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현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

지난 6일 여수의 한 선착장에서 요트에 들러붙은 따개비를 제거하던 열여덟살의 특성화고 실습생 홍정운군이 바다에 빠져 숨졌다. 12킬로그램 납덩이가 익숙지 않은 잠수작업으로 지친 한 생명을 죽음의 심연으로 끌고 내려갈 때, 우리는 그가 부여잡고 지탱할 구명줄 한가닥 내리지 못했다.

근로기준법 65조(사용금지)에 따르면 사용자는 18세 미만자를 도덕상 또는 보건상 유해·위험한 사업에 사용하지 못한다. 여기에는 잠수작업이 포함돼 있다. 근로기준법은 5명 이상 사업장에 적용되지만 ‘여성과 소년’에 대한 조항은 모든 사업장에 적용된다.

직업교육훈련 촉진법(직업교육훈련법) 9조의4(현장실습산업체의 책무)에는 현장실습산업체의 장은 산업재해의 예방 및 보상과 안전·보건에 관한 정보 제공, 그 밖에 안전한 현장실습에 필요한 사항을 성실히 이행하도록 명시돼 있다. 9조의5(현장실습 안전교육 등)에서는 직업교육훈련생에 대해 현장실습 안전교육을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 140조(자격 등에 의한 취업 제한 등)는 유해하거나 위험한 작업으로서 상당한 지식이나 숙련도가 요구되는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작업의 경우, 사업주는 그 작업에 필요한 자격·면허·경험 또는 기능을 가진 근로자가 아닌 사람에게 그 작업을 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는 스쿠버 잠수작업이 포함된다.

산업안전보건법 166조의2(현장실습생에 대한 특례)에 따라 현장실습산업체의 장은 현장실습생에서 대해 산업안전보건법상의 안전·보건 조치를 해야 한다. 법상의 안전조치와 보건조치의 구체적 사항을 규정하고 있는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안전보건규칙) 545조(스쿠버 잠수작업시 조치)에서 사업주는 근로자가 스쿠버 잠수작업을 하는 경우에는 2명을 1조로 해 잠수작업을 하도록 해야 하며, 잠수작업을 하는 곳에 감시인을 둬 잠수작업자의 이상 유무를 감시하게 하도록 하고 있다.

아무것도 작동하지 않았다. 저 많은 법과 기준 중 어떤 한가지라도 작동했다면 홍군은 오늘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도 꺼려 왔다던 물 속이 아니라 애초 그의 바람처럼 물 위를 누비는 요트를 다룰 미래를 기대하면서. 그를 가라앉혀 숨을 멎게 한 것은 납덩이가 아니라 작동하지 않은 이 사회의 안전 시스템이다. 온 사회가 납덩이보다 천만 배는 무거운 책임을 나눠 짊어져야 한다.

현장실습의 문제점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를 포함한 여러 사회단체에서 제기해 왔다. 교육이 사라진 실습은 착취일 뿐이며 그런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이라면 마땅히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학교에서조차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던 많은 특성화고 학생들은 현장실습제도가 사라지기보다 제대로 ‘개선’되기를 기대하고 요청해 왔던 것도 사실이다. 어차피 닥칠 현장이니 교육 아닌 경험이라도 삼고, 부족할지라도 자신의 노동에 대한 대가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헐값 노동의 정글에서 현장실습생은 가장 약한 개체들이었다. 포식자들은 약자에게 잔인하고 권력 없는 이들에게 무자비한 법이다. 어리다는 이유로, 실습생이라는 이유로, 권리를 누릴 권력이 부족하단 이유로 더 큰 위험에 내몰렸다. 현장실습생만이 아니다. 위험한 일일수록 권리가 적은 이들에게 떠넘겨지고 있다. 어떤 일들은 특히나 더 위험하지만 법·제도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

당장의 현실에서 보자면 직업교육훈련법,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생활물류서비스법), 건설안전특별법, 필수업무 지정 및 종사자 보호·지원에 관한 법률(필수업무종사자법) 등의 특별법으로 각별하게 안전과 건강을 다뤄야할 사회적 필요는 분명하며 제·개정 주장은 타당하다.

주장은 더 나가야 한다. 현장실습생·여성·이주노동자·불안정 노동자·대기업 정규직 누구도 미비한 안전보건조치로 죽어서는 안 된다. 어느 누구라도 자신이 하는 일과 그 일이 벌어지는 현장(일터)에서의 안전과 건강이 보장되도록 만드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면 개정되면서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의 안전 및 보건을 유지·증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아 자못 그 대상이 넓어진 듯했다. 하지만 여전히 사업장의 규모와 업종, 종사상의 지위에 따라서 권리와 보호의 수준은 차별적이다. 지켜야 할 조항들이 늘어났고 기업들은 나열된 지시적 규칙이나 기준을 지키는 듯하다. 하지만 규제가 달성하려는 목표는 피해 가는 소위 창조적 순응이나 형식적 순응 여지도 높아졌다.

변화하는 시대에 조응하지 못하고 교묘한 규제회피에 대응하기 어려운 산업안전보건법 체계를 고수하고, 새롭게 등장하거나 사회적 쟁점이 되는 안전보건 문제에 대해서 현장 작동성도 검토하지 못한 조문을 끼워 넣거나, 이곳 저곳 특별법으로 땜질하는 방식은 이미 한계에 이르렀다. 흔히들 영국 산업안전보건법이라고 번역하는 ‘ Health and Safety at Work Act’는 사회 전반의 안전보건 시스템에 대한 2년여에 걸친 통렬한 반성과 성찰에 기반해 사회적 동의로 만들어진 법이다. 남의 나라 이야기를 언제까지나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우리도 최소한 그만큼의 성찰과 준비를 통해 새롭고 포괄적인 일터 안전·보건법을 준비해야 한다.

당장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생명을 지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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