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민 청년유니온 사무처장

때아닌 근로시간 논쟁(?)이 벌어졌다. 주 120시간이라는 생소한 숫자가 화두에 올랐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한 언론사 인터뷰에서 청년 스타트업의 애로사항을 들었다며 언급한 내용이다. 근로조건에 관한 당사자의 합의로 근로조건을 선택할 수 있게 하면 되고, 일주일에 한 120시간 일해야 된다고 했다며, 주 52시간은 일자리 증가가 되지 않아 실패한 정책이라고 말한 것이다. 일주일이 168시간이라는 것을 계산하고도 말한 것이 황당하지만, 주 52시간을 인간다운 삶이 아니라 일자리 증가가 목표라고 이야기하는 대목은 사람을 일자리를 채워 넣는 물건으로 생각하는 것 아닌가. 넷마블에서 청년 노동자의 과로사가 발생해서 구로의 등대라고 불렸던 것이 불과 몇 년 전이다. 이러한 청년 노동자의 목소리는 제대로 보지 않은 채 듣는 사람이 귀를 의심하게 하는 극단적인 이야기를 청년의 애로사항으로 내뱉는 이가 유력 대선후보인 것이다.

지난 18일 대선 출마선언을 한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은 “굴뚝시대 투쟁만 고집하는 귀족노조가 죽어야 청년이 산다”는 제목으로 첫 번째 공약을 발표했다. 제목과 달리 내용은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적용, 파업에 대한 대체근로 허용, 주 52시간제 완화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특히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적용은 업종 선정의 기준 문제와 낙인 효과에 대한 우려가 크고, 시장의 혼란 등이 초래될 수밖에 없다. 또한 이에 대한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가 바로 청년 아르바이트다. 이런 내용에 청년을 명분으로 내세우는 것에 기가 찬다. 이런 것들로 일자리가 늘어날 리가 없고, 늘어나더라도 인간다운 삶이 불가능할 것이다. 면피라도 하듯이 마지막에 정규직-비정규직 격차 해소를 언급하지만 그 내용조차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의 2년 제한을 풀고 2년 넘으면 정규직 수준의 처우를 보장한다는 선언이 전부일 뿐이다. 내용도 문제이지만 더욱 문제는 메시지다. “귀족노조가 죽어야”라는 불필요할 정도로 자극적인 언어를 동원한다. 오히려 적대적인 노사관계를 강화해 자신의 정치적 명분으로 삼고자 하는 의도는 아닌지 의심된다.

그들의 청년 사용법은 늘 일관된다. 마치 자신이 아는 해법대로 해야 청년 일자리 문제가 해결된다는 과도한 확신을 앞세우며 ‘시장 원리’를 모른다고 꾸짖는다. 정작 청년 당사자들의 목소리나 현실은 철저하게 외면하거나 편의대로 사용한다. 최근에 끝나지 않는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대한 논란에서 보수정치는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비현실적이라고 공격할 뿐, 공공부문의 정규직 “기득권 해체”라는 그들의 속내는 지금 드러내지 않고 정략적으로 활용할 뿐이다. 오히려 이렇게 특정 집단을 악으로 규정하는 토끼몰이 방식이 청년 일자리 문제 해결을 더욱 멀어지게 하는 것이 분명하다. 노동운동의 역할에 대한 논쟁은 노동운동을 하는 당사자들이 토론하고 논쟁해야 실천적이다. 보수정치의 이런 노동운동 비판은 스스로의 책임 회피이고, 그래서 해롭다. 일자리 문제가 악화돼 온 것에는 노동운동의 책임이 있으나, 이 책임을 따질 수 있는 것은 지금의 사회구조를 만드는 데에 책임이 있는 보수정치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 대화하고 함께 해법을 모색하는 책임 정치가 보수의 언어에서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정부와 여당에 대한 불신임이 한 번 표출됐지만, 이것이 보수야당에 대한 신뢰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주 52시간, 최저임금을 마치 모든 일의 표적이고 백해무익했던 것으로 공격하는 극단적인 보수정치의 언어에서는 어떠한 미래도 찾을 수 없다.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정규직-비정규직 격차라는 문제 인식에 공감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격차를 풀기 위한 정치적 과정이다. 일자리를 말하지 않는 청년문제 해결은 논점이탈이지만, 그 해법을 적대적인 선악구도로 규정하는 것은 기만일 뿐이다. 그러한 보수정치의 기만이 계속된다면, 사회에는 더욱 파괴적인 갈등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 선거를 앞두고 펼쳐지는 정치적 공간에서 책임 있고 생산적인 논쟁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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