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탁 노회찬재단 사무총장

작년 이맘때쯤까지만 하더라도 전 세계에 닥친 코로나19 전염병이 인류에게 던진 숙제가 무엇인지 찾아보기 위한 시도가 많았다. 환경 위기에 대한 전 세계적인 관심과 행동이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돼야 한다는 이야기, 인류에게 닥친 재앙에 가장 위험하게 노출된 이들에게 먼저 관심을 보일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 등 다양한 논의들이 있었다. 그리고 코로나를 경험한 이후의 사회는 어떤 모습으로 변화돼야 할지를 주제로 한 토론회도 많이 열렸다.

하지만 백신 접종을 시작한 이후에도 오히려 더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사람들의 관심은 그러한 문제의식에서 많이 멀어져 있다. 코로나가 던진 숙제와 같은 건 사치스러운 이야기이고, 끝을 알 수 없는 이 상황이 언제쯤 종식될 것인가에 대해 모든 관심이 쏠려 있다. 세계적 위기를 두고 연대는커녕 위기 발생에 대한 책임 전가, 부자 국가들이 독점하는 불평등한 백신 공급 등 추악한 정치는 계속되고 있다.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더욱 훌륭한 시스템이 작동할 수 있었을 터인데도, 현실에서 작동하는 건 내 것부터 먼저 챙기고 보자는 기존의 시스템이었다.

우리 안에서도 코로나19로 사회적 연대에 대해 관심이 증가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많이 지쳤는지, 사회 연대에 대한 공론장은 축소되고 국가의 역할에 모든 관심이 쏠려 있다. 그중에서도 재난지원금을 선별 지원할 것인지 보편 지원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에 모든 공력을 쏟고 있다. 특히 대선을 앞두고 정부의 역할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면서 사회 시스템에 관한 관심은 더욱 멀어지는 것은 아닐지 우려된다.

노동운동 내에서 사회 연대에 대한 관심은 꽤 오래됐다. 산별노조의 건설은 그 자체로 계급적 연대의 실현을 위한 것이지만, 그 외에도 다양한 방안의 사회 연대 방안들을 제출했다. 그중에서 건강보험 통합과 같은 큰 성과를 낸 것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제안에만 그치고 실현되지 못했다. 심각한 상태에 이른 노동자 간의 격차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2004년도에 제출된 노동연대기금도 그중 하나다. 하지만 이 제안은 그 논의 시작에서부터 연대기금 논의는 자본가가 아니라 정규직 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라거나 문제의 근본적 해결이 아닌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는 비판에 부닥쳤다. 그 분위기는 현재까지도 이어져 사회 연대라는 말만 나와도 바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많다.

그러는 가운데 사회 연대는 사회의 실질적 변화를 이뤄내기 위한 전략이 되지 못한 채, 일부에서 하는 사회공헌사업 정도로 그 의미가 축소돼 있다. 총체적인 논의가 사라지고 국지적인 실천만 있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사회공헌 역시 연대의 한 방식이긴 하지만, 이제 연대성을 제도의 수준으로까지 확장하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해야 할 시기이다. 총연맹 차원에서 제안이 시작된 지 벌써 15년도 더 됐고, 비록 그 시도가 무산됐긴 하지만 그냥 서류 창고 속에 보관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국회에 사회연대기금법안이 제출된 상태이지만 제안 당시에만 반짝 언론의 관심을 받았을 뿐이다. 사회연대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법안이 이토록 당사자들에게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건 참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그런 탓인지 유력 대선 후보 중에서 사회 연대를 적극적으로 내 건 이들이 없다. 아니 오히려 요란하게 변죽을 울리더니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는 모습이다.

몇 년 전부터 캐나다 퀘벡주의 노동조합의 노동연대기금 사례가 자주 소개되고 있다. 80년대 고용 위기 상황에서 노동운동 내부에서 찬반 논의 끝에 시행된 이 제도는 현재 성공적이고 모범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이 기금은 좋은 일자리의 창출, 사회적 책임 투자, 조합원의 노후 소득의 안정 등 다양한 장점이 있다. 금융의 민주화를 통해 사회적 변화를 이뤄내고 있다는 점은 특히 유념해서 봐야 할 부분이다. 적어도 우리에게 체계적인 논의를 위한 사례는 가지고 있는 셈이다. 스웨덴 임노동자기금의 실패한 사례로부터 얻는 교훈보다 캐나다의 성공한 노동연대기금 사례를 통해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본다. 이 과정에서 노동운동이 사회의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가장 강력한 주체임을 증명해 보였으면 한다.

노회찬재단 사무총장 (htkim8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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