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디펜스와 한화에어로페이스에서 금속 표면 처리작업을 하던 노동자들이 잇따라 골수 이상 질병으로 업무상재해 판정을 받았다. 그동안 전자·반도체산업에서 주로 발생했던 유해·발암물질 사용에 따른 백혈병과 직업병 논란이 금속제조업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속노조법률원 경남사무소는 삼성테크윈 시절부터 한화디펜스(옛 한화테크윈) 창원공장에서 40년간 일하다 퇴직한 노동자 A씨가 골수이형성증후군으로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한 지 2년10개월 만에 인정됐다고 22일 밝혔다. A씨는 1978년 입사해 ‘자주포’ 등을 만드는 공정에서 용접과 제관·표면처리·세척·크롬도금·도장 작업을 했다. 1997년부터 재생불량성 빈혈을 앓았던 그는 57세였던 2018년 몸에 자주 멍이 들고 지혈이 되지 않아 병원을 찾았다가 골수이형성증후군 진단을 받고 산재를 신청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역학조사에서 A씨는 1985~1993년 8년간 표면처리 작업을 할 당시 제대로 된 보호시설도 없었고 보호장구를 착용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고무장갑만 낀 채로 알루미늄 부품과 로드휠을 트리클로로에틸렌(TCE)이 담긴 탱크에 넣은 후 걸레로 닦아 내거나, 도료 원료에 시너를 넣어 뿜칠을 했다. 금속 세척제로 활용되는 TCE는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정한 ‘특별관리물질’로 독성감염과 피부질환·혈액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역학조사에서 TCE 노출과 질병과의 관련성은 확인되지 못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A씨가 세척작업과 도장작업을 하는 동안 상당한 수준의 벤젠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1996년부터 2003년까지 한화테크윈(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블레이드 가공부서에서 일하던 B씨는 건강검진에서 범혈구감소증 소견이 나와 2017년 7월 혈액정밀검진 한 결과 무형성빈혈 진단을 받았다. 무형성빈혈은 혈액세포인 백혈구·적혈구·혈소판이 모두 감소하는 범혈구감소증을 일으키는 병이다. B씨는 평면연삭 가공기를 이용해 금속을 절삭하는 작업을 했는데 이 과정에서 절삭유·수용성 금속가공유·세척제·산과 알칼리 용액 같은 유기용제에 노출됐다. 역학조사에서는 업무관련성이 부인됐지만, 업무상질병판정위원원회가 추정의 원칙을 적용해 업무상재해로 인정했다. 공단은 “무형성빈혈의 직업적 원인으로 벤젠과 전리방사선·농약·비소 등이 알려져 있는데 B씨가 기계가공과 열처리·세척업무를 하는 과정에서 벤젠 등 조혈기계암 유발물질에 노출됐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최영주 공인노무사(금속노조법률원 경남사무소)는 “이번 사건의 문헌조사 결과에 따르면 2000년 이전까지 국내에서 벤젠 사용에 대한 규제가 제대로 되지 않아 도료나 접착제·세척제에 벤젠이 포함됐을 수 있다”며 “쇠공장에서 표면처리 작업이나 도장작업을 했던 노동자가 질병을 앓고 있다면 직업적 원인을 의심하고 산재를 신청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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