아프다. 대기업 이해대변 경제단체만 위원으로 참여하고 협력업체 ‘을’은 빠지면서 출범부터 우려가 적지 않았다. 재계는 기업규제 완화, 노동유연성 강화, 임금인상 자제와 같은 숙원 요구를 의제로 던졌다. 노동계는 도급구조 개선, 소상공인 보호, 고용안정, 조세정의, 취약계층 보호, 사회안전망 강화 등을 요구했다. 존재하는 사회적 과제를 모두 떠안은 셈이다. 다뤄야 할 의제는 많고, 대화참여 주체의 대표성은 부족하고, 노사 이견은 첨예하니 사회적 대화가 잘 될 리 만무했다. 활동 2년 만에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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