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공운수노조 병영생활전문상담관지부는 18일 오전 국가인권위원회에 다른 계약직 노동자와 달리 상담관의 무기계약직 전환 기간이 5년인 것은 합리적 이유가 없는 차별에 해당한다며 진정서를 제출했다. <공공운수노조>

2015년 7월부터 6년간 육군에서 병영생활전문상담관으로 일하던 A씨는 지난해 7월 5년 만에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다. 그런데 무기계약직 생활은 오래 가지 못했다. 갑자기 올해 5월 부대 지휘관에게서 근로계약 해지통보서를 받았고 6월 말에는 일을 그만둬야 했다. 계약해지 사유는 “지난해 근무성적평가 결과 D등급(미흡)을 3회 이상 받았고, 장병 상담 후 지휘관과 참모에게 상담 결과 공유가 미흡했다는 것”이었다. A씨는 “해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며 “자살상황이나 위기상황이 아닌데도 지휘관이 (병사 상담 결과에 대한 공유를) 과도하게 요구했는데, 내담자를 보호할 의무가 있어 상담자로서 소신을 갖고 말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비단 A씨만의 일은 아니 듯하다. 18일 오전 국방부 병영생활전문상담관들이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를 찾았다. 국방부가 상담관을 △예외적으로 5년간 기간제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무기계약직을 업무평가로 계약해지하고 △연간 4회 이상 업무평가로 계약연장 여부를 심사한 것은 차별적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상담관들의 위기의식이 그만큼 높다는 방증이다.

연천 총기난사 사고로 시행
상담관 365일 24시간 심리상담

병영생활전문상담관 제도(도입 당시는 장병기본권 전문상담관)는 2005년 도입됐다. 국방부는 2007년부터 연대급 부대에 도입하려던 제도를 2005년 경기도 연천 GP에서 총기난사 사고가 나자 서둘러 시행했다. 전문상담관은 중장급(육군·공군) 혹은 소장급(해군·해병대) 이상의 장교가 지휘하는 부대에 의무적으로 배치된다. 상담관은 일반 부대나 365일·24시간 전화 상담이 가능한 국방 헬프콜(1303)에서 병사를 대상으로 심리검사를 시행하고, 자살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심리상담을 한다.

전문상담관이 되려면 심리상담·사회복지 분야 자격증과 학력·실무 경력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도입 당시 8명이던 상담관은 현재 630여명으로 늘었다. 국방부도 전문상담관 제도의 효과와 필요성을 느껴 채용 규모를 지속적으로 확대하는 추세다.

이처럼 제도가 안정기에 접어들었지만 상담관은 고용이 몹시 불안하다. 이들은 ‘병영생활전문상담관 운영에 관한 훈령’에 따라 초기 2년간은 기간제로 채용되고, 이후에는 5년까지 1년마다 계약을 연장한다. 2년이 지나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도록 한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의 적용도 받지 못한다. 5년 뒤에는 무기계약직(공무직)으로 전환되지만 매년 4~7회 정도 시행하는 근무성적·교육 평가에서 2년 이내 최하위 단계를 2회 이상 받응면 계약해지가 가능하다.

무기계약직 돼도 연 7회 평가로 해고 가능

업무평가 횟수도 다른 정부기관 공무직에 비해 많다. 전문상담관은 분기별로 근무성적을 평가받는다. 상담사례·이론·실기도 평가해 연 7회 이상 평가를 받는다고 한다. 공공운수노조 병영생활전문상담관지부(지부장 남은아)는 “여성가족부·보건복지부·기획재정부·고용노동부·법무부·행정안정부 공무직 훈령을 검토한 결과 다른 정부기관 공무직은 연 2차례 직무평가를 한다”며 “이렇게 자주 평가를 받는 정부기관 공무직은 전문상담관이 유일하다”고 설명했다. 수차례 반복되는 업무평가는 전문성에는 도움이 되지 않고 고용만 불안하게 한다는 하소연이 뒤따랐다.

업무평가 구조에 대한 지적도 제기됐다. 군 지휘관이 이들의 근무실적·태도를 평가하는데, 전문상담관으로서 독립적인 신분을 보장받기 어렵다. 사실상 지휘관에 종속된 처지라는 것이다. 전문상담관은 자해·탈영·상습구타 등의 사고나 기본권 침해 사례를 인지할 경우 대대장에게 보고해야 하지만, 원칙적으로는 내담자의 비밀을 보장해야 한다. 전문상담관들은 종종 지휘관에게 상담자의 상담내용을 공개하라는 요구를 받는다고 전했다.

남은아 지부장은 “군의 부조리나 악습을 예의주시하고 조언해야 할 전문상담관이 전문가답게 상담활동이나 지원을 하지 못하고 군과 지휘관의 눈치를 봐야 한다”며 “심리적 위축과 고용불안에 떨어야 하는 상황은 상당히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문상담관을 기간제법의 예외로 둘 만한 업무적 필요성이나 이유를 찾아볼 수 없다”며 “다른 일반 계약직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채용 2년 뒤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는 제도개선과 훈령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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