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진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손진우연일 폭염이 계속되고 있다. 기후위기가 가져온 폭염이라는 재난은 지금 시기를 겪어 내는 모두를 고통스럽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폭염은 자칫 평등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서, 어떤 노동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폭염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정부는 지난달 25일 폭염에 따른 노동재해를 막기 위한 ‘폭염 대비 노동자 긴급 보호 대책’을 내놓았다. 대책의 핵심은 무더위가 가장 심한 오후 2~5시에 전국의 건설현장에 작업중지를 강력하게 지도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고용노동부는 안전보건공단과 함께 8월 말까지 전국 건설현장 6만여곳에 대한 무더위 시간대 작업중지 실시 여부를 집중 점검할 계획을 밝혔다. 옥외작업의 특성을 가진 건설현장뿐 아니라 고온의 실내 환경에서 작업하는 물류센터·조선소·제철소 등도 점검 대상에 포함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또한 공공부문에서 발주한 건설현장의 경우에는 공사 기간을 연장하겠다는 내용도 담았다.

이러한 정부의 대책으로 노동자들의 현실이 조금 나아질 수 있을까? 선뜻 그렇다고 답변하기 어렵다. 바로 몇 년 전 경험 때문이다.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더운 해라던 2018년, 이미 지금과 같은 무더위 시간대 건설현장 작업중지와 공공부문 공사기한 연장 대책이 시행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정부 대책에도 12명의 노동자가 온열질환으로 사망했다. 사실상 폭염에서 노동자를 지키는 대책으로 기능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이번 정부가 발표한 폭염 대책이 사실상 2018년의 대책과 다를 바 없다는 점에서 환영만 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특히 건설현장의 경우에는 작열하는 태양을 피하도록 하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남아 있다. 바로 임금 문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10월 노동부에 폭염·한파에 따른 건설노동자 안전·건강 증진을 위해 제도를 개선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폭염 상황에서 조기출근이나 유연근무 등 여러 조치를 우선 시행하고, 작업중지로 감소한 임금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권고한 것이다. 노동부는 국가인권위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로 인한 문제가 다양하게 발생하고 있다. 건설노조에서는 폭염과 한파 등 기상이변으로 인해 공사기간이 연장될 경우 임금보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무더위 작업중지라는 폭염 대책이 실효성이 없다고 비판하고 있다. 실제 노동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하는 대책이 가진 한계다. 한 가지 참고할 사례가 있다. 지난 2일 경기도가 지자체로는 가장 앞장서 재난수당 지급계획 대상에 건설노동자를 포함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경기도와 경기도 산하 공공기관에서 발주한 토목·건축 분야 공사에서 코로나19 확산과 폭염·호우 같은 이유로 공사가 중단돼 당초 약속한 시간만큼 근무하지 못하면 해당 일의 잔여시간만큼의 임금을 경기도가 보전하는 방식을 채택한 것이다. 이조차도 건설노동자들의 입장에서는 충분하지는 않겠지만 더욱 확산되고, 민간과 전국 지자체로 확대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물, 그늘, 휴식’이라는 열사병 3대 예방수칙이 다양한 일터에서 구체화된 모습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그늘’은 물리적 의미가 아니라 폭염을 피해 충분히 쉴 수 있는 냉방설비가 마련된 ‘휴게공간’을 의미하는 것임에도, ‘옥외가 아니면 괜찮다’는 신호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옥내 작업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폭염에 쓰러져 탈진하는 경우들이 왕왕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있다. ‘휴식’ 또한 마찬가지다. 특정한 기준에서 얼마를 쉴 수 있도록 보장하는 기준이나, 작업량을 조정하도록 강제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휴식’은 사업주의 선한 의지를 기대하는 것이 돼 버린다. 단적으로 180~200도 고온의 기름으로 튀김과 볶음 등의 요리를 하고 나면 어지러움과 구토증세를 느낀다는 급식실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물, 그늘, 휴식’에 대한 강조가 아니라, 고온에 가열하는 조리방식을 바꿀 수 있도록 메뉴를 개선하는 것이 진짜 대책이 될 수 있는 것처럼 구체화된 방안 제시 등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기후위기로 인한 기상이변이 상수가 돼 버린 상황에서 폭염은 이제 기본적인 노동조건과 노동환경에 대한 기준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의 문제로 접근해 가야 한다. 모든 작업장의 세부적인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대책이 대책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노동이 이뤄지는 현실과 그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것이 우선이 돼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책 마련 논의에 더욱 속도가 붙어야 한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업주가 쾌적한 작업환경을 조성해 일하는 사람의 건강을 유지·증진하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폭염 문제에 있어서는 구체적인 기준과 조치, 강제력을 가진 조항들은 아직 미비하다. 법의 한계를 핑계로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문제다. 기본적인 노동환경과 노동조건의 문제로 접근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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