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청사 전경.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대법원이 업무와 재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입증할 책임은 노동자에게 있다고 판결했다. 기존 판례가 그대로 유지된 것으로, 증명 책임을 완화해야 한다는 산재 피해자들의 호소는 대법원 문턱에서 멈추고 말았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사망한 노동자 A씨의 부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부지급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대법관 9 대 4의 의견으로 원고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9일 확정했다.

이 사건은 업무상 재해에 대한 증명 책임의 주체가 쟁점으로 다퉈졌다. 휴대전화 품질검사 업무를 수행한 A씨는 2014년 4월19일 동료 직원과 약 10분 동안 5킬로그램 박스 80개를 한 번에 2~3개씩 화물차에 실은 후 사무실로 복귀하다 갑자기 쓰러졌다. 이후 병원에서 ‘박리성 대동맥류 파열에 의한 심장탐포네이드’ 진단을 받았고, 결국 숨졌다.

A씨 부모는 같은해 7월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다. 하지만 공단은 사망과 업무의 인과관계를 부인하고 부지급 처분을 했다. 그러자 A씨 부모는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한 업무상 재해”라며 2015년 4월 소송을 냈다.

1심은 원고 승소로 판결했지만, 항소심은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에 대해서는 주장하는 측에서 증명해야 한다”며 1심 판결을 뒤집고 A씨 부모의 청구를 기각했다. 대법원도 “업무와 재해 사이 인과관계의 증명 책임은 근로자측에 있다”며 상고를 기각했다. 다수의견을 낸 대법관 9명은 “2007년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 개정 이후에도 증명책임은 업무상 재해를 주장하는 근로자측에게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므로, 기존 판례를 유지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2007년 4월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에 관해선 이를 주장하는 측에서 입증해야 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반면 대법관 4명은 “업무상 재해의 요건 가운데 ‘상당인과관계의 부존재’에 대해서는 상대방이 증명해야 한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이들은 “보험급여 지급청구권의 인정 요건인 ‘업무상 재해’에 관한 증명책임에 관해서도 그 문언에 따라 분배하는 것이 일관성이 있다”며 “2007년 산재보험법 전부개정 당시 입법자 의사는 업무상 재해에서 상당인과관계에 관한 증명책임을 전환해 ‘상당인과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상대방이 증명하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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