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대법원이 1년 기간제 노동자의 연차휴가일수는 11일이라고 판결했다. 최대 26일로 보는 고용노동부의 행정해석은 물론, 기존 대법원 판례에도 배치되는 결정이어서 파장이 크다. 이번 판결은 1년 계약 비정규직뿐만 아니라 1년 근무 후 이듬해 계속근로가 어려워 연차휴가를 사용하지 못하는 정규직 노동자까지 영향을 미친다. 노동현장에 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20일 고용노동부와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노인요양복지시설 대표 A씨가 국가와 요양보호사 B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1년 기간제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에게는 최대 11일의 연차휴가가 부여된다”고 판시했다.

요양보호사인 B씨는 2017년 8월1일부터 2018년 7월31일까지 1년 계약직으로 일하면서 15일의 연차휴가를 사용했다. B씨는 노동부가 2018년 5월 발표한 ‘1년 미만 근로자 등에 대한 연차휴가 보장 확대 관련 개정 근로기준법 설명자료’에서 “1년 기간제 노동자의 계약기간이 만료되는 경우 최대 26일분의 연차휴가 미사용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는 해석을 근거로 체불임금 진정을 냈다. A씨는 근로감독관 계도에 따라 미지급한 11일분의 연차휴가수당 71만7천150원을 지급했다. 하지만 1년 기간제 노동자에게 최대 26일의 연차휴가가 발생한다는 취지의 노동부 설명자료가 문제가 있다는 판단에서 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건 쟁점은 1년 기간제 노동자에 부여된 연차휴가일수가 최대 11일이냐, 아니면 26일이냐다.

‘근로관계 종료돼도 연차수당 청구권 발생’
기존 판례와 충돌

근로기준법 60조1항은 1년간 80퍼센트 이상 출근한 노동자에 15일의 연차 유급휴가를 보장하고 있다. 60조2항은 1년 미만 노동자 또는 1년간 80퍼센트 미만 출근한 노동자에 1개월 개근시 1일의 유급휴가를 주도록 하고 있다. 노동부는 2005년까지는 1년 근로 후 이듬해 추가 근로가 있어야 연차(또는 미사용 수당)가 발생한다고 해석했다. 하지만 같은해 대법원이 “연차유급휴가권을 취득한 후 사용하기 전 근로관계가 종료되더라도 연차휴가수당을 청구할 권리는 잔존한다”고 판결하면서 행정해석을 변경했다. 1년 근무 후 다음해 계속근로를 할 수 없는 경우에도 연차 미사용수당은 지급해야 한다는 취지다.

1년 근무한 노동자의 최대 연차사용일수가 쟁점이 되는 것은 2018년 5월 시행된 개정 근로기준법과 관련이 있다. 그전까지 1~2년차를 합쳐 최대 15일의 연차가 부여됐으나 국회에서 근속기간 2년 미만 노동자의 휴가를 보장하기 위해 최초 1년간의 근로에 대한 연차를 다음해 연차에서 빼는 규정을 삭제하는 법안이 통과된 뒤 1년차에 최대 11일, 2년차에 15일의 유급휴가를 각각 받을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노동부는 “1년 근무 후 퇴직시 1년차 연차(11일)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면 2년차 연차(15일)와 합산해 26일분의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는 설명자료를 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번 사건에서 1년 기간제 노동자의 연차휴가일수는 최대 11일이라고 판단했다. 60조1항과 60조2항을 중첩 적용한 노동부의 행정해석에 제동을 건 것이다. 대법원은 “연차휴가를 사용할 권리는 다른 사정이 없는 한 1년간의 근로를 마친 다음날 발생한다”며 “그전에 퇴직 등으로 근로관계가 종료되면 연차휴가를 사용할 권리에 대한 보상으로 연차휴가수당도 청구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노동부 행정해석대로라면 1년 기간제의 연차사용일수가 연차 상한을 25일로 규정한 근기법 60조4항을 넘어서 장기근속 노동자보다 우대하는 결과가 빚어진다는 취지다. 2년에 1일씩 가산하는 연차가 법정 상한 25일에 이르려면 20년 이상 근속해야 한다.

대법원은 “근기법 60조1항은 최초 1년간 80퍼센트 이상 출근한 노동자가 다음해도 근로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전제로 2년차에 15일의 유급휴가를 주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1년간 근로계약이 만료돼 더 이상 근로계약관계가 유지되지 않는 노동자에게는 근기법 60조1항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다만 대법원은 “노동부의 설명자료나 근로감독관의 계도에 고의 또는 과실이 있다고 인정하기에 증거가 부족하다”며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는 기각했다.

현장 혼란 불가피

이번 판결은 근로관계 존속을 전제하지 않아도 연차휴가수당 청구권은 인정된다는 2005년 대법원 판결과 충돌한다. 2020년9월 헌법재판소 결정과도 부딪힌다. 헌법재판소는 “연차휴가 성립에 당해연도 출근율을 요건으로 추가하면 전년도 근로에 대한 보상이라는 연차유급휴가제도 취지를 반하게 된다”며 1년 이후 추가 재직을 요건을 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박성우 공인노무사(민주노총 서울본부 노동법률지원센터)는 “우려했던 결과가 나왔다”며 “법원이 기존 판례를 뒤집으려면 최소한 전원합의체를 열어 숙의한 후 판례를 변경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노무사는 “이번 판결은 1년 기간제뿐만 아니라 연차휴가 청구권이 있지만 다음해 계속근로가 어려운 노동자라면 누구나 해당한다”며 “연차휴가 청구권과 연차수당 청구권 발생시점의 법적 요건을 다시 정확하게 따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노동부도 당혹스러운 분위기다. 노동부 관계자는 “법원이 60조1항에 따른 연차휴가 15일은 전년도 1년간의 근로를 마친 ‘다음날’ 발생한다고 했는데, 기존 판례는 노동자가 1년간 소정의 근로를 마친 대가인 연차휴가 사용 권리를 확정적으로 취득한다고 해석하고 있다”며 “이미 취득한 권리를 사용하려면 하루라도 더 근무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 근거가 의문”이라고 말했다.

현장 혼선은 불가피해 보인다. 2018년 노동부의 행정해석에 따라 최대 26일의 연차휴가수당을 보장했던 사업장에서 당장 연차휴가수당 조정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노동부 행정해석에 따라 이미 최대 26일치의 연차수당을 지급한 사업장에서 반환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있다. 정경훈 노동부 대변인은 “판례를 면밀히 분석해 향후 입장을 정리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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