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안전문업체 큐브피아에서 3천여만원의 임금체불 피해를 본 전 직원 A(33)씨가 지난달 31일 <매일노동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홍준표 기자>

“가스라이팅을 당한 것 같았다. 직원들을 정신적으로 지배한 대표를 빨리 임금체불로 고소했다면 피해 직원들이 더 늘지 않았을 것 같다. 적극적으로 이 사실을 여러 군데 알리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보안전문업체 큐브피아의 전 직원 A(33)씨는 지난달 31일 경기도 성남시 한 카페에서 이뤄진 <매일노동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재직 시절 상습적으로 임금을 체불한 권석철(51) 대표를 늦게 고소한 본인을 탓했다. 그는 2017년 3월 퇴사할 때까지 13개월치 월급 총 2천686만원을 받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됐다. 현재는 쇼핑몰 전자상거래 회사에서 웹 개발자로 일하고 있다.

근로계약서 미작성에 직장내 괴롭힘

A씨는 2012년 7월 큐브피아에 입사했다. 다니던 회사가 도산 위기에 처해 이직할 직장을 알아보던 중 대학교 시절 동아리 선배의 추천으로 면접을 봤다. 선배가 다니고 있어 종종 찾아갔던 터라 회사 인상이 좋았다. 무엇보다 권 대표의 경력에 귀가 솔깃했다.

권 대표는 1998년 보안 소프트웨어 제작 회사인 ‘하우리’ 창립자로, ‘바이로봇’이라는 백신 프로그램을 개발해 유명해진 인물이다. 이후 권 대표는 회삿돈 89억여원을 횡령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아 수감생활을 한 뒤 큐브피아를 설립했다. 큐브피아를 만든 뒤에도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보안전문가로서 입지를 다졌다.

A씨는 이러한 권 대표의 경력에 믿음이 갔고 큐브피아 입사에 마음을 굳혔다. 그런데 막상 입사하고 보니 이상한 점이 많았다. 회사에서 근로계약서를 바로 교부하지 않았고, 다른 직원들도 근로계약서를 쓴 적이 없다고 했다. 추천해 준 선배는 대표 대신 돈을 구하러 다니는 것 같았다. 주거지의 공과금을 내지 못해 전기와 수도가 끊긴 직원들도 있었다.

그런데도 A씨는 묵묵히 일했다. 공공기관에 납품하는 모니터링 제품의 개발을 도맡아 밤 10시까지 근무하는 경우도 잦았고, 휴일에도 출근하기 일쑤였다. 입사 동기가 대리로 승진하는 동안 진급이 세 번 누락됐다.

직장내 괴롭힘도 경험했다. 팀장은 그가 마감 기한을 제때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를 들어 “다른 회사 다니면서 그런 식으로 일하면 욕 바가지로 먹는다”고 질책했다. A씨의 아픈 허리를 트집 잡으며 퇴사까지 거론했다.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던 A씨는 2014년 9월께 뇌종양이 발병해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질병과 업무와의 상관관계를 입증할 방법이 없었고, 권 대표가 수술비와 입원비 약 400만원을 지원해줬기에 산재신청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임금체불하고도 직원 탓에 협박,
가스라이팅 당한 것 같아”

결국 입사 초기 느꼈던 불안감은 적중했다. 권 대표는 2015년 9월부터 경영난을 이유로 월급을 제때 주지 않았다. 2017년 3월까지 19개월 동안 2015년 두 차례, 2016년 네 차례의 월급만 받고 나머지 13개월분 월급 총 2천686만원은 받지 못했다.

2015년 임금마저 퇴사한 이후에서야 지급됐다. 퇴직금 970만원도 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A씨는 권 대표가 경제 사정이 어렵다며 호소하자 대출받아 빌려준 1천만원도 돌려받지 못했다. 임금체불로 생계가 어려워진 그는 카드 돌려막기를 하다가 신용불량자가 됐다.

다른 직원들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상습적인 임금체불로 2019년 9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10명의 직원이 퇴사했고, 2015년에도 15명이 무더기로 회사를 그만뒀다. 게다가 큐브피아는 당시 병역특례 업체로 지정돼 군 대체복무 청년들의 피해가 컸다.

임금체불을 못 견딘 A씨는 결국 퇴사했고 2019년 10월 고용노동부 강남지청에 권 대표를 고소했다. 권 대표를 상대로 임금청구 소송도 제기했다. 권 대표는 기소됐다. 민사소송은 지난해 11월 선고 기일이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법원이 조정 회부를 결정한 상태다.

A씨는 권 대표가 반성의 기미가 없어 소송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는 “적어도 직원들에게 미안한 감정이라도 있을 줄 알았다”며 “그런데 권 대표는 ‘너희들도 똑바로 일을 안하지 않았느냐’며 임금체불을 직원 탓으로 돌렸다”고 비판했다.

이후 권 대표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 협박과 회유를 하기도 했다고 A씨는 전했다. 당시 권 대표가 싱가포르에 설립한 암호화폐 회사 ‘푸카오글로벌’의 투자자 SNS 단체방에서 A씨가 임금체불 문제를 제기하자 권 대표가 “용서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협박했다는 것이다. 권 대표는 암호화폐 투자를 빌미로 채권자에게 돈을 빌렸다가 상환하지 않고 있다는 의혹도 받는다.

권 대표의 형사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기도 한 A씨는 권 대표가 제대로 처벌을 받기를 바란다. 그는 “IT 개발자들은 어릴 때부터 컴퓨터만 하다 보니 사회성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사장이 이러한 성향을 이용해 부당행위를 해도 제대로 항의도 하지 못하고 가스라이팅을 당한다”며 “법은 권리 위에서 잠자는 사람을 보호해 주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임금체불 문제가 발생하면 즉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씨는 권 대표가 지난 6월 체불임금의 절반 정도 지급에 합의를 요구하자 거절했다. 재판부에 “권 대표는 강남의 100평 규모 사무실로 확장 이전하는 등 직원들의 피해 회복을 위한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음에도 사세 확장에만 관심이 있었다”며 엄벌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그는 다른 피해 직원 중 7명은 체불액의 50%에 합의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권 대표는 A씨를 포함해 직원 5명에 대한 임금 6천410만원과 직원 3명에 대한 퇴직금 1천800만원을 지급하지 않은 혐의(근로기준법 위반 등)로 재판에 넘겨져 12일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검찰은 권 대표에게 징역 1년6개월을 구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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