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국 건설안전실무자협의회 회장

얼마 전 직장 선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조직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뜬금없이 “너의 안전철학이 뭐냐”는 질문을 받았다. 안전철학? 26년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웬 뜬구름 같은 안전철학을 물어보나 했다. 철학이라는 단어만 들어가도 머리가 지끈거리는데.

그런데 뒤돌아보면 그동안 안전업무를 하면서 내가 추구했던 가치는 무엇이고, 근로자의 생명을 구하고자 했던 이 마음을 어떻게 한마디로 표현할 방법을 찾지 못했던 것 같다.

올해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입법돼 내년 1월27일 시행된다. 우리 사회의 안전·보건의 시계가 빨라졌다. 94년 성수대교 붕괴, 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우리 사회의 안전 문제점들이 이슈화된 후 16년이 지나 최근에 와서야 안전은 우리 사회에서 그야말로 뜨거운 이슈가 됐다. 숨이 가쁠 정도로 세상이 바뀌어 가고 있음을 느낀다.

기업체에서는 사업주 및 경영책임자 등으로 의무 주체를 정하고 처벌을 강화한다고 하니 기존에는 없던 안전 전담 임원도 만들고 조직을 확대한다. 인원 충원, 정규직 전환, 안전보건관리비 예산 확대, 안전보건진단, 스마트 안전관리 도입 등 다양한 안전관리 활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안전 채용시장 또한 급격히 규모가 커졌다. 공공기관부터 민간기업까지 안전조직을 개편하고, 인원을 확충하는 등 안전 채용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안전보건의 시계를 10년은 앞당긴 것 같다. 그러나 마냥 좋은 것만 아니다.

이번 정부가 산업재해 사고를 50%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고용노동부는 올해 사망사고 20% 감축을 위해 전 부처의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했는데, 사고는 왜 줄어들지 않을까? 공무원들의 전문성이 부족해서일까?

이는 단기적 목표를 잡은 정부의 안전철학 부재 때문이라고 본다. 전적으로 안전에 대한 이해 부족이다. 점검을 강화하고 처벌을 강화하면 재해가 줄어들 것이라는 오판 때문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밀어붙이면 된다는 사고방식! 아직도 우리 사회에 만연한 사고방식과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 경제는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고, 모든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발전과 대비해 안전에 대한 인식과 투자는 부족한 게 사실이었다. 과연 정부의 안전 국정철학이 세부 발주기관이나 전 산업에 전달됐는지 의구심을 느낀다. 공공기관에서조차 안전에 관한 투자가 미흡하다. 계약직에 비전문가가 안전업무를 하는 실정인데 어떻게 사업장의 재해예방을 논할 수 있을까 싶다.

올해 공공발주기관 평가를 보면서 안전관리 전문가 배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다. 안전을 26년째 하고 있는 본인도 안전 전문가라고 하면 부끄럽다. 하면 할수록 생명을 다루는 안전 직업이 정말 어렵고 힘들다는 생각을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대형 로펌에 계신 분들이 안전 전문가 그룹이 됐는지 모르겠다. 지금 속칭 안전 전문가라 얘기하는 사람들 중에는 현장의 안전 관리를 경험한 사람들이 아니라 책상머리 이론가들이 많다. 현장을 알아야 한다고 말로만 떠드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럼 재해를 줄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제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정부의 책무, 사업주의 의무, 근로자의 의무,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정한 대로 각자 삼위일체가 돼 최선을 다했으면 한다. 일방적인 책임을 전가하기보다 우리 모두의 책임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는 처벌 중심보다 예방 중심의 정책을 수립하고, 단기적 목표보다는 기업이 스스로 자율안전 관리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하며, 눈높이를 낮춰 중·소 단위 사업장까지 안전보건경영시스템을 조기에 구축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더불어 근로자 및 전 종사자들의 안전의식 함양에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사업주는 경제적인 이익을 우선하기보다 인명 존중의 소중함을 인식할 수 있도록 이제는 모든 역량을 기울여야 할 것이며, 그에 따른 책임과 권한이 필요하다. 근로자는 본인의 생명을 담보로 위험한 작업에 스스로 노출되지 않도록 불안전한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나만 편하면 되지라는 생각을 버리고, 주위 동료들의 시선을 두려워해야 한다.

위기가 곧 기회라고 하지 않는가? 지금이 대한민국이 안전 선진국으로 도약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더 이상 우리 사회가 중대재해처벌법이 필요 없는 성숙한 안전사회가 됐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안전은 근로자에 대한 관심과 관찰, 그리고 생명에 대한 무한한 책임감이라 감히 애기하고 싶다. 그것이 곧 나의 안전철학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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