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38명 사망, 10명 부상. 지난해 4월29일 경기도 이천시 ㈜한익스프레스 물류센터 화재 산업재해로 숨지고 다친 노동자들이다. 시공사뿐만 아니라 발주처인 한익스프레스에도 사고 책임을 물어야 비슷한 사고를 막을 수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대법원은 지난달 25일 업무상 과실치사상·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한익스프레스 TF 팀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수많은 산재사고에서 발주처의 책임을 어떻게 물어야 할까.

피해자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은 판결
정우준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 정우준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 정우준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지난 1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을 가리켜 “기업인들의 경영의지를 위축시키는 강한 메시지를 주는 법”이라며 기업하는데 큰 걱정이 없도록 대통령령을 합리적으로 재설계하겠다고 이야기했다. 그 발언의 일주일 전인 지난달 25일 한익스프레스 관계자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고 산재사망에 대한 기업과 최고경영책임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인식이 증대했음에도 법원과 정치는 여전했다.

매해 ‘최악의 살인기업선정식’을 진행하다 보면 산재사망을 일으키는 회사는 거의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망한 노동자들의 회사는 매번 달랐다. 하청노동자였기 때문이다. 부정의 한 노동시장 속에서 위험을 실제로 만들어내지만, 위험을 하청기업·시공사에 넘기고 있는 대기업들과 최고경영책임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산재사망을 막기 위한 가장 강력한 수단이라는 믿음은 사회적으로 승인을 얻었고,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됐다. 그러나 정의는 여전히 멀리있다. 한익스프레스 산재참사에서 아버지를 잃은 김선애씨는 2021 최악의 살인기업선정식에서 “서른여덟 분의 귀한 생명이 희생된 사고 발생의 진짜 주범인 발주처 한익스프레스가 제대로 처벌받는 정의로운 대한민국이 돼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판결이 나온 후 선애씨는 구체적인 결과에 대해 말이 나오지도 않는다고 했다. 선애씨의 목소리는 법에 닿지 않았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될 때 법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과 경영계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응보적 정의’는 산재사망을 줄일 수 없다고 했다. 노동자와 노동자 유가족들의 원한 섞인 감정일 뿐이라며 중대재해처벌법을 깎아내렸다. 그들에게 산재노동자와 유가족의 목소리와 고통은 세련된 법 조항과 공학적 개선안에 비하면 가치가 없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공학적 개선안과 명료한 법, 그것을 해석하는 법 기술이 정의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정의는 선애씨가 살인기업선정식에서 “저를 비롯한 유가족분들은 힘들고 지난 1년 가슴 아픈 시간을 가까스로 이겨 내며 보냈다”며 이야기한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느끼는 구체적인 고통에서 시작한다. 산재피해자의 목소리를 법 조항에 새기고, 판결에 적용하는 것이 매해 1천여명이 산재사고로 사망하는 대한민국에서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이번 대법원의 한익스프레스 판결은 산재노동자와 산재사망 유가족의 구체적인 고통을 도외시하고, 그 고통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없는 것으로 만들려는 부정의 한 판결이다.

아직 재판은 끝나지 않았다
김위정 변호사(법무법인 마중)
 

▲ 김위정 변호사(법무법인 마중)
▲ 김위정 변호사(법무법인 마중)

사망자만 38명을 발생시킨 경기 이천시 한익스프레스 남이천 물류센터 신축공사현장 화재 사고로부터 1년 반가량의 세월이 지난 2021년 11월25일. 대법원은 공사 발주처인 주식회사 한익스프레스의 담당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이 재판은 한익스프레스로 상징되는 발주처에 사상의 책임을 물어 처벌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장소였다. 그 법적인 언어가 한익스프레스의 담당자에게 적용된 업무상과실치사상죄다. 그런데 법원은 산업안전보건법상 의무주체가 아니라는 이유로 업무상과실치상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업무상과실치사상죄는 산업안전보건법위반죄가 아니므로 법원은 한익스프레스가 산업안전보건법상의 의무주체가 아니더라도 선행행위로 인해 위험이 증가하였다면, 그 위험을 제거하지 않은 책임을 물을 수 있었다. 그러나 법원은 한익스프레스의 공사 기간 단축 요구를 인정하며 다음과 같이 판시하면서도, 사고 발생 전년도까지만 공사 기간 단축 요구가 있었다는 이유로 사고 발생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았다. “2019년경 한익스프레스의 공사 기간 단축 요구는 시공사, 감리업체에 상당한 압박으로 느껴졌던 것으로 보인다.”

선행행위로 위험을 발생시킨 자는 그 위험을 제거해야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지, 위험을 더는 증가시키지 않았다고 해서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 아니다. 한익스프레스가 공사 기간 단축 요구를 적극적으로 철회하지 않은 이상 시공사와 감리업체는 ‘빨리빨리’, ‘안전은 뒷전으로’라는 기조로 공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 현장에는 이미 두어 차례 화재 사고가 발생한 상황이었다.

한익스프레스는 노동자의 사상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형사재판의 판단은 그렇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 민사재판의 판단은 남아 있다.

건설안전특별법을 제정해야 하는 이유
송주현 건설산업연맹 정책실장
 

▲ 송주현 건설산업연맹 교선실장
▲ 송주현 건설산업연맹  정책실장

매년 수백명의 건설노동자가 죽어도 건설공사를 총괄하는 발주처의 처벌은 없다. 한익스프레스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우레탄폼 작업과 화물 엘리베이터의 용접을 동시에 진행한 것이지만, 대참사로 확대된 것은 발주처인 한익스프레스가 냉동창고 결로를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대피로를 폐쇄한 것 때문이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대피로 폐쇄는 정당한 것이고, 공사와 관련한 지시를 발주처가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익스프레스에 무죄를 선고했다.

죽은 사람은 38명이나 되지만, 제대로 죽음의 책임을 지는 자가 없는 비참한 현실을 대법원이 만들어 냈다. 발주처인 한익스프레스가 공사기간 단축을 요구했고, 시공사가 해서는 안 되는 우레탄폼과 용접작업을 동시에 해서 화재가 발생했고, 대피하던 건설노동자들이 한익스프레스가 막아놓은 대피로 때문에 피신하지 못하고 창고에 갇혀서 죽음에 이르렀던 상황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대법원은 죄가 있어도 근거가 없으니 처벌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고, 국회는 발주처를 처벌할 수 있는 건설안전특별법이 발의돼 있는데도 건설업계의 반대를 이유로 논의조차 하지 않고 있다. 억울한 국민이 없도록 눈과 귀를 열고, 사건의 원인을 명명백백하게 찾아 가해자를 처벌하고, 다시는 이와 같은 인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법원이 다할 사법정의일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38명 억울한 죽음의 원인에 귀를 닫았고, 38명을 죽인 가해자 처벌에도 눈 감았다. 인재가 다시 발생하도록 발주처를 독려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38명의 건설노동자 죽음에 책임을 묻지 않은 대법원은 건설노동자에게 사과해야 한다.

대법원이 발주처 처벌의 근거가 없다고 했으니, 건설공사 구성 주체의 책임과 의무를 규정해 건설공사 갑중의 갑인 발주처 책임을 명시한 건설안전특별법 제정 필요성은 더 커졌다. 매년 600여명씩 죽어가는 친구·부모·동료를 살려서 집으로 돌려보내고, 안전한 건설현장을 위해 반드시 법 제정이 필요하다.

계약단계부터 제동 장치 마련해야
박종국 전 경기도노동권익센터장
 

박종국 전 경기도노동권익센터장
▲ 박종국 전 경기도노동권익센터장

발주처가 민간인 경우 민간인이 발주처지만, 공공 공사일 경우 국가기관이 발주처가 된다. 사고가 났을 때 기관장을 구속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거다. 물론 공공 공사 시 기관장이 불법적인 것들을 방조 또는 묵인해 인명피해가 발생했을 때에는 민형사상 책임을 물어야 하지만 발주처를 처벌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렇다면 발주처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물어야 할까. 발주처가 도급계약을 맺을 때 반드시 안전관리 조항이나 관련 공사금액을 반영하도록 명시해야 한다. 공공 공사는 ‘안전관리 비용을 몇 퍼센트로 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경우가 많다. 안전관리 비용을 계약서에 명시해 두고 실제 계약서대로 시공이 이뤄지지 않았을 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안전 문제를 들여다보면 결국은 돈 문제다. 충분한 공사기간을 보장해주고 공사비를 지급한다면 ‘빨리빨리’ 공사를 할 필요가 없다. 이천 화재 참사가 발생한 물류창고나 대형유통상가 공사의 경우 분위기 자체가 서두르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12월31일까지 공사를 끝내야 하는데 발주처 입장에서는 11월에 공사가 완료돼 한 달만 앞당겨 오픈해도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영업을 빨리 시작할수록 이익이 되고 반대로 공사가 지연되면 손해가 나는 거다. 그 때문에 계약단계부터 ‘빨리빨리’ 이뤄지는 경향성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발주처가 안전관리에 대한 전반적인 비용을 지급하지 않고, 공사기간을 급하게 잡으면 사고가 나기 쉽다. 발주처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시공업체가 적은 비용으로 시공해야 이윤이 남는다. 안전관리비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을 때 건설사는 안전 보호 조치를 소홀히 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 건설사 차원에서도 공사비 이윤을 남기기 위한 목적으로 안전관리비를 줄일 수 있다. 계약 당시 분명하게 안전관리 비용을 몇 퍼센트로 한다는 내용을 정해두고 법적으로 강제해야 하는 이유다.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발주처가 안전조치를 소홀히 하더라도 공기를 단축하라고 독촉을 했다거나, 안전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점을 묵인했다거나, 안전관리를 못 하도록 방해를 하는 등의 사실이 밝혀졌을 때는 발주처에 대한 민법상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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