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일 오전 국회 앞에서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이 근기법 개정안 입법촉구서를 붙이고 있다. <임세웅 기자>

“산재예방을 위해 공익사업을 하는 비영리협회에서 해고됐습니다. 고용노동부 전 직원을 고용해 가짜 5명 미만 사업장을 만들었습니다. 당시 제 상사는 노동부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노동법 전문가입니다. 혜택이 얼마나 대단하면 노동부 전 직원까지 있는데 가짜 5명 미만 사업장을 만들까요.”

산재예방사업 위탁업무를 수행하는 비영리협회에서 직장내 괴롭힘을 당하다 해고됐다는 노동자 김민정씨. 협회 사무실에서는 20명가량이 함께 일했는데 괴롭힘 신고를 할 때 보니 5명 미만 사업장이었다고 한다. 협회는 사단법인으로 노동부 관리·감독을 받는다고 했다.

김씨는 17일 오전 국회 앞에서 권리찾기유니온이 개최한 ‘일하는 사람 누구나 근로기준법 입법촉구를 위한 차별당사자 합동기자회견’에 참석해 마이크를 잡았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남우석씨는 “근로장학생이라는 이유로 주휴수당을 받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사소한 이유가 사소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심이 들었다”며 “노동자가 아니라서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찍소리도 못하는 존재, 현장실습생과 같은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동료들이 ‘일하게 해 줘서 감사해야 하는 존재’가 됐기 때문”이라고 한숨 지었다.

이날 기자회견장에는 9명의 사람들이 가로로 나란히 섰다. 모두가 ‘일하는 사람 누구나 근로기준법 입법촉구서’라는 인쇄물을 들었다.

참가자들은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지난해 9월과 올해 9월 발의한 근로기준법 개정안 통과를 요구했다. 지난해 9월 발의한 개정안은 상시사용 노동자수에 따라 적용범위를 구분하는 근기법 조항을 삭제하는 것이다. 올해 9월 발의한 법안은 모든 노무자들을 노동자로 추정하고 사용자가 노동자성을 부정할 경우 입증 책임을 사용자에게 지웠다. 사용자는 △노무제공자가 업무수행에 관하여 사용자의 지휘·감독을 받지 않는 경우 △노무제공이 사용자의 통상적인 사업 범위 밖에서 이뤄진 경우 △노무제공자가 사용자가 영위하는 사업과 동종 분야에서 본인의 이름과 계산으로 독립해 사업을 영위하는 경우를 입증해야만 노동자성을 부정할 수 있도록 했다.

근로기준법은 상시 5명 미만 노동자를 사용하는 경우 일부 규정만 적용받을 수 있게 했다. 노동자 권리보호를 위해 필요한 △부당해고 금지와 부당해고 구제신청 △법정근로시간 초과 제한 및 연장근로 제한 △연장·휴일·야간근로가산수당 △연차휴가 △휴업수당 △직장내 괴롭힘 금지 △중대재해 처벌 조항은 적용받지 못한다. 주말과 겹치는 모든 공휴일에 대체공휴일을 적용하는 공휴일에 관한 법률(공휴일법)에서도 5명 미만 사업장은 제외된다.

류하경 변호사(민변 노동위원회)는 “지금은 공장이 처음 만들어져 노동자 개념에 혼란이 있던 19세기가 아니라 모든 자본·설비·시설·기술력이 분화되고 사용자에게 노무제공자가 귀속된 21세기”라며 “사용자로 볼 수 있는 사람이 아주 극소수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입증 책임을 전환하는 게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에게 근기법이 인정 안 되는 것은 5명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인간이 아니라는 선언인데 너무 오래 이런 상태가 지속돼 왔다”며 “내일 통과돼도 늦은 법”이라고 덧붙였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는 강은미 의원안 외에 5명 미만 사업장에 근로기준법 일부조항을 확대 적용하는 내용의 법안이 다수 계류 중이다. 김정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같은 당 소병철 의원, 황보승희 국민의힘 의원과 송언석 무소속 의원은 5명 미만 사업장에도 직장내 괴롭힘 규정을 포함해야 한다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부당해고 금지와 부당해고 구제신청, 법정근로시간 초과 제한 및 연장근로 제한 규정을 5명 미만 사업장에 적용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같은 당 윤준병 의원은 모든 사업장에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도록 하고,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 제한, 휴업수당, 근로시간 및 휴가, 취업규칙 등에는 예외적으로 법 규정을 적용하지 않을 수 있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환노위는 계류 법안을 논의해야 할 고용노동법안심사소위원회를 지난 6월 이후로 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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