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태진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노동안전보건부장(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29일 ‘안전보건 관리체계 가이드북’을 발간했다.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산업재해에 따른 경제적 손실 규모가 3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전년대비 8.5% 증가한 수치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노동부가 획기적인 산재 사망사고 감축을 목표로 강도 높은 대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지만, 사망사고는 줄지 않고 있다.

가이드북은 “기업 스스로 사업장 내 위험요인을 발굴해 제거·대체 및 통제 방안을 마련·이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이행하기 위한 7가지 핵심요소별 실행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7가지 핵심 요소는 △경영자 리더쉽 △노동자의 참여 △위험요인 파악 △위험요인 제거·대체 및 통제 △비상조치계획 수립 △도급·용역·위탁시 안전보건 확보 △평가 개선이다. 7가지 핵심요소는 그동안 노동부가 안전보건 영역에서 지속적으로 제기한 방안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체계적으로 정리해 목록화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아볼 수 있다. 더불어 7가지 핵심요소가 사업장에서 제대로 작동이 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노동부의 중점 과제가 됐다.

위험할 땐 “NO” 작업중지권 확대해야

가이드북은 삼성전자(주) DS부문 시행하고 있는 작업중지권을 우수사례로 소개하고 있다. 삼성은 2018년부터 작업중지권 행사를 장려했지만 협력업체와 소속 노동자들이 작업중지권 행사에 소극적이었다. 이런 현실을 해결하기 위해서 작업중지에 따른 보상체계를 마련하해 현장에서 작업을 중지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자평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광주환경공단에서 작업중지 요청제를 도입했다고 발표했다. 위험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확대해 사업주가 이를 권장하고 보장하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다만 이미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이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을 보장하고 있는데도 일부 사업장의 모범사례를 치켜세우는 것은 씁쓸하다. 현장 노동자가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작업중지권을 사용하지 못하는 이유는 징계 등의 불이익과 임금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따라서 작업중지권을 사용한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기업에 대해서는 철저한 감독과 제재가 뒤따라야 한다. 작업중지를 실시하는 근본적 원인은 사용자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및 안전배려의무 불이행이다. 작업중지를 요구하는 노동자들에게 금전적·생활상의 손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와 법을 정비해야 한다. 노동자들이 위험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작업중지 확대로 이어져야 한다.

기업에 정확한 신호를,
노동자는 권리의 주체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앞서 노동부는 산업안전보건본부를 출범하고, 지난달부터 3개월에 걸쳐 건설업과 제조업을 중심으로 사업장 집중감독을 진행하고 있다. 건국 이래 정부가 사업장에 산업안전감독관 및 안전보건공단 소속 직원 등 1천800여명을 일제히 투입해 집중감독하는 것은 아마 최초 사례가 아닐까 한다. 하지만 전체 사업장 400만개 중에서 4차례 점검을 했던 사업장은 1만2천300개로 비율로만 보면 0.25%에 불과하다. 노동부는 집중점검을 위해서 사고대비 사고율이 높은 사업장을 10배수로 추렸다고는 하지만, 한계는 명확할 수 밖에 없다. 수치로만 보더라도 99% 이상의 사업장은 정부의 손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노동부가 해야 할 것은 인력과 재정 핑계를 대면서 한계적인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극복하는 대안을 만드는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대안은 첫째, 사고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과 안전배려의무를 다하지 않아 발생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제제를 명확히 하는 것이 재발을 막고 예방을 강제하는 길이다. 둘째,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참여권을 보장하고 확대하는 것이다. 노동부는 그동안 노사자율을 강조했다. 사업주와 노동자가 공히 노력을 해야 한다며 양자 모두가 문제라고 주장해 왔다.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안전보건관리체계에 있어서 만큼은 대등한 주체로 설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안전보건관리체계를 바로 세우는 핵심이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참여권을 보장하고, 확대하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노동부 입장으로 분명히 하는 것이다. 끝으로 산재발생에 따른 30조원의 경제적 손실은 기업이 직접 부담을 지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기업도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거나 회피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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