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남욱 공인노무사(노노모 회원)

부산광역시에는 지역의 한 공단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단체가 있다. 그리고 이 단체는 지난해 10월부터 약 2개월 동안 공단 내 도금사업장의 노동환경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큰 도움이 되지는 못했지만 나도 조사에 함께했다. 설문지는 공단 내 이주노동자가 많다는 점을 고려해 한국어 포함 총 12개의 언어로 작성했고, 설문조사는 점심시간에 공단 내 공동식당을 이용하는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38개 사업장 93명의 노동자가 설문에 참여했다. 설문조사 이후에는 도금사업장에서 근무하다 퇴직한 노동자를 포함해 총 6명의 노동자와 심층면담을 진행하기도 했다.

결과는 참혹했다. 크롬·니켈·염산·황산 등 인체에 유해한 금속·화학 물질을 직접 취급하지만 정작 자신이 취급하는 물질의 종류가 무엇인지 모른다고 답변한 노동자는 전체의 30%에 이르렀다. 화학물질에 노출되거나 폭발이 발생할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는 답변이 약 25%나 됐다. 그도 그럴 것이 화학물질 등의 위험성에 대해 교육을 받았다고 답변한 노동자는 약 65%, 작업환경측정 후 그 결과에 대한 설명을 들은 적이 있다고 답변한 노동자는 약 55%에 그쳤다. 분기별 6시간의 산업안전보건교육을 받았다고 답변한 노동자조차 약 55%에 불과했다. 또 설문에 참여한 노동자의 61% 이상이 타국 출신의 이주노동자인 반면, 사업장 내 안전보건에 관한 표지가 각국의 언어로 번역돼 있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노동자들의 위험은 자신이 취급하는 물질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설문에 응한 노동자 중 약 67%는 공정별 칸막이가 설치돼 있지 않아 유해물질을 직접 취급하지 않아도 냄새나 연기 등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정작 이들에게 지급되는 보호구는 연기 같은 유해물질을 차단하는 기능이 없는 방진마스크 등이었고, 방독마스크를 지급한다는 답변은 약 28% 수준에 그쳤다. 사업장 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유해물질에 그대로 노출돼 있었던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자신이 사용하는 보호구가 유해요인을 차단하기에 적절한 것으로 알고 있는 노동자가 60% 이상이었다는 점이었다. 노동자들은 이미 ‘피로·현기증·두통·기억력 저하’ ‘피부 붉어짐·피부 반점·발진·가려움’ ‘기침 등 호흡기계 불편함’ ‘시력 저하 및 결막염’ ‘비염 등’ ‘가슴 답답함, 흉부 압박감 등’ ‘메슥거림 및 구토 등’의 증상을 호소하고 있었다.

이 같은 결과를 보고 도금사업장의 노동환경이 열악한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했다. 사업장의 노동안전보건 체계와 재해발생률과의 관련성에 대한 연구자료를 찾아봤다. 그리고 한 연구 결과를 통해 안전관리자를 자체적으로 선임해 그 업무를 전담하도록 하는 사업장의 재해발생률이, 대행기관에 안전관리업무를 위탁하는 사업장과 안전관리자를 자체적으로 선임하고 있지만 다른 업무와 겸직하도록 하는 사업장보다 낮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또한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운영하면서 노동자들에게 안전교육을 적극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사업장의 재해발생률이 그렇지 않은 사업장의 재해발생률 보다 의미 있게 낮다는 점도 확인했다. 결과적으로 연구진은 재해발생률을 낮추려면 안전·보건관리자를 자체적으로 선임해서 그 업무를 전담하게 하고 산업안전보건위원회가 활발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으로는 안타깝게도 이 연구 결과를 도금사업장과 같은 작은 사업장의 현실에 반영하기 어려울 듯했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은 상시 노동자 50명 미만의 작은 사업장에 관리·감독자 선임 외에는 안전관리자·보건관리자 선임을 의무로 규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20명 이상 제조업이나 하수·폐수 및 분뇨 처리업 등에 안전보건관리담당자를 한 명 이상 선임하도록 규정하고는 있으나, 이마저도 관리·감독자와 겸직이 가능해 사실상 안전보건관리담당자를 추가로 한 명 더 두는 것의 실효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또한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에서 50명 미만 사업장은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설치가 의무사항이 아니다. 30인 이상 사업장에서는 노사협의회가 산업안전보건위원회의 역할을 담당하도록 규정하고는 있다. 하지만 노사협의회는 그 특성상 노동안전보건 문제를 주요 안건으로 취급하기 어렵고, 안건으로 상정한다 해도 형식적으로 다루기 쉽다.

이 같은 문제들이 빚어낸 당연한 결과인지 모르겠으나, 중대재해 발생 사업장 중 상시 노동자 50명 미만의 작은 사업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80%가 넘는다. 뿐만 아니라 동종업의 평균 사망만인율을 웃도는 사업장 중에서도 50명 미만의 작은 사업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80% 이상이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에서 일하다 죽고 다치는 노동자 대부분은 상시 노동자 50명 미만의 작은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법은 이들의 안전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법이 작은 사업장까지 구속력을 미칠 수 없는 이유는 당연히 작은 사업장의 인적·물적 구성이 열악하기 때문일 것이다. 쉽게 말해 작은 사업장은 안전 관리업무를 전담할 인력도 없고 그런 인력을 배치할 금전적인 여유도, 시간도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작은 사업장 노동자의 생명과 비교적 큰 사업장 노동자의 생명의 가치는 다르지 않다. 나는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업주로부터 안전을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고 배웠다. 그런데 현재의 법은 작은 사업장에서 일한다는 이유만으로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외면하고, 오히려 생명보다 이윤과 효율을 더 중요하게 고려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부디 작은 사업장에도 안전보건관리 체계가 제대로 확립돼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권리가 보장되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