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이 넉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이에 대응하는 기업들의 시간표도 빨라지고 있다.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는 곳은 건설업계다. 산업재해 사망사고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건설업은 지난 4월부터 고용노동부의 강도 높은 특별근로감독을 받으며 중대재해처벌법 예방주사를 맞았다. 1일 <매일노동뉴스>가 강은미 정의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노동부의 건설업 본사(대우건설)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및 활동평가 보고서’와 태영건설·현대건설 감독 결과를 비교해 살펴봤다. 형식적이고 부실한 지금의 안전보건관리체계로는 중대재해를 막기 어려워 보인다.

대우건설 줄어든 안전보건 예산, 더 줄이는 이사회
현대건설 대부분 안전보건 직원 급여로 사용

대우건설은 113개 공사 현장에서 5천450명의 노동자와 1천50개 협력사가 있는 국내 시공능력 평가액 순위 6위의 종합건설사다. 대우건설은 최근 3년간 안전보건 관련 예산으로 33억원을 편성했다. 안전보건 예산은 해마다 줄었다. 2018년 15억원에서 지난해 6억9천만원으로 반토막 났다. 지난해 그마저도 집행된 예산은 5억3천만원에 불과하다.

안전보건 투자가 줄어든 이유는 최고경영자가 안전보다는 ‘재무성과’를 강조했기 때문이다. 노동부는 보고서에서 “재무성과를 우선하는 조직 분위기와 회사의 양적 성장·안정화를 위해 원가·시공·영업에서 이익을 강조하면서 안전보건경영활동이 약화했다”고 봤다. 실제로 대우건설은 연간 안전보건활동에 대한 성과와 효과성을 검토하는 경영자 심사권한을 품질안전실장과 사업본부장의 위임전결 규정으로 뒀다.

이렇게 미흡한 안전보건 투자는 필연적으로 중대재해로 이어진다. 최근 10년 동안 대우건설에서 발생한 산재 사망자는 무려 68명이다. 10대 건설사 평균보다 1.5배나 많다. 대우건설이 안전보건 예산을 줄였던 기간 동안 산재는 급증했다. 2018년 3명이던 산재 사망자는 2019년 7명, 2020년 8명으로 늘었다. 올해도 지난 4월까지 벌써 4명의 노동자가 숨졌다.

노동부의 특별점검 이후 대우건설은 안전혁신위원회를 구성해 안전투자계획을 새로 짰다.

강은미 의원실과 건설기업노조 대우건설지부에 따르면 대우건설 안전혁신위는 안전관리자를 추가배치하고 협력회사에 신호수에게 인건비를 지원하는 등의 사업에 673억7천만원을 편성했다. 그런데 이사회를 거치면서 284억2천만원으로 57.8%가 삭감됐다. 대우건설 매각을 앞두고 대주주인 산업은행 KDB인베스트먼트가 안전보건투자마저 쥐어짜기를 한 것이다.

이런 내용이 공개되자 대우건설은 같은달 23일 부랴부랴 안전보건선포식을 열고 “품질안전실을 안전혁신본부로 격상하고 앞으로 5년간 1천400억원 규모의 안전보건투자를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업 매각을 앞두고 정밀 실사가 진행 중인 상황이어서 향후 투자계획이 제대로 집행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문제는 또 있다. 안전보건 예산이 늘었다고 실제 안전보건 투자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현대건설은 최근 3년간 안전보건 예산으로 67억원을 배정했는데 실제 집행액은 119억원으로 두 배 가까이 많다. 그런데 노동부 특별감독 과정에서 집행된 예산 대부분이 안전보건관리자 급여로 드러났다. 노동부는 “집행예산 대부분을 안전보건관리자 급여가 차지하고 있고 협력업체 지원이나 안전교육을 위한 예산 집행은 미약해 안전관리 수준 향상으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보건 정규직 인력 단 1% 불과
안전보건담당 임원, 퇴직 전 거치는 자리?

대우건설은 CEO 직속 품질안전실이 안전보건의 컨트롤타워를 맡고 있다. 지난 4월 기준 본사 안전전담 직원은 품질안전실 30명과 사업본부 20명이다. 현장까지 포함하면 전체 526명이 안전보건 업무를 전담했다. 인력만 놓고 보면 적지 않은 규모다. 그런데 이 가운데 정규직은 안전직 27.8%, 보건직 1%에 그친다.

노동부는 “현장 보건관리자의 99%가 비정규직으로 구성돼 있고 정규직 전환을 위한 사내 규정도 미비해 안전보건 업무를 하는 비정규 직원들의 열정이나 책임감을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봤다.

대우건설 안전보건 관리를 책임지는 품질안전실장은 지난 10년간 10명이 교체됐는데 모두 비전공자에 안전보건업무 미경험자였다. 재임기간이 평균 1년 그치는 이유가 있었다. 이들 모두 재임 후 2년 안에 퇴직했다. 퇴직 전에 거치는 마지막 임원자리(상무급)로만 인식될 뿐이다. 이런 모습은 태영건설에서도 확인된다. 본사에 안전전담팀이 사업부서에 편제돼 위상이 아주 낮은 데다 안전보건직 정규직 비율도 30.9%(136명 중 42명)에 불과했다.

형식적인 안전보건계획 이사회 보고
전문성 없는 이사회 구성원 검토할 능력은 있나

전부개정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올해 1월1일부터 안전보건 경영방침과 예산·조직·인력을 담은 안전보건계획을 이사회에 보고해 승인받아야 한다. 이 제도만 내실 있게 운영돼도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다.

하지만 우려대로 보고는 형식적이었다. 올해 대우건설은 2018년 안전보건경영방침을 그대로 둔 채 ‘현장 관리자 정규직 50% 확보, 안전보건 예산 42억9천100만원으로 상향’ 같은 형식적인 내용을 담은 안전혁신방안을 이사회 안건으로 제출했다. 이사회는 이런 내용을 그대로 통과시켰다. 이사회 구성원은 대표이사와 전직 경제학과 교수, 전직 한국은행·감사원 공무원, 법률사무소 직원 등 6명이다. 노동부는 보고서에서 “안전보건계획 검토에 대한 이사회 구성원의 전문성에 한계가 있다”고 문제점을 분석했다.

부실한 안전보건관리체계는 위험의 외주화로 이어진다. 대우건설 등록 협력업체는 1천50곳이다. 현대건설이 441곳, 삼성물산이 796곳, GS건설이 862곳으로 평균 700곳인 점을 감안하면 66.1%가 더 많다. 협렵업체는 최저가 입찰제도를 거쳐 용역계약을 맺는다. 저가경쟁 탓에 협력업체의 안전보건 기술력이나 안정성, 실행예산을 평가하는 과정은 생략된다. 다만 대우건설은 협력업체의 위험성평가 등을 심사해 안전 분야 우수업체로 선정하고 입찰시 가점을 부여한다. 하지만 우수업체가 1년에 고작 7곳에 불과해 실질적인 유인효과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원청 사업주에게 도급·용역·위탁시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부여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은 하청업체를 선정할 때부터 산재예방 능력을 보도록 요구한다. 만약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하청노동자가 사망한다면 대우건설은 그 책임을 면하기 어려운 구조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앞으로 안전관리 우수협력사에 계약우선권을 부여하고 공사이행 보증금을 감면해 주는 등 업계 최고 수준의 안전 인센티브를 부여하도록 입찰제도를 바꿀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노동부는 대우건설과 마찬가지로 최저가 낙찰제를 운영하는 현대건설에 “입찰 선정시 안전역량을 평가하고 적정단가를 보장하는 등 특단의 조치를 강구할 것”을 요구했다.

안전보건 관리 강화하랬더니 CCTV만 늘어
건설노조 “통제와 퇴출만 강화하는 보여주기식”

그렇다면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고강도로 진행된 건설업 산업안전보건 특별감독 이후 현장은 달라지고 있을까?

아직은 피부로 느껴지는 변화는 없어 보인다. 전재희 건설노조 교선실장은 “최근 공사장에 설치하는 CCTV만 수십배 늘었다”며 “안전보건 관리 강화가 아니라 현장 노동자에 대한 통제와 감시만 강화됐다”고 비판했다.

강은미 의원은 “서류상으로만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한다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하도급업체에 적정단가를 보장하고 인력과 공기에 대한 원청의 종합적 책임이 뒤따를 때 중대재해를 예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강 의원은 “노동자를 안전 주체로 생각해야 현장이 안전해진다”며 “기업들이 예전처럼 노동부 점검에만 급급하게 대응해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을 피해 갈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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