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고은 기자

경기도 의왕시에서 10년째 전업으로 대리운전을 하는 김경진(53·가명)씨는 지난달 소득이 6월에 비해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수도권에서 지난달 12일부터 사회적 거리 두기 4단계가 시행되며 콜(호출) 횟수가 급감한 탓이다. 거리 두기 시행 첫날에는 콜수가 1건에 불과했고, 아예 콜이 없던 날도 두어 번 있었다. 지난달 수입 130만원에서 보험비(15만원)·프로그램 사용료(1개당 1만5천원)·교통비·통신비 등을 제하고 손에 쥔 금액은 90만원이었다. 6월 순수입 150만원에 비해 60% 수준이다. 김씨는 건설현장에서 손을 다친 탓에 이직을 고려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가 대리운전 노동자에게 지원한 긴급고용안정자금을 3차까지 수급했다는 김씨는 “대리운전은 제게 생계 마지막 수단인데 최근 정부가 발표한 5차 재난지원금 대상에서 대리운전기사가 빠져 눈앞이 깜깜하다”며 한숨을 쉬었다.

코로나19 확산세로 사회적 거리 두기 4단계 시행이 길어지며 고객이 줄어든 대리운전 노동자들이 소득 급감으로 인한 생계 위협에 내몰리고 있다고 호소했다. 5차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에서 빠진 데다 특수고용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긴급고용안정자금마저 4차로 종료돼 긴급 생계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콜수 4분의 1로 급감
9년간 일하며 이런 적 처음”

대리운전노조(위원장 김주환)는 4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거리 두기 4단계 시행으로 콜수가 4분의 1로 급갑하면서 대리운전기사들의 소득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며 “정부는 사각지대 해소와 필수노동자 지원을 약속했지만 자영업자·택시기사·버스기사 등이 포함된 지원대책에 정작 대리운전기사는 빠져 있다”고 밝혔다.

대리운전 노동자들은 거리 두기 4단계 시행으로 소득이 반토막 났다고 입을 모았다. 오후 6시 이후 3명 이상 사적모임 금지, 유흥시설 집합금지와 식당·카페 운영제한으로 유동인구 자체가 줄어들면서 손님이 끊겨 수입이 급감했다는 것이다. 경기도 고양·파주에서 9년차 전업 대리기사로 일하는 최아무개(63)씨는 “3단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콜이 없어 허탕 친 적도 많다. 대리기사로 일하면서 이런 적은 처음”이라며 “4차까지 긴급고용안정자금을 받았는데 더 이상 정부 지원금도 없고 손님도 뚝 끊겨 이직을 해야 하나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소득 급감으로 인한 피해는 오롯이 대리운전 노동자들 스스로 견뎌 내야 한다. 정부 지원대책에서 대리운전 노동자들이 사각지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최근 국회에서 통과한 2차 추가경정예산에서 약 74억원을 대중운수종사자 몫으로 편성해 버스·택시기사에게 1인당 80만원의 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운수종사자에서 대리운전 노동자는 지원 대상에서 빠졌다. 지난달 27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대리운전기사도 재난지원 대상에 포함시켜 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글이 게시되기도 했다.

정부 지원 대상에서 빠져
“최소한의 생계대책 시급”

고용보험 가입도 내년부터 적용돼 혜택을 받기 어렵다. 지난달 1일부터 택배노동자를 비롯해 12개 특수고용직 직종에 고용보험이 의무적용됐지만 대리운전 노동자의 경우 내년 1월부터 적용된다. 국가·지방자치단체가 재난이 발생했을 때 필수업무 종사자를 보호하고 처우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의 필수업무 지정 및 종사자 보호·지원에 관한 법률(필수업무종사자법)도 법 시행까지는 3개월이 남아 있다. 노조 관계자는 “대리운전 노동자들은 고용보험도 내년 1월부터 적용되고, 필수업무 지정 및 종사자 보호·지원에 관한 법률(필수업무종사자법)도 시행되기까지 기간이 남아 있다”며 “대리운전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을 고려해 재난이 닥친 지금 이 시기에 적절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대리운전 노동자의 소득감소 실태에 대해 정부도 이미 인지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11월 코로나19 긴급안정고용자금 수급자를 분석한 결과 대리운전기사의 경우 수급자 2만명 중 소득 하위 20%에 해당하는 비율이 56.5%로 산재보험 적용 14개 특수고용직 직종 가운데 가장 높았다. 평균 소득감소율도 58.9%나 됐다.

노조는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지원대책이 당장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김주환 위원장은 “현장에서 수많은 대리운전 노동자들이 ‘여태까지 참고 버텼지만 더 이상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한다”며 “벼랑 끝에 내몰린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을 감당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생계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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