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판결 : 대법원 2021. 10. 14. 선고 2017다204070·204087·204094 판결

김경수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김경수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Ⅰ. 사건의 개요

에스티엑스 기업집단은 중국 대련지역에 중국 현지법인을 설립했고, 에스티엑스 기업집단 소속 기업들(이하 ‘피고 회사 등’)은 중국 현지법인의 인력 요청에 따라 피고 회사 등 소속 근로자들(이하 ‘원고 등’)을 인사명령을 통해 중국 현지법인에서 근무하도록 했다. 그런데 중국 현지법인은 2012년 이후 원고 등에 대해 임금 및 중간정산 퇴직금 등(이하 ‘이 사건 임금 등’)을 지급하지 않았다. 이후 이 사건 원고들은 국내에 복귀했지만 중국 현지법인에서 이 사건 임금 등을 지급받지 못하자 피고 회사들을 상대로 이 사건 임금 등의 지급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서는 원고들 주장을 받아들여 원고 등이 피고 회사들로부터 포괄적인 지시하에 중국 현지법인에서 근무했으므로 피고 회사들에 임금지급 의무가 있다는 취지로 원고들이 승소했다(창원지법 2015. 10. 29. 선고 2014가합31226·31233·32830 판결). 그러나 2심에서는 원고들이 퇴직금을 받는 등 피고 회사들과의 근로계약을 합의해지하고 중국 현지법인과 새로운 근로계약을 체결했다는 취지로 패소했다[부산고등법원 2016. 12. 22. 선고 (창원)2015나23331·23355·23362 판결]. 이에 원고들이 대법원에 상고했고, 대법원은 4년10개월 만에 원심판결이 부당하다는 취지로 파기환송했다(대법원 2021. 10. 14. 선고 2017다204070·204087·204094 판결).

Ⅱ. 대법원 파기환송 판결의 내용

대법원은 ① 인사명령으로 중국 현지법인에 근무하게 된 것과 중간정산 퇴직금을 받은 것은 근로계약 합의해지를 전제로 한 것으로 볼 수 없고 ② 근로자에게 기업의 임금 지급채무 지급능력은 중요한 관심사임에도 이를 고려하지 않고 임금채권을 포기하거나 책임을 면제했다고 보기 어려우며 ③ 중국 취업비자 발급, 중국 현지법인과 연봉계약 체결 내지 지휘·감독, 피고 회사 등으로의 복귀 여부나 시기를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았다는 점만으로는 근로계약을 합의해지했다고 볼 수 없고, 고용보험 등을 제공한 사정이 단순히 근로자들의 편의만을 위한 것으로 단정하기도 어렵다는 점 등을 들어 원고들은 피고 회사 등에 대한 기존 근로계약상 근로 제공 의무의 이행으로 중국 현지법인에 근무한 것이어서 피고는 원고들에게 임금지급 의무를 부담한다고 볼 여지가 크다고 판단했다.

Ⅲ. 검토 및 판결의 의의

이 사건의 핵심은 원고들이 중국 현지법인에서 근무한 것이 강학상 전적인지 여부이다. 강학상 전적은 대상판결에서 인용한 법리와 같이 종전 기업과의 근로관계를 합의해지하고, 이적하게 될 기업과 사이에 새로운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것(대법원 1998. 12. 11. 선고 98다36924 판결)으로, 같은 판례에서 대법원은 근로자가 전적 명령에 응해 종전 기업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퇴직금을 수령한 다음 이적하게 될 기업에 입사해 근무했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는 전적에 대한 동의를 전제로 한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합의해지에 대해서는, 역시 대상판결에서 인용하는 판례와 같이 계약이 성립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기존 계약의 효력을 장래에 향해 소멸시키기로 하는 내용의 청약과 승낙이라는 서로 대립하는 의사표시가 합치될 것을 요건으로 하고, 묵시적으로 이뤄질 수도 있으나 계약에 따른 채무의 이행이 시작된 다음에 당사자 쌍방이 계약실현 의사의 결여 또는 포기로 계약을 실현하지 않을 의사가 일치돼야만 한다(대법원 2018. 12. 27. 선고 2016다274270, 2016다274287 판결).

위 법리에 관한 사실관계를 보면, 대상판결에서 밝힌 바와 같이 ① 사직서 제출에 관해서는 원고들이 중국 현지법인에서 근무한 것은 피고 등의 인사명령에 따른 것으로 사직서 제출이나 퇴직 의사를 표시한 바 없었고, 중국 현지법인에 입사 신청이나 면접 등 실질적인 채용 절차를 밟은 적도 없었다. ② 퇴직금 수령에 관해서는, 에스티엑스 기업집단에서는 매년 말 당해연도 퇴직금을 중간정산해 지급했고, 2009년 이전에는 국내 소속사에서 지급했지만, 그 이후에는 중국 정책 등을 이유로 중국 현지법인에서 지급했다. 2009년 이후에 이동한 경우에는 피고 등으로부터 국내 근무 기간에 대한 중간정산 퇴직금을 받았고, 그 이후에는 중국 현지법인으로부터 임금 및 중간정산 퇴직금을 받았다. 한편 국내에서 퇴직소득을 지급할 때 세무서장에 제출한 원천징수영수증 등에는 퇴직 사유로 ‘중간정산’란에 표시돼 있었다.

사직서 제출이나 퇴직금 수령 등은 모두 근로자에게 근로관계 단절 의사가 있었는지를 판단하기 위한 요소로 볼 수 있다. 이 사건에서는 원고들의 사직서 제출이나 퇴직 의사표시는 없었고, 퇴직금은 중간정산으로 받은 것이어서 이러한 요소들을 보더라도 원고들에게 근로관계 단절 의사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설령 이러한 사정들이 있었더라도 이것이 기업체의 일방적인 결정에 의한 것이라면 근로자에게 근로관계 단절의 의사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오래전에 확립된 판례(대법원 1997. 3. 28. 선고 95다51397 등 참조)이고, 대상판결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중국 현지법인에의 인사명령이나 퇴직금 중간정산 등은 원고들이나 피고 회사들 입장에서 근로관계 종료를 전제로 한 것이 아니었다.

합의해지의 사정이 있는지 보더라도 ① 중국 취업비자 발급, 중국 현지법인과 연봉계약 체결이나 지휘·감독은 모두 외국 소재의 현지법인 근무라는 사정으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피고 회사 등과의 근로계약을 합의해지했는지와 관련 있는 것들이라고는 볼 수 없다. ② 피고 회사 등으로의 복귀 여부나 시기를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았다는 점 또한 피고 회사 등의 인사명령에 따라 중국 현지법인으로 이동해 근무했던 근로자 중 상당수가 피고 회사 등 국내 회사로 복귀했다는 점과 연결해 보면 원고들과 피고 회사들 사이에 근로계약을 실현하지 않을 의사였기 때문으로 보기는 어렵다.

대상판결에 기재된 다른 사실관계들을 보면 ① 중국 현지법인과의 근로계약서에는 피고 등이 원소속사로 기재돼 있었으며 ② 피고 등은 원고들에게 국내에서 4대 보험을 제공했고 ③ 내부 전산망에도 원고들의 국내 소속이 피고 등으로 표시됐다. ④ 일부 원고는 중국 현지법인 근무 기간에 피고 등에 재직 중이라는 취지의 재직 증명서를 발급받기도 했으며 ⑤ 피고 등을 원적으로 중국에 파견 중임을 전제로 그 소속사로 ‘복귀’ 가능한지에 대한 문의가 있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관계들은 모두 원고들과 피고 회사들 사이에 ‘기존 근로계약의 효력을 장래에 향해 소멸시키기로 하는 내용’의 합의가 없었고, 기존 근로계약의 효력이 계속 유지되고 있었다는 점을 뒷받침한다.

특히 4대 보험 제공은 중국 현지법인에 근무하던 원고 등에 대해 일괄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보여 납부한 보험료도 작지 않은 정도였을 것이고, 국민건강보험법 115조와 국민연금법 128조에 따라 부정한 방법으로 급여를 받게 하면 각 처벌 규정도 있다. 피고 회사 등이 이와 같은 경제적 부담과 형사처벌을 감수하면서까지 종전 직원에 대해 시혜적인 차원에서 4대 보험을 제공했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대상판결도 그와 같은 사정하에서 4대 보험을 제공한 사정이 근로자들의 이익과 편의를 위한 것에 불과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근로자들 측면에서 보면 대상판결이 적절히 설시한 바와 같이 해외 현지법인은 ‘임금 지급채무 지급능력’이 국내 계열사와 같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을뿐더러, 종전 기업과의 근로관계를 완전히 단절시키면서까지 자신의 연고지가 아닌 국외 근무를 선택했을 것으로 생각하기는 어렵다. 만약 근로자들이 합리적인 관점에서 국외 근무를 하기로 했다면, 이는 근무 종료 이후 복귀해 승진 등의 반대급부를 기대하거나 국외 근무를 가지 않았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불이익을 회피하기 위함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느 경우든 종전 기업과의 근로관계 단절이 아니라 오히려 종전 기업에서 계속근로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결론적으로 이 사건은 기업집단 차원에서 해외 현지법인으로 대규모 인원을 장기간에 걸쳐 근무하게 한 것이 전적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리딩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대법원은 대상판결에서 전적과 합의해지 등에 관한 일반적인 법리를 들어 기존 판결을 재확인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이 사건 원고 등과 임금채권의 규모, 대법원에서만 선고까지 4년10개월의 시간이 걸렸다는 점 등을 보더라도 대상판결의 의의는 크다고 할 수 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