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반도체공장 공사현장의 전기공이 지속해서 유해 화학물질에 노출돼 극저주파 자기장 등 다른 요인과 함께 복합적으로 작용해 ‘재생불량성 빈혈’이 발병한 것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반도체 생산공정을 직접 수행하지 않았더라도 산재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5단독부(이새롬 판사)는 반도체 노동자 A(59)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불승인처분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고 6일 밝혔다.

A씨는 1994년부터 약 20년간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공장 등 여러 공사현장에서 전기 선로공으로 근무했다. 업무 특성으로 인해 극저주파와 전자파에 상시로 노출됐다. 그러던 중 2007년 2월께 이천 반도체공장 전기선로 철거공사 과정에서 암모니아와 질소가스 누출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로 상세불명의 빈혈 및 범혈구감소증 진단을 받았고, 2011년 1월 재생불량성 빈혈(특발성 무형성 빈혈)을 진단받았다.

A씨는 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했다. 하지만 공단은 전자기파 및 암모니아·질소가스와 빈혈 발병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없다며 요양불승인처분을 했다. A씨의 기저질환인 B형 간염으로 인해 발병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원은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A씨가 지속적으로 노출된 극저주파 자기장과 반도체공장에서 전기공으로 일하면서 노출된 벤젠·포름알데히드·비소 등의 유해 화학물질이 체질 등 다른 요인과 함께 복합적으로 작용해 빈혈을 발병케 했거나 적어도 자연경과 이상으로 악화시킨 원인이 됐다고 추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특히 “반도체 사업장에서 측정된 유해물질의 농도가 작업환경 노출 허용기준 미만이었더라도 작업을 할 당시의 상황에 따라 순간적으로 높은 농도의 화학물질이 발생해 이에 노출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이러한 점을 고려해 법원 감정의도 벤젠·비소·포름알데히드의 만성적 노출이 빈혈의 발생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는 소견을 밝혔다”고 설명했다.

A씨를 대리한 문은영 변호사(법률사무소 문율)는 “20여년간 활선작업을 하면서 장기간 지속해서 극저주파 자기장에 노출된 점과 유해물질 관리가 되지 않았던 1996년부터 1999년에 반도체공장 내부에서 전기공으로 일하면서 유해 화학물질에 노출된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재생불량성 빈혈이 발병하거나 악화·촉진한 점을 인정한 판결”이라며 “특히 재생불량성 빈혈과 같은 혈액질환의 경우 기존의 반도체공장에서 노출된 벤젠 등 여러 유해물질뿐만 아니라 극저주파 자기장을 주요한 유해요인으로 인정한 판결로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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