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이미지투데이>

공무원이 집요한 민원에 시달리다 정신적 스트레스로 급성 뇌출혈을 일으켜 사망한 것은 ‘공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법원이 판결했다. 법원은 사망 직전 근무시간이 적정 수준이었더라도 민원에 따른 스트레스가 통상적인 수준을 훨씬 넘었다면 사망과 업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봤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재판장 유환우 부장판사)는 순직한 교육공무원 A씨의 아내가 인사혁신처를 상대로 낸 순직유족급여 불승인처분 취소청구 소송에서 지난 26일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유족이 소송을 제기한 지 1년여 만이다.

자녀 수강학원에 불만 가진 학부모, 제재 압박
행정처분 직전 담당공무원, 뇌출혈로 사망

1997년 서기보로 임용된 후 인천시 교육지원청의 평생교육팀장으로 일한 A씨는 관내 학원 지도·감독 업무를 담당했다. 그런데 2019년 2월 이 무렵 학원 수강생 부모 B씨의 민원이 들어왔다. 재수생 자녀가 중국한어수평고시(HSK) 시험 4급 이상의 조건을 갖추면 추천으로 중국 북경대에 갈 수 있어 한 어학원에서 수강했는데, 학원이 제대로 강의하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B씨는 주무관에게 이러한 사실을 호소하고 교육청을 직접 방문했다.

A씨 등 교육청 직원들은 어학원이 등록 외의 교습과정을 운영하면서 강사 채용을 통보하지 않은 부분을 적발해 원장에게 벌점 20점의 행정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B씨는 처분이 경미하다며 높은 수위의 행정처분을 지속해서 요구했다. 급기야 학원 원장은 B씨가 ‘갑질’을 한다며 구의회 의장 등을 대동해 교육지원청 교육장을 면담하기에 이르렀다. 이후에도 B씨가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넣자 교육청은 그해 5월 학원 명칭 표기 위반, 미등록 교습과정을 이유로 학원에 경고(벌점 25점) 및 과태료 20만원을 최종 처분했다.

그런데 A씨는 최종 처분 직전 동료 모친상을 조문하러 갔다가 갑자기 뒤로 쓰러졌다. 급히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6시간 만에 급성 지주막하출혈 진단을 받고 급성 심정지로 숨졌다. A씨 아내는 인사혁신처에 순직유족급여 지급을 신청했지만, 공무상 과로와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거부됐다. 뇌출혈 발병 전 6개월간 초과근무를 하지 않는 등 업무강도가 정상 범주에 있었다는 게 이유였다. A씨 아내는 지난해 12월 부지급 처분에 불복해 소송을 냈다.

법원 “민원 스트레스, 뇌출혈 발병 원인”
유족 대리인 “업무 책임·강도 등 고려해야”

법원은 “A씨는 민원 스트레스로 인해 뇌출혈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며 유족의 청구를 인용했다. 재판부는 “고인이 만성적인 육체적 과로 상태에 있었다고 인정하기는 부족하다”면서도 “학원에 관한 민원 제기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가 통상적인 수준을 상회했을 것으로 보이는 점을 비춰 볼 때 뇌출혈이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것이라고 추정된다”고 판시했다.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반복적 혈압상승이 뇌출혈을 야기할 수 있다는 법원 감정의 소견도 판단 근거로 작용했다.

특히 B씨가 직접 교육청을 수차례 방문하고 지속적으로 전화해 높은 수위의 행정제재를 요구한 부분이 A씨에게 상당한 스트레스를 야기했을 것으로 봤다. 재판부는 “학원 원장이 지역 정치인을 대동해 교육장과 면담한 부분은 A씨 입장에서 큰 부담이었을 것”이라며 “민원 갈등이 봉합되지 않은 상태에서 장기화한 민원을 종결하기 위해 최종 처분을 준비하고 있었으므로, 정신적 스트레스가 통상 수준을 상회했을 개연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재판부는 “고인의 사망이 공무상 재해가 아니라고 본 처분은 위법하므로 이를 취소한다”고 판결했다.

유족을 대리한 손익찬 변호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업무시간이 주 40시간 내외더라도 스트레스로 인한 뇌심혈관질환 발병 가능성을 인정한 판결”이라며 “특히 사무직의 경우 업무장소가 회사로 국한되는 것도 아니고, 업무시간도 업무성격에 따라 무한히 연장될 수 있다. 이 사건과 같이 책임과 강도 등 질적인 부분을 평가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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