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연민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대상판결: 서울행정법원 2021. 7. 16. 선고 2019구합84796 판결

 

1. 사안의 개요

 

가. 2016년 5월부터 발병일까지의 노사관계

이 사건의 피재자(이하 ‘망인’)는 2001년 주식회사 코엑스(이하 ‘코엑스’)에 입사해 전시장 임대 및 관리 업무를 수행하다가, 2014년부터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코엑스노동조합(이하 ‘노동조합’)의 위원장으로 선출돼 노동조합의 유일한 근로시간면제자로서 발병일까지 업무를 수행했다.

2016년 5월, 코엑스는 사업구조를 개편하고 인력을 구조조정할 계획임을 밝혔고, 장기근속한 근로자들에게 명예퇴직을 독려하는 내용을 공지했다. 노동조합은 ‘구조조정 철회 및 경영진 사퇴 촉구’ 투쟁을 결의했다. 같은해 10월부터는 임금 및 단체교섭이 개시됐으나 별다른 진전이 이뤄지지 않았고, 노동조합 사무실 축소·이전 및 조합원 후생복지지원금 지급 중단 같은 현안을 둘러싼 갈등이 추가됐다.

2016년 12월 코엑스는 근로자 12명을 관계사로 전적시켰고, 3명은 대기발령 처분했다. 11명은 명예퇴직했다.

2017년 2월, 한 본부장이 전 직원에게 ‘노동조합이 소모적인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는 취지의 이메일을 발송했고, 이어 팀장 14명이 전 직원에게 ‘망인이 독단적 판단으로 노조를 사유화하고 있다’ ‘불순한 선전전을 전개하고 있다’는 취지의 이메일을 보냈다. 위 14명은 이후에도 망인이 노사관계를 파국으로 치닫게 만들었다는 취지의 이메일을 발송했다.

위 본부장 및 팀장들은 근로자들을 면담하면서 회람 예정인 망인에 대한 탄핵 연판장에 참여하라고 설득했다. 망인은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에 부당노동행위 진정을 제기했고, 연판장이 회람되는 일 자체는 발생하지 않았다.

나. 사망 경위

망인은 2017년 3월18일 오전 동호회에서 축구를 하던 중 흉통을 느끼고 구급차로 병원에 이송됐으나 같은달 21일 만 4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인은 심근경색(이하 ‘이 사건 상병’)으로 진단됐다.

망인은 2007년 비후성 심근병증(심장비대)을 진단받고 실신 및 허탈로 외래진료를 받았다. 2015년까지 실시한 건강검진에서도 관련 진단을 받았다. 무리한 운동을 삼가고 지속적인 진료가 필요하다는 소견이 있었다. 망인은 대학교·회사·교회 모임을 통해 20여 년간 꾸준히 축구를 해 왔고, 흡연은 하지 않았다.

근로복지공단은 유족의 유족급여 및 장의비지급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2. 대상판결의 요지

가. 업무시간

망인은 근로시간면제자로서 별도의 근태관리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관련 기록이 남아있지 않았는데, 근로복지공단은 망인의 업무시간을 기계적으로 최소에 가까운 수치로 작성했다. 이에 원고는 본인, 동료 근로자들 및 노동조합 채용 상근자의 진술·증언을 바탕으로 망인의 업무시간이 만성과로 기준을 충족함을 주장했다. 법원은 망인의 업무시간을 구체적으로 산정하기 어려움을 인정하면서도, 노동조합 채용 상근자 증언의 신빙성을 인정해 망인의 업무시간이 적어도 공단이 주장하는 것처럼 짧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나. 업무상 스트레스

법원은 위 1. 가.의 사실관계를 인정한 것에 더해, 아래 사정들에 비춰 발병 당시 망인의 업무상 스트레스는 사회통념상 극심한 수준에 이르렀을 것으로 봤다.

△코엑스 노사관계는 2016년 6월 이전까지는 원만하고 상호협조적이었다가 구조조정 이후 악화했고, 망인도 이에 익숙하지 않았던 점 △망인은 구조조정을 밀어붙이는 코엑스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는데 조합원들의 참여가 적어 고심한 점 △망인은 구조조정을 저지하지 못해 괴로운 심정이고 자신의 무능이 아쉬움을 밝힌 점 △망인이 수행한 업무는 노사의 첨예한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하는 것으로서 정신적 긴장을 요한 점 △팀장들이 망인을 비난하는 성명서를 발표한 이후 망인은 잠을 자지 못하고 괴로움을 토로한 점 △상병 발병 1주일 전에는 망인을 탄핵하는 연판장이 회람될 예정이었던 점 △상병 발병 4일 전에는 노동조합 동료들이 망인의 입장에 반대하는 의견을 밝힌 점 △심근경색을 유발하는 스트레스 요인에 사회적 지지의 부재, 고립감, 직무 스트레스를 포함한 만성 스트레스 등이 포함되는 점 △망인이 기존 질환에 대해 평소 추적관찰 및 관리를 했더라도 위와 같은 상황에서 발병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점.

3. 대상판결의 의의

가. 노동조합 위원장 업무의 성격

망인은 2014년부터 노동조합 위원장으로 일했고, 유일한 근로시간면제자였다. 노동조합 위원장 업무의 성격을 어떻게 이해하고 업무상 질병 판단에 반영할 것인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 시행령 별표 3 및 고용노동부 고시는 뇌·심혈관 질병에 대한 구체적인 인정 기준을 정하고 있다. 후자는 이를 급성과로·단기과로·만성과로 등으로 유형화하고 있다. 한편 위 고시에 기재된 업무부담 가중요인 중에는 “정신적 긴장이 큰 업무”가 존재하는데, 노동부는 2018년 7월 “노조전임활동 중 발생한 재해의 산재인정기준”에서 “단체교섭·임금협상 등 정신적·신체적 부담이 큰 전임활동 중 (중략) 발생한 질병에 대해서도 사고와 마찬가지로 업무상 재해로 인정”한다고 해, ‘일반적으로’ 교섭 업무가 정신적 부담이 큰 업무에 해당한다고 해석하고 있었다. 이에 비춰 보면 도무지 ‘일반적’이라고 하기 어려운 비상한 배경하에서 업무를 수행한 망인의 정신적·신체적 부담은 한결 컸다고밖에 할 수 없다.

또한 노동조합 간부의 질병을 업무상 재해로 본 판결도 찾아볼 수 있다.1) 이처럼 통상의 근로자가 아닌 노동조합 위원장이라고 해 업무관련성 판단이 곤란할 이유가 없는데도, 근로복지공단은 근로시간이 기록되지 않았다는 점에만 치중해 업무관련성 판단을 크게 그르쳤다.

나. 업무시간에 대한 판단

뇌·심혈관 질병에 있어서 근로복지공단은 마치 절대적인 알고리즘에 의하는 것처럼 ‘업무시간이 몇 시간이었는가’에 집중한다. 그런데 업무시간은 뇌·심혈관 질병의 업무관련성 판단을 좌우하는 유일무이한 기준이 결코 아니고 여러 가지 고려 요소들 중 하나일 뿐이다. 공단의 태도로 인해 현장에서도 ‘근로시간 기준이 충족되지 않아서 산재 인정이 어렵다’는 인식이 만연해 있지만, 실은 공단의 실무 운영이 크게 잘못된 것이다.

산재보험법 시행령 별표 3은 급성과로·단기과로·만성과로의 각 인정기준을 설명하면서 업무시간 외에도 긴장·흥분·공포·놀람·업무환경·양·강도·책임 등 다양한 요소들을 병렬적으로 나열하고 있다. 업무시간의 가치는 위 다른 요소들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것이다. 노동부 고시도 마찬가지로 업무시간 외에도 양·강도·책임·근무형태·정신적 긴장·수면시간·작업환경·연령·성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라고 명시하고 있다. 다만 발병 전 12주 동안의 업무시간이 평균 60시간 또는 52시간을 초과하는지를 “고려”하라는 것일 뿐이다. 더욱이 고시에 따르면 업무시간 외에도 업무부담 가중요인이 존재하는 경우에는 업무관련성이 강해지며, 업무시간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아울러 최근 대법원은 급성 심근염으로 사망한 조선소 근로자에 대해 업무상 질병을 인정하는 취지로 파기환송 판결하면서,2) “업무시간은 업무상 과로 여부를 판단하는 데에서 하나의 고려요소일 뿐 절대적인 판단기준은 될 수 없다”고 명확히 판시했다. 나아가 산재보험법 시행령 별표 3은 업무상 질병에 해당하는 경우를 “예시적으로 규정한 것”에 불과하고, 그 위임에 따른 노동부 고시 또한 대외적으로 국민과 법원을 구속하지 않는 행정규칙일 뿐임을 강조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법원은 업무시간이 고시의 기준에 미달한다거나 정확한 산정이 어렵다 하더라도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판결해 왔다. 관련 규정만으로도 업무시간은 절대적인 기준이 아닌 것으로 충분히 해석되기 때문이다. 망인과 마찬가지로 근태관리를 받지 않은 근로자의 뇌교출혈을 업무상 질병으로 본 판결,3) 업무시간이 고시의 기준보다 미달했으나 스트레스가 기존 질환을 자연적인 진행 속도 이상으로 악화시켰다고 봐 허혈성 심장질환으로 사망한 근로자에 대해 업무상 질병을 인정한 판결4) 등이 그것이다.

다. 기존 질환에 대한 판단

피재자의 기존 질환 또한 업무시간과 마찬가지로 공단이 신청을 기각할 때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하는 지점 중 하나다. 그런데 판례는 아래와 같이 다르게 판시해 왔다.

업무과 직접 관련이 없는 질병이라도 그것이 업무와 관련된 사고 등으로 더욱 악화되거나 그로 인해 비로소 발현된 것이라면 상당인과관계가 존재하며, 그 경우에는 그 발병 및 사망 장소가 사업장 밖이었고 업무수행 중에 발병·사망한 것이 아니더라도 업무상 재해로 봐야 한다.5) 또한, 적어도 업무상 과로 등이 질병의 주된 발병 원인과 겹쳐서 질병을 유발 또는 악화시킨 경우나, 평소에 정상적인 근무가 가능한 기초 질병이나 기존 질병이 업무 과중 등의 원인으로 자연적인 진행속도 이상으로 급격하게 악화된 경우에도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6) 아울러 상당인과관계 유무는 보통 평균인이 아니라 당해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7) 즉 기초 질환이나 기존 질병이 있는 근로자의 경우에는 건강한 일반 근로자에 비해 과로 및 스트레스의 기준이 (엄격하게가 아니라) 완화돼 해석된다.8)

산재보험법상 법률관계는 민사상의 과실책임의 원칙이나 과실상계가 적용되는 민사법의 영역이 아니다.9) 손해배상 사건에서처럼, 근로자가 기존 질환을 그것을 얼마나 잘 관리했는지를 세세하게 따져 과실 비율을 책정하는 국면이 아닌 것이다. 그렇기에 법원도 위와 같은 법리들을 제시해 왔고, 노동부도 고시를 개정하면서 피재자의 기존 질환을 업무관련성 판단의 고려사항으로 삼지 않도록 했다. 그러나 공단은 여전히 다르게 보고 있는 듯하다.

망인은 기존 질환이 있었으나 2009년 이후 이로 인한 불편함 없이 생활했고, 꾸준하게 운동도 해 왔다. 그러다가 갑자기 상태가 악화돼 사망에 이른 것이다. 여기에 영향을 미쳤을 변수는 2016년 6월 이후 전개된 업무상의 사유라고 보는 것이 경험칙과 논리칙에 부합한다.

라. 나가며

대상판결이 원고의 청구를 인용함에 있어 새롭고 획기적인 법리를 제시한 것은 아니다. 상당인과관계 판단에 관한 기존의 법리를 정확하게 적용했을 뿐이다. 기실 이는 소송에 이르기 전에 공단이 당연히 수행했어야 할 역할이지만, 망인의 사망으로부터 약 만 4년이 꼬박 경과한 시점에야 법원에 의해 이뤄진 것이다. 현재 이 사건은 공단의 항소 제기로 소송이 계속되고 있다. 법원이 당연한 해석과 오래된 법리를 적용한 것만으로도 그 판결의 의의를 논할 수 있다면, 그것은 그만큼 근로복지공단의 처분이 그에 부합하지 않는 경향성을 재생산해 오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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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울고등법원 2015. 7. 25. 선고 2013누32610 판결, 서울행정법원 2017. 9. 6. 선고 2016구단60907 판결 등

2) 대법원 2020. 12. 24. 선고 2020두39297 판결

3) 서울행정법원 2020. 10. 28. 선고 2019구단66203 판결

4) 서울고등법원 2018. 7. 25. 선고 2017누88017 판결

5) 대법원 1991. 10. 22. 선고 91누4751 판결 등

6) 대법원 2018. 6. 19. 선고 2017두35097 판결 등

7) 대법원 2012. 4. 13. 선고 2011두30014 판결 등

8) 사법연수원, “노동특수이론 및 업무상재해관련소송”, 2016, 253면

9) 대법원 2010. 8. 19. 선고 2010두5141 판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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