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혜선 가톨릭대 보건대학원 교수(한국보건안전단체총연합회장)
▲ 정혜선 가톨릭대 보건대학원 교수
(한국보건안전단체총연합회장)

요즘 우리나라는 온통 화천대유 이슈에 파묻혀 있다. 일반인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아서 같은 나라에서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인지 믿기지 않을 뿐이다. 가장 놀라운 일 중의 하나가 퇴직금으로 50억원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50억원 중 약 44억원이 ‘스트레스 등 업무 과중으로 인한 건강악화’에 대한 산재 위로금이라고 한다. 얼마나 심한 건강악화가 발생했길래 이처럼 어마어마한 금액을 산재 위로금으로 받은 것일까?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건으로 사망한 김군의 산재 보상금은 8천여만원이었다고 한다. 발전소에서 사망한 김용균씨와 평택항에서 사망한 이선호군의 산재보상급여도 이와 유사한 금액이라고 했다. 이들 모두 꽃다운 나이에 생명을 잃은 것에 대한 보상금인데, 건강악화로 44억원의 위로금을 받았다는 사실은 너무나 충격적인 일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처럼 심각한 건강문제가 나타났는데, 실제로 산재신청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산재를 산재로 신청하지 않고, 회사와 합의해 위로금만 받았다면 이것은 명백한 산재 은폐라고 할 수 있다. 아직도 수많은 기업에서 산재 은폐를 시도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회사에서는 이를 외부로 알리지 않고, 산재 근로자와 합의해 종결 처리를 하고 있다. 이번 일도 화천대유 사건이 알려지지 않았다면 은밀하게 종결 처리됐을 것이다. 그런데 화천대유 문제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자 산재 위로금을 받았다는 사실을 너무도 당당하게 얘기하는데, 아마도 산재를 은폐한 것이 잘못됐음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

산업안전보건법 54조에는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실을 알게 된 사업주는 지체 없이 고용노동부에 보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중대재해 발생 사실을 보고하지 않거나 거짓으로 보고한 경우에는 3천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돼 있다.

김정우 한국노동연구원 전문위원은 ‘산업노동연구’ 2월호에 발표한 논문에서 2011~2017년 사업체 패널조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산재사건 은폐율이 66.6%였다며 산재로 인정되는 사례보다 산재가 은폐된 사례가 2배 정도 더 많다고 했다.

지난 3월에는 경북 칠곡 건설현장에서 일용직 근로자가 추락한 사건이 발생했는데, 동료들이 신속하게 119 후송을 요구했지만 쓰러진 피해자를 방치해 뒀다가 119구급차가 아닌 개인 승용차로 이송했고,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됐다. 119 후송을 하지 않은 것은 산재 사망 사실을 은폐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갖게 한다. 사망사고 등의 중대재해는 은폐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이 발생하고 있으니 사망사고가 아닌 경우에는 산재를 감추기 위해 더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지 않을까 의심하게 된다.

중대 산업재해를 은폐하지 못하게 법으로 정하고 있음에도 기업이 산재를 은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산재가 발생한 기업은 노동부의 집중적인 감독을 받기 때문이다. 산재보험료도 인상돼 경제적인 손실도 입게 되고, 대외적으로도 이미지가 크게 나빠지기 때문이다. 건설업의 경우에는 입찰자격 심사에서 감점을 받기 때문에 산재신청 대신 공상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 사업주가 처벌받지 않기 위해서 인과관계를 명확히 증명할 수 없는 과로사나 정신질환 등은 산재로 인정받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예측된다.

산재로 신청을 해도 그것이 모두 산재로 승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업무상 사고 승인율은 96% 정도 되는데 스트레스나 우울, 뇌심혈관계질환 등의 업무상 질병 승인율은 60% 수준이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산업재해의 70% 이상이 50명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하고 있는데, 영세 소규모 사업장에서 발생한 산재는 산재신청도 못 하고, 위로금이나 합의금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열악한 곳에서 일하는 근로자가 더욱 취약한 대우를 받는다고 할 수 있다. 산재 은폐를 막아 앞으로는 산재를 당한 근로자가 정당하게 보상받고 평등하게 대우받을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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