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진희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

우리나라는 1987년 제정된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을 통해 모집·채용, 교육·배치, 승진, 정년·퇴직 및 해고 등 고용의 과정과 임금, 복리후생 등에서 남녀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1997년 국제노동기구(ILO)의 동일가치 노동에 대한 남녀근로자의 동일보수에 관한 조약(100호 협약)에 비준했고, 1998년에는 고용 및 직업과 관련한 차별금지조약(111호 협약) 또한 비준했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남녀고용평등법 제정과 국제노동기구의 100호·111호 협약 비준을 통해 대내외적으로 임금차별과 고용상 차별을 금지하는 국가로 분류됨에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성별 임금격차가 가장 크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당시 우리나라의 극심한 성별 임금격차를 OECD 수준으로 낮추기 위해 고용주의 성별 임금격차 현황보고 의무와 성별 임금격차 개선계획 수립의무를 부여하는 ‘성평등 임금공시제’ 도입을 공약했다. 2017년 7월 발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도 2018년까지 성평등 임금공시제 도입을 국정과제 중 하나로 제시했으나, 여러 쟁점사항으로 인해 올해 10월 현재까지도 도입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특히 도입을 어렵게 만드는 주된 쟁점 중 하나로는 공시의 구성항목을 들 수 있다. 구성항목은 성평등 임금공시제의 실효성과도 직결되는 사항으로, 어느 수준까지 구성할 것인지가 핵심적 논의 대상이 된다.

성평등 임금공시제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직접적으로 노동시장 내에 만연한 차별을 시정하는 것이고, 둘째는 간접적으로 노동시장의 성별 불균형을 드러내 공감대를 형성하고 개선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초점을 어디에 두는지에 따라 접근방식이 달라진다. 무엇보다 장기간 성별 임금격차가 해소되지 않는 우리나라의 특성을 고려해 본다면 후자보다는 전자, 즉 차별시정에 초점을 두는 것이 적절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를 위해서는 주된 쟁점사항인 공시 구성항목이 매우 구체적이고 일정 수준 이상의 객관성을 담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각 기업에 분포된 남녀 노동자의 특성이 상이함에도 불구하고 전자공시시스템 또는 공공기관 경영정보공개시스템(알리오)과 동일하게 단순히 남녀의 임금만 공시하는 것은 객관성이 떨어져 오히려 더 큰 논쟁을 야기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가령 어떤 기업의 남성 평균임금이 5천만원이고, 여성의 평균임금이 4천만원이라 하더라도 성별에 따른 근속연수와 노동시간, 직급, 직책 등에 의해 합리적 임금차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성별 임금격차에 대한 오판을 최소화하고 최대한 객관적인 지표를 생산하기 위해선 세부적인 구성항목이 요구된다. 성평등 임금공시제의 공시항목을 구성할 때 성별에 따른 고용형태별·직종별·직무별·직급별·근속연수별 등 매우 세밀하게 공시항목을 구성하고 추가로 교차구성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리급 n년차의 성별 임금격차를 제공하거나 사무직 대리급 n년차의 성별 임금격차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이는 단순히 대리급 성별 임금격차를 공시하는 것에 비해 더욱 세부적이고 객관적이다. 문제는 이러한 방식은 일목요연하게 임금수준과 요인별 분포를 비교분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음에도, 모두가 접근가능하도록 설계될 경우 기업의 영업비밀 누출과 경영활동 제약, 사회적 위화감 조성 등 여러 문제가 우려된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경영계에서는 성평등 임금공시에 대한 반발이 매우 높은 것도 일부 이해가 된다.

이에 성별임금 공시방법의 현실적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가장 보편적으로는 정부기관에만 정보를 제출하고 행정감독 등을 통해 임금격차를 해소하는 방식을 고려해 볼 수 있다. 다만 이 방식의 경우 실제 차별을 받는 당사자가 성별 임금격차를 해소해 나가는 과정에서 제외된다는 문제를 가진다. 이에 독일·오스트리아·벨기에와 같이 대외적 공개는 지양하고 노동조합과 직원, 직장평의회에 정보를 공개하는 방식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임금분포정보를 노동조합과 노사협의회에 공개함으로써 단체협약이나 임금협상 등을 통해 노사가 자율적으로 임금격차 해소를 위해 노력할 수 있고, 대외공개로 인한 여러 우려를 불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따라서 향후 도입될 성평등 임금공시제에서 노동조합이 높은 협상력을 갖고 주도적으로 성별 임금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책입안 과정부터 노동조합의 적극적 개입이 요구된다. 또한 공개된 임금분포정보에 대한 체계적 분석방법과 능력을 갖춰야 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 (jhjang8373@inoch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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