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X 조선해양. STX 유튜브 홍보 영상 갈무리

현지법인이 체불한 임금을 지급할 의무는 본사에 있다고 대법원이 판결했다. 본사가 국외 현지법인의 요청에 따라 노동자를 파견한 것은 근로계약 종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대규모로 장기간 국외 현지법인에 직원을 파견한 대기업의 임금지급 관련 책임소재를 살핀 대법원 판결은 이번이 처음이다. 법조계는 이번 판결이 전출·전적과 관련해 중요한 선례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파견 직원 임금 소송, 7년 공방 끝에 원고 승소
‘현지법인 체불임금 지급 주체’ 쟁점

대법원 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중국 STX대련에서 파견 근무했던 STX조선해양·중공업 직원 5명이 STX조선해양의 법정관리인을 상대로 낸 임금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법 창원재판부로 돌려보냈다고 27일 밝혔다. 이 사건과 같은 취지로 소송을 낸 파견 직원 11명에 대한 사건도 대법원이 원고 승소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이번 소송은 2014년 3월 제기돼 7년이 넘는 법정 공방 끝에 결론이 나왔다. 그만큼 법리가 복잡했다는 것이다. 특히 대법원에서만 4년6개월 이상 심리했다.

사건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STX 직원 A씨 등 4명은 2007년 8~11월 사이에 중국 현지법인으로 발령 나 2013년 6~9월까지 근무했다. 다른 직원 B씨는 2012년 3월부터 2014년 1월까지 중국 현지법인에 파견돼 일했다.

그런데 파견근무 동안 현지법인이 경영난으로 임금과 퇴직금 등을 체불했다. 이에 이들은 본사 지시에 따라 파견됐다며 본사에서 체불임금과 퇴직금·상여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소송을 냈다.

재판에서는 파견 직원들의 소속 여부가 핵심 쟁점으로 다뤄졌다. 직원들이 본사에서 근로자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지에 따라 임금 지급의 주체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1심은 “직원들이 본사의 해외파견명령에 따라 본사의 근로자 지위를 유지하면서 중국 STX대련에 파견근무를 한 것”이라며 본사가 체불임금 발생 당시 사용자라고 판단해 직원들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파견근무시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은 점 △현지법인 채용 과정을 거치지 않은 점 △본사가 사전적·포괄적인 지시를 한 점 △4대 보험 기록상 소속이 본사인 점 △재직증명서에 파견기간을 포함해 재직기간을 작성한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그러면서 “본사의 인사명령에는 파견기간 동안 현지법인의 구체적인 업무지시를 따르라는 본사의 사전적·포괄적인 지시가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항소심은 “파견 직원들은 본사와의 근로계약을 합의해지하고, 중국 현지법인과 새로운 근로계약을 체결했다”며 1심을 뒤집었다. 항소심은 본사의 근로자 지위가 유지됐더라도 현지법인에서 근무하는 동안 본사에 대한 근로제공을 중단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근로계약 종료 전제로 파견명령한 것 아냐”
파견 직원 대리인 “전출·전적 관련 중요한 선례”

대법원 판단은 원심과 달랐다. 대법원은 “본사가 인사명령을 한 것과 현지법인으로의 이동 무렵 파견 직원들에게 중간정산 퇴직금을 지급한 것이 전적 등 근로계약의 종료 의사를 표시한 것이라거나 근로계약의 종료를 전제로 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또 “본사와 파견 직원들이 근로계약 실현 의사의 결여 또는 포기로 근로계약을 실현하지 않을 의사를 표시했다고 볼 사정을 찾기 어렵다”고 했다.

대법원은 “파견 직원들은 기존 근로계약상 근로제공의무의 이행으로서 현지법인에서 근무했다”며 “이에 따라 본사는 파견 직원들에게 현지법인에서 제공한 근로에 대해 임금지급책임을 부담한다”고 판결했다.

파견 직원들을 대리한 박일환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등 변호인단은 “하급심에 동일한 쟁점의 사건이 다수 계류돼 있다”며 “그룹 차원에서 대규모 인원을 장기간에 거쳐 해외 현지법인에 파견한 사례와 관련한 대법원 판례가 없었기 때문에 이번 판결은 전출과 전적에 대한 중요한 판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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