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20일 삼성전자 화성공장을 방문해 이재용 가석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3분의 2의 형기를 마치거나 법무부 지침상 60% 형기를 마치면 가석방 대상이 된다. 이재용 부회장도 8월이면 형기의 60%를 마치는 만큼 원론적으로는 대상이 될 수 있다.”

이 방문에는 더불어민주당 유력 대선후보자인 이재명 경기지사도 동행했다. 그도 말을 빙빙 돌려 이재용 가석방을 지지했다. 그 다음날 언론은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8·15 광복절 가석방 심사 대상자 명단에 이재용의 이름을 올렸다고 보도했다.

지난번 칼럼에서 필자는 “이재용 사면 추진하는 정권, 말이 되나”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다. 그런데 그 말이 되지 않는 일이 이처럼 착착 추진되고 있다. 이 지점에서 잠시 문재인 정권은 무엇이며, 삼성재벌은 무엇이며, 이 둘의 관계는 또 무엇인지 짚어 보고자 한다.

스스로 진보언론이라고 자처하는 매체들이 문재인 정권을 놓고 ‘진보 정부’이라고 호칭한다. 진보는 무엇인가. 사회를 질적으로 다르게 바꾸는 것, 즉 변혁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봉건사회를 반봉건사회로 변혁하거나 반봉건사회를 자본주의 사회로 변혁하는 것이 진보였다. 자본주의 사회가 되고 나서는 그것을 전면적으로든 부분적으로든 질적으로 변혁하는 것이 변혁이고 진보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지금 세계 사람들이 더 이상 개발도상국이 아니라 선진국으로 분류할 정도로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사회다. 그러므로 한국 사회에서 전면적이든 부분적이든 자본주의에 반대하지 않는 정치세력은 진보세력이 아니다. 그러므로 반 자본주의 변혁을 추구하지 않는 자유주의 세력은 진보파가 아니다.

한데 어떤 사람들은 자본주의 안에서의 이러저런 개선을 모두 진보라고 뭉뚱그린다. 예컨대 운동권 일각에서는 민족자주도 진보라고 주장한다. 그런 식이라면 군사파쇼에 반대하는 민주화야말로 진보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반제 민족자주와 반파쇼 민주주의 안에서도 자본주의를 지향하는 보수파와 그것을 변혁하려는 진보파가 따로 있다. 따라서 보수적 민족자주와 부르주아 민주주의까지 모두 진보라고 자임하는 것은 억지다. 이런 기준에서 볼 때 문재인 정권을 비롯한 그동안의 자유주의 개혁정권들은 반파쇼 민주화 정치세력이라고는 할지라도 반자본 진보세력은 결코 아니다.

그러면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권은 과연 민주정권이기는 한가? 최근 권경애 변호사가 <무법의 시간>이라는 책에서 문재인 정권을 파시즘이라고 규정해 논란이 되고 있으므로 이 지점도 짚어 볼 가치가 있다. 이들이 군사파쇼에 반대하고 민주주의를 요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은 군사파쇼에는 반대했지만 한국 사회를 규정하는 근본체제인 친미‧분단‧반공체제에는 반대하지 않았다. 뿐만아니라 그 근본체제의 하위체제인 천민자본주의 파쇼체제에 대해서조차 반대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 천민자본주의 파쇼체제의 지속을 전제로 하는 범위 안에서 일정한 개선을 추구했을 뿐이다. 그들은 천민자본주의 체제의 주요 축인 독점재벌 해체를 추진하지 않았다. 그들은 천민자본주의 체제의 하위체제인 억압적 노동통제 체제를 지탱하는 치안유지법적 노동악법 철폐를 추진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또 파쇼통치체제의 한 축인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도 않았고 비밀경찰기구 국정원을 폐지할 생각도 없다. 정치군부만 퇴각시킨 채 천민자본주의 파쇼체제를 지속시키려 했다.

이런 의미에서 역대 자유주의 정권은, 여기에는 김영삼 정권까지 포함되는데, 진보는커녕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정치세력이 아니라 가짜 자유민주주의 정치세력이다. 이렇게 된 까닭은 그들이 표방하는 바는 자유민주주의이지만 위선적이게도 천민자본주의 파쇼체제의 한 날개, 왼쪽 날개로 정치실천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들과 동맹을 맺고 있는 삼성재벌은 무엇인가. 재벌은 천민자본주의 파쇼체제의 양대축의 하나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 정권 당시부터 그랬다. 4월 혁명이 일어나자마자 부정축재자 처벌이 요구되고 처벌대상자 1호에 삼성재벌 이병철이 지목된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파쇼권력과 재벌의 이 동맹관계는 4월 혁명의 수혜자인 민주당 정권, 이를 뒤집은 박정희‧전두환‧노태우 군사독재 정권 및 민주화 이후의 민주정부하에서도 유지됐다.

하지만 이승만 독재나 박정희‧전두환 군부독재 때에는 재벌이 이 체제에서 하위파트너에 머물렀다. 그러나 한국 자본주의가 개발도상국에서 중진자본주의를 거쳐 선진자본주의로 나아감에 따라 독점재벌이, 적어도 경제 영역에서는 주도권을 갖는 단계로 이행했다. 이런 이행은 민주화 이행으로 군부독재가 물러나고 김영삼 정권이 등장하면서 시작됐다. 문민정부와 개혁, 신한국이란 이 체제의 주도세력이 민간으로, 그 가운데 민중이 아닌 독점재벌로 넘어가는 것을 의미했다. 96년 노동법 개악안 날치기 통과는 김영삼 정권이 재벌의 요구에 순응해 복수노조 금지를 유지하려다 일어난 사건이었다.

이후 독점재벌은 점차 정치영역서까지 주도권을 갖는 단계로 나아갔다. 이런 변화는 노무현 정권하에서 본격화했다. 이런 주도권 변화 과정에는 <삼성독재> 저자 김종보씨가 묘사했듯이 ‘정치적 자본가’인 삼성재벌이 독보적인 역할을 했다. 이병철·이건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정치적 자본가였고, 그들의 이러한 능력 탓에 대한민국은 재벌공화국과 더불어 삼성공화국이 됐다.

삼성재벌 주도의 재벌·정권 동맹은 천민자본주의 파시즘에 반대한 촛불혁명으로 등장한 문재인 정권하에서도 계속 진전됐다. 삼성은 노무현 정권의 전례에 따라 무능한 수구보수정권 대신 자유주의 정권을 통한 재벌주도의 천민자본주의 파쇼통치를 선호했으며, 이를 위해 촛불로 탄생한 문재인 정권을 자기 편으로 만들었다. 이로써 천민자본주의 파쇼체제를 변혁하고자 했던 민중의 열망은 문재인 정권에 의해 배반당했다. 그러나 진보세력은 손 놓고 있었다.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