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익찬 변호사(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또다시 외국 이야기를 들먹이고자 한다. 1931년 발표된 하인리히 법칙이다. 중상 이상의 사고가 발생했다면 그에 앞서 29건의 경상과 300건 정도의 발생할 뻔한 사건이 있었다는 내용이다. 1건의 사고는 우연이 아니고, 수십 개의 제동장치가 제 기능을 못 해야 비로소 발생한다는 의미다. 수십 개의 제동장치 중 하나라도 작동하면 웬만해선 사망사고가 발생하지 않는다. 결국 단 1건의 사고를 예방하려면, 평소에 존재하는 수십 가지의 위험요소를 찾아내야 한다. 사고 후에 보여주기식으로 몇 가지 조치만 해서는 예방이 안 된다.

그런데 하나의 사업장만 놓고 보더라도 작업방식은 계속 바뀐다. 전체 산업 면에서 보면 산업구조도 끊임없이 바뀐다. 변화 속도에 맞춰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미리 법과 정책으로 정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또 수백 가지의 규제를 만든다고 한들, 중복 규제나 상호 충돌의 문제도 있다. 그리고 규제 내용이 완벽하더라도 근로감독관이 전국의 모든 사업장을 24시간 CCTV로 쳐다보고 있을 수는 없다. 따라서 사업주에게 개별적인 조항을 지킬 것을 넘어서서, 그 사업에서 발생하는 위험 전체를 방지하라는 ‘포괄적인 의무’를 지우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포괄적인 의무’를 지우는 것이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되는지 여부를 문제 삼는다. 무슨 행동이 범죄인지를 미리 알아야 그것을 알고 피할 수 있는데, 결과가 발생하면 무조건 최고경영자의 잘못이라고 덮어씌우는 것은 명확성의 원칙과 책임주의에 위배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법을 조금이라도 배웠다면 이런 의문은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애초 우리 법은 사고가 발생하면 말단 직원부터 최고경영자까지 누가 원인을 제공했는지 찾아서 책임을 물리도록 설계돼 있다. 그 근거가 바로 형법 268조 업무상과실치사상 조항이다. 검찰은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 무엇인지부터 찾아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방식으로 논리를 구성하다가 최초의 원인 제공자에까지 이른다. 그 과정 중에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이 있으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기소하고,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항이 없더라도 업무상과실치사상죄라는 넓은 우산을 씌워서 기소한다. ‘구의역 김군’ 판결을 보더라도, 원청의 대표이사가 산업안전보건법상 의무를 지지 않지만 스크린도어 수리작업 중 사고를 막으려면 2인1조 작업이 필요함을 알면서도 하청업체 인력과 예산을 주지 않았음을 이유로 업무상과실치사죄로 기소됐다. 그리고 서울동부지법은 벌금 1천만원 형을 선고했다(대법원 확정). 검찰과 법원의 이러한 관점은 산재 사고뿐만 아니라, 특별법이 문제 되는 거의 모든 사건에서도 그렇게 적용되고, 어느 누구도 ‘위헌’이라고 토를 달지 않았다.

이러한 포괄적인 의무와 동전의 양면에 있는 것이 자율규제다. 일일이 규제조항을 정해 놓고 지키라고 하는 감독이 아닌, 사업장 현실에 맞게 스스로 조치를 하라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평균점수 80점을 넘기는 것이 목표라고 했을 때, 국영수 학원을 끊어 주는 대신 학원을 빼먹으면 매를 들겠다는 방식이 아니라, 네가 알아서 공부해서 점수만 넘기라는 방식이다. 어떤 것이 더 효율적일까. 또 어떤 것이 더 무서울까.

이러한 방향 전환은 ‘이것 하나만 정답이다’ 하고 쉽게 논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다만 영국의 경우 1970년부터 2년간의 연구 끝에 위와 같은 방향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로벤스 보고서를 만들고, 다시 2년 뒤에 산업안전보건법을 전부개정했다. 1970년 영국의 산재 사고사망자는 985명(인구 5천578만명), 50년 후인 2020년에는 142명이다(인구 6천702만명, 한국은 같은해 882명 사망). 문재인 정권하에서 집중단속, 패트롤카, 지자체 협업 등의 노력과 성과를 폄훼할 마음은 없다. 다만 이제는 더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 왔다. 매일노동뉴스 5월6일자 18면 전문가 칼럼 “노동안전보건 행정기구 어떻게 만들고 무엇을 해야 하나”를 꼭 다시 읽어 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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