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지선 변호사(법무법인 마중)

“아이가 한글보다 죽음을 먼저 배운 것 같아 걱정돼요.”

“여섯 살 아이가 탈모가 왔어요.”

재판부의 판결 선고를 듣고 유족분이 제게 한 말입니다.

귀 재판부는 이달 16일 이천화재 형사 항소심 판결을 선고하셨습니다. 귀 재판부는 발주처인 한익스프레스 TF 책임자에게 무죄를 선고하셨습니다. 판사님은 “산업발전, 전문화된 영역에서 발생하는 위험요소에 대해 관계법령에서 예방 내지 안전조치를 부과한다. 이러한 법령이 없다면 여러 정황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대법원은 업무상 재해를 판단함에 있어서 “첨단산업분야에서 유해화학물질로 인한 질병에 대해 산업재해보상보험으로 근로자를 보호할 현실적·규범적 이유가 있는 점,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의 목적과 기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근로자에게 발병한 질병이 이른바 희귀질환 또는 첨단산업현장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유형의 질환에 해당하고 그에 관한 연구결과가 충분하지 않아 발병원인으로 의심되는 요소들과 근로자의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현재의 의학과 자연과학 수준에서 곤란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인과관계를 쉽사리 부정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이자 전제로 “산업재해보상보험의 사회적 기능은 산업재해보상보험의 지급 여부에 결정적인 요건으로 작용하는 인과관계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규범적으로 조화롭게 반영돼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대법원 2017. 8. 29. 선고 2015두3867 판결). 요약하면, 첨단산업이라 잘 모른다는 이유로 업무와 근로자의 재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함부로 부정하면 안 되고, 인과관계를 판단함에 있어서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는 목적과 기능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형법의 목적 또는 형벌의 기능에 대해서는 여러 논의가 있지만, 가장 고전적인 논의는 응보와 예방입니다. 38명이 사망한 사고의 책임자에 대한 무죄 판결이 적절한 응보인지, 예방 기능을 적절히 수행할 수 있는지는 굳이 제가 말하지 않겠습니다. 건축법이며 산업안전보건법이며 소방관계법령 등 관련 법령을 두는 목적과 기능도 마찬가지입니다.

귀 재판부는 “통로 폐쇄 결정은 발주자 권한 내에 있는 행위이며, 이 정도로 시공에 관해 구체적인 지시·관여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 “위험물질을 취급하는 작업이 끝난 이후에 대피로를 폐쇄할 수 있었는지, 폐쇄 시점이나 작업에 대해 구체적으로 감독했다고 볼 여지가 없어 보인다”며 한익스프레스 TF 책임자의 무죄를 선고하셨습니다.

피고인은 1) 통로 폐쇄 결정을 내렸고, 2) 일주일에 한 번씩 공사 현장에서 회의를 했고, 3) 폐쇄된 통로(대피로)로 직접 지나다니며 현장을 순회하고 진행 상황을 보고받았습니다. 그런데도 이것이 구체적인 감독이 아니라면, 귀 재판부의 기준을 충족하는 구체적 지시·관여를 한 도급인은, 감히 말씀 올리건대 없습니다.

그리고 판사님, 솔직히 말씀드리면 ‘대피로를 없애면 화재 피해가 확대된다’거나 ‘불을 사용하는 용접작업이랑 불이 잘 붙고 번지는 우레탄폼 작업을 함께 하면 화재 발생 및 확대의 위험이 높아진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첨단의 전문지식이 필요한 영역이 아닙니다.

이처럼 저의 좁은 식견으로는 귀 재판부의 판결은 대법원의 업무상 재해 인과관계에 관한 판례 법리에도, 도급인의 책임에 관한 판례 법리에도 반합니다.

판사님의 선고를 듣고 피고인들과 변호인들은 웃으며 “축하한다”는 인사를 건넸고, 그 자리에 있던 유족들은 그 말을 듣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대법원 판례 법리에도, 상식에도 반하는 귀 재판부의 정의는 무엇인지요. 저는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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